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금리 삼층석탑(中金里 三層石塔)들의 원래 위치는 현재의 위치에서 서쪽으로 2.2Km 떨어진 갑천면 중금리 탑둔지의 절터에 8m 간격으로 있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수려한 탑의 모습에 욕심을 낸 일본도둑 X들이 해체하여 일부 부재를 우마차에 싣고 강을 건너 반출하려다 폭우에 포기하였지만, 일부 부재들은 유실되었고, 탑은 붕괴된 채 방치되어 있다가, 횡성댐 건설로 인해 탑지가 물에 잠기게 되자, 1998년 이곳으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 강원도 유형문화재(1971), 보물급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훌룡한 석탑입니다.
▼ 중금리삼층석탑을 보려면 망향의 동산으로 들어 가야 하며, 망향의 동산은 횡성댐 건설로 고향을 떠난 실향민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1997년 세워진 공원입니다.
입구에 보면 "마음의 고향 화성의 옛터"라는 글씨가 보이는데, 수몰된 갑천면 화전리 일대가 화성뜰(들)이었습니다
▼ 조형물은 "희망의 나래"라는작품이며, 뒤로는 중금리 삼층석탑이 보입니다.
▼ 쌍둥이 석탑은 대부분 신라시대에 조성되었으며, 통탑. 서탑이라고 구분해서 부르기도 합니다. 현재 대표적인 쌍둥이 삼층석탑은 다음과 같습니다.
- 상원사(치악산) 동.서 삼층석탑
- 경주 (전)염불사지 동. 서 삼층석탑
-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 경주 천군동 동.서 삼층석탑
- 산청 단속사터 동.서 삼층서탑
-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
▼ 이 쌍둥이 삼층석탑이 있던 갑천면 중금리 탑둔지는 원래 쌀뜨물이 강을 물들일 정도로 큰절이 있었으나, 부유한 동네에 도둑들이 들끓자, 관에서 도둑들의 근거지를 없앤다고 사찰에 불을 질러서 탑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 중금리 삼층석탑 옆에는 화성의 옛터 전시관이 있습니다
▼ 쌍둥이 삼층석탑이어서 동탑. 서탑으로 구분하는데, 앞쪽이 동탑. 뒤쪽이 서탑입니다.
▼ 쌍둥이 삼층석탑이라서 동탑.서탑 구분이 거의 어렵습니다. 먼저 동탑부터 부분적으로 보겠습니다
▼ 지붕돌(옥개석)의 층급받침은 1층, 2층, 3층 모두 5개로서 전형적인 신라시대 석탑이며,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둥근 머리장식이 남아 있습니다.
▼ 신라시대의 석탑은 보통 지대석이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중금리 삼층석탑은 지대석이 1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 기단부 면석에는 팔부신중이 새겨져 있으며, 부분적으로 깨진 것을 보수한 흔적이 보입니다.
▼ 기단의 면석에는 우주와 탱주 사이에 불법을 수호하는 8부신중(八部神衆)을 조각하였고, 깨진 면석은 새로 보충하였습니다.
흔적만 남은 팔부신중은 모양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모가 심항것을 보면, 오랫동안 밭에서 굴러 다닌 것으로 보입니다
▼ 삼층석탑은 중금리에서 옮겨올 때 동탑의 상층기단 면석에서 없어진 일부 부재들은 팔부신중상을 모각하고 지대석 등도 보충하여 세운 것입니다.
면석에서 칼을 들고 있는 팔부신중상는 새로 만들어 보충한 것입니다.
※ 중금리 삼층석탑 기단부 면석에 새겨진 팔부신중을 참고자료로서 경주 석굴암의 팔부신중을 흑백사진으로 보겠습니다(한석홍선생께서 평생 찍은 사진중 일부이며, 국립문화재연구소에 기증하셨습니다)
▼ 팔부신중 좌.우에 있는 금강역사입니다.
▼ 석굴암 팔부신중을 두 개씩 묶었습니다.
팔부신중은 불교를 수호하는 여덟 수호신이며, 1)천, 2)야차, 3)간달바, 4)아수라, 5)가루라, 6)긴나라, 7)마후라가, 8)금시조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 다음 서탑를 보겠습니다. 동탑과 서탑을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 서탑에도 면석을 새로 보충하였습니다
- 여기까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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