횡성 3.1공원(횡성중안근린공원)은 횡성군청 뒤의 낮은 야산에 있으며, 태풍루, 3.1 운동기념비, 충혼탑, 회성군종각등이 있습니다. 횡성군청에서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 왼쪽에는 강원유형문화재인 읍하리 삼층석탑과 읍하리 석불좌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종각 앞에는 6·25 전쟁에 참전했던 네덜란드 오우덴 중령의 참전 기념비가 있습니다.
▼ 횡선군청 뒤쪽에 있는 3.1공원의 모습이며, 횡성군민 4.1 만세운동의 역사적인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 횡성군청 뒷산에 조성되어 있는 3.1공원(횡성중앙근린공원)의 드론 사진입니다(사진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인용)
▼ 동상앞 검은 돌에 새겨진 글씨가 안 보여서 그대로 옮겨 보았습니다.
3.1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횡성에서는 1919년 3월 27일, 4월 1일, 4월 2일, 4월 12일 만세운동이 거세게 일어나 강원도 3.1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왜경의 총칼에 많은 희생자를 낸 1919년 4.1횡성군민만세운동은 1세기가 흘렀지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아픈 역사의 교훈으로 힘을 합쳐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 역사의 교훈으로 힘을 합쳐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 목숨 바쳐 싸운 애국선열들에 대한 보답이다. |
▼ 최양옥지사의 사진이며, 복장이 중국식인데, 아마도 중국에서 독립투쟁을 하시던 때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최양옥 지사는 공명단(共鳴團을 결성하고, 군자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현금 수송도 같이 했던 경성우편국 수송차를 습격하였다가 체포되어 10년의 수형생활을 하신 독립투사입니다.
▼ 공명단 3인이 습격한 경성우편국 7호 차량
출처:한국일보
▼ 최양옥선생의 수형카드입니다
▼ 공범에 김정련, 이선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김정련선생의 수형카드입니다
▼ 공범이 최양옥, 이선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김정련선생은 경성서대문 형무소에서 비밀암호를 만들어서 여운형선생, 서재필선생등과 통신을 하였다고 합니다(경향신문에서 인용하였습니다)
비밀통신방법은 벽을 두드리는 타법통보법이었다고 합니다.
※ 비밀통신타벽통보법
▼ 이선구선생의 수형카드입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으로 순국하셨습니다
▼ 공범이 최양옥, 김정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최양옥, 김정련, 이선구, 3분이 법정으로 이동하는 모습입니다(횡성문화원자료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최양옥 선생이 고향에서 말년을 보낼때의 사진(1980~1983)이며, 독립투쟁을 하셨다는 분의 생황이 참 궁핍해 보여서 안타깝습니다. 일본에 적극협력해서 자식 대대로 국회의원도 하고, 장관도 하고, 시장도 하고, 그런 분들도 많은데,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인가 봅니다
▼ 횡성 갑천면 화전리 최양옥선생의 집이며, 횡성호와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 화전리 논밭은 횡성호에 잠겨 있습니다
▼ 4.1 만세운동의 약사입니다만, 글자를 자세히 보기가 어려워서 그대로 옮겼습니다.
4.1 만세운동의 약사 |
3월 10일 상안흥리 천도교인 장도훈과 영영포리 신재근이 횡성만세운동 결의 3월 11일 장도훈이 상경, 횡성출신 이동구와 만나 대형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40매 구입 3월 16일 고종황제 서거를 애도하는 횡성보통학교 학생들 상장(喪章)패용 등교로 휴교령 3월 26일 주동자들이 신재근 집에서 책임자를 정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배포 결정 3월 27일 횡성장터에서 신재근, 장도훈, 안경춘, 강만형등이 태극기를 배포하고, 읍하리 청년 윤태환이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300여명과 만세시위를 시작, 일제의 사전조치로 천도교인 8명 포함 12명이 검거되면서 실패, 이후 횡성천도교 대교구는 횡성청년회, 횡성감리교회와 협력해 치밀한 사전준비로 다음 만세운동에 대비. 4월 1일 횡성장날, 아침부터 상점문을 미리 닫은 상인들과 장꾼등 수천명의 군중들이 모여들며 만세운동 전재, 날이 저물자 장터에 다시 모인 사람들이 헌병분견소로 향하자 일본 헌병들이 군중을 향해 총격, 하영헌, 강성순 등 5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부상자 속출, 강원도 장관은 시위자가 1,300명에 달했다고 총독부에 보고 4월 2일 주민 200여명이 헌병분견소 앞에서 독립운동허가와 구속자 석방요구 시위, 일제에 항거의 표시로 4월 6일까지 횡성시장 철시 4월 6일 횡성시장 철시로 무언의 저항 계속 4월 7일 길가에 태극기와 함께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선전문 게시 4월 12일 서원면 분일리에서 송병기, 성태현, 박민희,등이 주도해 만세운동 전개, 이날까지 횡성에서만 연인원 5,000여명이 만세운동에 참여 |
▼ 횡성 3.1공원은 그리 넓지는 않지만, 강원도 최초로 3.1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6.25 때 횡성군에서 UN군의 전투등의 내역을 잘 알 수 있도록 잘 꾸며 놓았습니다.
▼ 한치고개에서 주막을 하며 독립투쟁가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던, 김순이여사님을 추모하는 동상입니다.
▼ 김순이 여사님이 주막을 하던 한티고개, 좌측에 주막이 있었다고 합니다.
▼ 횡성군천 뒤의 공원에는 주로 6.25전쟁과 베트남전쟁등에 관련된 조형물이 많습니다
▼ 3.1운동 기념비와 4.1횡성군민만세운동에 대한 안내문입니다. 회성의 3.1 공원을 보면, 다른 지방도시보다, 일제에 항거한 역사를 자랑스럽게 잘 꾸며놓았습니다.
▼ 3.1운동기념탑앞에서 보는 모습이며, 3.1 운동 때에는 여기에 헌병분견대가 주둔하던 곳인 듯합니다
▼ 3.1 공원의 북쪽에는 넓은 공터에 종각과 6.25 전쟁과 관련된 호국전공비, 네덜란드군의 오우덴중령의 충혼비가 있습니다.
▼ 6.25 전쟁과 월남전쟁의 공적비와 오우덴중령의 충혼비가 나란히 있습니다.
▼ 네덜란드 오우덴중령(대대장)은 1951년 2월 12~13일에 벌어진 횡성전투에서 전사하신 분입니다
▼ 6.25전쟁과 월남전에서 공적을 받으신 분들의 추모비입니다
▼ 잘 지어진 종각이며, "군민의 종각"이라는 편액을 달았습니다
▼ 이 "횡성군민의 종"은 2009년 3월부터 2009년 12월에 걸쳐서 주조하였으며, 사업비는 9억 1천 2백만원이 들었으며, 종의 무게는 7.5톤이며, 높이는 2.2m, 하대직경은 1.7m입니다.
종의 표면에는 횡성군의 상징인 백로가 부조되어 있습니다
▼ 보통 매년 12월 31일 제야의 종 타종식을 합니다
- 여기까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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