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암사지를 입구부터 차례대로 둘러보다 보면 어느새 정청지에 오르게 되는데, 정청지에서 우측으로 보면 거대하고 아름다운 부도가 보입니다.
부도탑은 승탑이라고도 하는데, 보통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보관하는 곳입니다. 그렇다고 입적(入寂)한 모든 승려들에게 승탑이 주어지지는 않기에 승탑이 주어진 승려들은 최고의 지성을 가진분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2021년에 경기도 유형문화재에서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 회암사지 북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거대한 부도(승탑)는 높이가 6m로 국내의 승탑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보입니다. 누구의 승탑이기에 이렇게 장대하고 최고의 아름다움을 갖춘 예술작품을 남기게 하였을까 긍긍하지만, 현재로서는 승탑의 임자를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보통은 승탑을 세우면, 면석 등에 스님의 법호와, 건립 시기 등을 새기기도 하는데, 아무런 명문이 없었다고 하며, 또한 승탑을 세우면서 주인공에 대한 제반 행적을 비에 새겨서 승탑 가까운 곳에 세우기도 하는데, 아무런 비석도 없어서 현재까지는 이름 없는 회암사지부도탑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 설명을 보면 부도탑의 높이가 3.36m로 되어 있는데, 다른 자료를 보면 6m라고 되어 있습니다. 크기로 보면 6m가 맞는것 같습니다
▼ 설명문에 보면 조선 전기에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기본적인 구조는 고려시대의 제작기법을 그대로 이어받았고, 탑신 받침석이 3단으로 1단인 다른 승탑에 비해 많은것이 특징입니다.
▼ 이 승탑을 보면 기단부가 많이 추가되었는데, 8개의 널돌로 8각의 지대석을 만들고, 그 위에 4개의 돌로 8각 하대석을 만들었으며 하대에는 각 면마다 용과 용의 무늬를 새겼습니다.
하대석 위에는 2개의 돌로 8각 중대석을 올렸는데, 각 면에는 연당초문이 새겨져 있는 8면의 문양은 조금씩 다릅니다.
중대석위에는 2개의 돌로 8면의 중대갑석을 둘렀는데, 각 면에는 당초문양을 새겼습니다
상중대석은 1개의 돌로 8각의 면을 만들고 각 면에는 팔부신중을 새겼습니다.
탑신 받침도 보통인 1단에 비해서 3단으로 다른 부도에 비해서 많고 높으며, 그 위에 놓인 8각 중대석에도 각 면에 연당초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 8각원당형의 승탑은 언뜻 봐서는 각 면의 특징을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 상중대석의 8면에는 팔부신중이 새겨져 있는데, 팔부신중(八部神衆)이란, 불법을 지키는 8종의 신으로 천, 용, 야차, 아수라, 건달바, 긴나라, 가루라, 마후라가를 말합니다만,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기에는 공부가 깊이가 얕아서 이 정도로 알아 둡니다. 팔부신중은 8부신장(八部神將)이라고도 합니다.
▼ 중대갑석에는 8면에 덩굴 문양을 새겼으며, 중대석의 8면에는 새겨진 문양은 생소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연당초문(蓮唐草文)라는데, 연꽃과 당초문이란 뜻으로 연꽃과 덩굴이라는 뜻으로 보면 되는 듯합니다. 부조의 깊이도 얕게 조각을 하였는데도 600년의 비바람에도 문양은 거의 원형 그대로입니다.
▼ 4개의 돌로 8각 하대석을 만들었으며 각 면마다 용의 무늬와 천마의 무늬를 번갈아 새겼습니다. 한 면은 용, 한면은 천마입니다. 구름속에서 헤엄치는 용의 힘찬 모습입니다.
▼ 한면은 용, 한면은 천마를 새겼습니다. 구름 속에서 천마가 힘차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몸체는 말인데, 몸에는 용비늘이 덮혀 있습니다.
▼ 이 승탑이 누구의 것인지 보다는 이 승탑을 만든 장인이 누군지 더 궁금합니다. 조선 최고의 승탑 제작기술을 가진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가진 장인은 누구인지... 이름을 안 새긴 것인지, 아마도 못 새긴 것이 맞을 것입니다.
▼ 이 승탑의 주인공은 알 수 없으나, 보우스님보다는 회암사 중창에 힘쓴 처안스님의 부도탑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문정왕후가 죽고 나서, 보우스님은 유생들의 집단 상소로 인해서 제주도로 유배중에 제주목사의 의해서 피살되었기 때문에 보우스님의 승탑을 세웠을 리가 없을 것이며, 그 대신 성종 3년에 회암사 중창을 크게 했던 주지 처안(處安)스님의 승탑이라는 설이 더 가깝다고 합니다.
▼ 이 승탑은 회암사지의 일부이면서도 왜 무참히 파괴되지 않고 지금까지 잘 보존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만, 문정왕후가 죽고 나서 순식간에 유생들의 업어치기 한판으로 문정왕후의 후원을 받던 보우스님을 제주도에 보내 죽이고 왕실의 후원을 받던 회암사를 타깃으로 싹 쓸어버렸겠지만, 알게 모르게 태조 때부터 긴긴 세월 왕실과 관련된 끈을 유생들이 선뜻 부정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 이 승탑의 특징은 기단부만 보면 팔각원당형의 탑신을, 상층부는 일반 승탑을 보는 듯한데, 고려시대의 탑과 승탑을 한꺼번에 보는 듯합니다. 그래서 자료사진으로 고려시대의 탑신의 기단부가 8각으로 된 석탑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기단부만 본다면, 회암사지 부도와 여러 석탑들의 기단부의 모습은 어딘지 많이 닮았습니다. 남양주의 수종사 석탑과 남양주 묘적사 석탑의 기단부는 각각의 석재들을 보면 회암사지 부도와 많이 닮았지만, 작품의 질은 회암사지 부도와는 비교가 안됩니다.
▼ 승탑이 너무 아름다워서 자료사진으로 사진합성을 해 보았습니다
▼ 문화재청에서 자료사진을 인용해서 아름다운 회암사지부도탑을 보겠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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