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청룡사는 참으로 많은 스토리를 갖고 있는 전통사찰입니다. 나옹화상이 암자였던 대장암을 청룡사로 창건한 설화와 안성 풍물놀이패인 남사당패와 바우덕이의 이야기 등은 청룡사를 찾게 하는 마중물 같은 존재입니다.

청룡사 대웅전은 그동안 해체보수중이어서 약 5년 6개월간(2016년 6월 ~ 2021년 12월) 대웅전을 볼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공사가 끝나서 볼 수 있습니다. 대웅전과 여러 문화재들을 보러 들렸습니다

 

※ 여기에서 인용된 사진자료는 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청룡사 입구에는 길 가운데에 청룡사 사적비가 있습니다. 그럼 여기도 청룡사의 땅이었는데, 길 가운데에 사적비가 있다는 것이 좀 보기가 그렇습니다.

이수(지붕돌)의 네 군데를 보면 용두를 조각하였습니다. 비문은 마멸되어서 알 아 볼 수가 없습니다만, 안내문을 보고 이해하면 됩니다.

 

▼ 청룡사 사적비에서 우측으로 100m을 가면 청룡사 부도군이 보입니다. 300여 미터를 더 가면 바우덕이 사당이 나옵니다.

 

▼ 청룡사 승탑(부도군)이 11기가 있습니다, 부지가 커서 아직도 많은 승탑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 청룡사 입구의 모습입니다. 여기에 주차장은 없으니 아래의 공영주차장(2500원) 주차하시고 걸어와야 합니다.

 

▼ 작은 다리를 건넙니다, 왼쪽길로 올라가면 서운산 등산로를 만나는 것 같습니다

 

▼ 청룡사를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사진입니다. 문화재청에서 자료사진을 가져 왔습니다.(2013년 촬영추정)

 

▼ 이문은 천왕문입니다만, 사천왕상은 없습니다. 사천왕상을 기대하고 들어갔다가 없어서, 좀 이상했습니다.

 

▼ 청룡사의 마당은 아주 넓직 합니다. 원래 부터 넓은것은 아니고, 일제강점기에는 좀 복잡했는데, 대웅전앞의 건물들을 재 배치하면서 넓어졌습니다.

 

▼ 청룡사의 범종루에는 사물(범종,법고,운판,목어)중에서 목어만 없습니다.

 

▼ 청룡사뿐만 아니라 모든 사찰에서 범종을 치는 시간은 대개 새벽과, 저녁인데, 청룡사도 하루에 두 번 칩니다, 낮에 한번 도 치는 사찰도 있다고 합니다. 범종을 치는 시간은 나무 기둥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4물에 대해서 치고, 두드리는 순서가 다르다고 하는데 새벽과 저녁에 순서가 바뀐다고 합니다.

- 새벽 : 운판->목어->법고->범종(28번)

- 저녁 : 범종(33번)->법고-> 목어-> 운 판

 

그럼 종을 몇 번 치는지를 찾아봤는데, 새벽에는 28번이고, 저녁에는 33번을 친다고 합니다. 자료를 보면 범종에 대한 구구절절 내용이 많아서, 그냥 대략적인 내용만 봅니다.

 

▼ 최근(2021년 12월)에 대웅전 해체 보수공사가 끝나서 훤하게 보입니다.

 

▼ 청룡당 앞의 대형 석조에는 물이 가득하고, 절집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 해체 보수공사가 끝난 대웅전은 깔끔합니다. 청룡사 대웅전은 그동안 수많은 보수공사가 있었지만, 해체 보수공사는 이번이 처음인 듯싶습니다.

 

공사는 2016년 6월~2021년 12월(5년 6개월)이었는데, 무척 오래 걸렸습니다. 공사비도 60억 가까이 들었다고 합니다. 목조 문화재 보수공사가 참 어려운 작업이 틀림없습니다.

 

▼ 대웅전 해체 보수공사를 할 때의 모습입니다. 무척 오랜 기간 보수공사를 하였으며, 2021년 12월에 끝났습니다.

 

▼ 청룡사 대웅전의 해제 보수공사 중에 기둥을 들어 올렸더니 곡자가 나왔습니다. 이 대웅전을 지은 대목장은 다 생각이 있었나 봅니다. 나중에 대웅전을 고칠 때 쓰라고... 그래서 421년 후에 짠! 하고 나타났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부스러기들은 아마도 기둥뿌리가 썩지 않게 하는 부식방지 약재들인 듯싶습니다. 그러니 나무 곡자가 421년 동안 그대로 쌩쌩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 곡자의 단위를 보면 지금의 자를 보는 듯합니다. 세 구간은 마치 1㎝를 10mm 단위처럼 표시를 하였고 一.二, 三四, 五(1,2,3,4,5)로 표시하였습니다. 아마도 이런 곡자를 가진 사람은 대목장과, 각 조의 책임자만 가지고 썼을 것입니다.

 

▼ 자료에서 보면 안성 창룡사는 고려말까지 대장암이었으나, 나옹선사에 의해서 새롭게 창건되고, 서운산에서 상서로운 구름 속에 청룡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청룡사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데, 이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1376)에 대해서 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름은 혜근(慧勤)이고, 법호는 나옹, 호는 강월헌(江月軒)입니다. 선사의 나이 21세 때 문경 공덕산 묘적암(妙寂庵) 요연선사(了然禪師)께 찾아가 출가했고,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였습니다. 여주 신륵사 여강변에는 나옹의 호를 인용한 강월헌이 있습니다.

 

나옹선사는 지금도 남아 있는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가수 성민호, 김영란, 조영남 등이 가요로 불렀습니다.

 

청산은 나를보고 /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 살다가 가라하네

 

▼ 자료사진으로 나옹선사를 그림으로 알아봤습니다. 문경의 대승사 묘적암에 있는 나옹선사의 영정이며, 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나옹선사는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 후 신륵사 앞 여강변에서 다비(茶毘) 후, 사리를 여주 신륵사, 양주 회암사(지), 원주 영전사(영천사) 탑에 분산 안치되었습니다.

 

사리를 안치한 여주 신륵사의 보제존자승탑(석종), 회암사(지)승탑, 원주 영전사지 삼층사리탑입니다. 영전사지 삼층사리탑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있습니다.


▼ 대웅전 좌측으로 있는 청룡당입니다. 종무소등으로 쓰고 있는 듯합니다.

 

▼ 대웅전 우측으로 있는 지봉당이며, 스님들의 요사채인 듯합니다.

 

▼ 대웅전 앞에 있는 고려시대의 삼층석탑이며, 대체로 훼손이 심한 상태입니다. 아마도 석탑을 도굴하다가 깨진 것으로 보이며, 상륜부는 없는 상태입니다.

 

▼ 대웅전의 우측에서 서북쪽 방향으로 보는 모습입니다. 종루 뒤에는 그동안 대웅전 보수공사 때문에 임시로 만들어 쓰던 대법당을 철거하는 중입니다.

 

▼ 자료사진으로 보는 옛날의 청룡사 대웅전 앞의 모습입니다. 2000년대 이전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대웅전만 빼고 많이 바뀌었습니다.

 

▼ 대웅전 앞마당에 삼층석탑 좌, 우로 괘불지주가 보이는데, 보통은 돌기둥 두 개씩 짝을 이뤄서 총 4개의 돌기둥이 있는데, 청룡사는 각각 하나씩만 있습니다, 아마도 괘불을 걸진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괘불을 걸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영산회괘불탱이 있기 때문입니다.

 

▼ 영산회괘불탱을 괘불지주에 걸었다면 아래 사진과 같은 모습이었을 것 같아서 사진을 합성해 보았습니다. 이와 같이 대형 걸개그림을 밖에 걸 때는 부처님 오신 날이나, 큰 설법 행사 때 신도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비좁은 대웅전 안에서 하지 못하고 대웅전 앞마당에 불단을 만들고 걸개그림을 걸어서 법회를 열었는데, 이때 생긴말이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고 한답니다.

 

▼ 대웅전의 여닫이문은 띠살무늬로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문틀 아래에는 청룡의 머리가 꽉 차게 그려져 있습니다.

 

▼ 오래 전의 대웅전 창살(빗살창)의 모양입니다. 보통 사찰의 창살무늬입니다.

 

▼ 문고리도 고급스럽게 금장 문고리로 바꿨습니다

 

▼ 자료사진으로 보는 청룡사 동종입니다. 다른 명칭은 사인비구_제작_안성_청룡사_동종(思印比丘製作_安城_靑龍寺_銅鍾)입니다. 승려 사인비구가 만들었다고 하는 동종 입니다.

 

동종의 안내문에 보면 보물 11-4호로 되어 있다는것은 사인비구가 동종의 제작에 관련된 종이 여러개가 있다는것인데, 총 8개가 제작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사인비구 혼자서 만든것은 아니며, 여러사람들이 같이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승려 사인비구가 만든 동종은 어떤 것이 있는가를 찾아봤습니다

- 1호 : 포항 보경사 서운암 동종

- 2호 : 문경 김룡사 동종

- 3호 : 홍천 수타사 동종

- 4호 : 안성 청룡사 동종

- 5호 : 서울 화계사 동종

- 6호 : 양산 통도사 동종

- 7호 : 의왕 청게사 동종

- 8호 : 인천 강화 동종(강화역사박물관)

 

문화재청에서 좀 더 자세한 내용을 가져왔습니다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1674년에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와 소리의 울림을 도와준다는 대나무 모양의 음통에 역동적인 모습의 용이 새겨져 있다. 또한 종의 어깨와 아래 입구 부분에는 연꽃과 덩굴을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으며, 어깨띠 아래에는 사각형 모양의 대가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보살상을 세웠다.

사실적으로 표현한 수법이 특히 돋보이는 작품으로, 사인비구가 김룡사종, 수타사종(1670)을 제작한 이후 완숙한 기량을 발휘한 수작인 점에서 조선 후기 장인 사회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청룡사 영산회괘불탱입니다. 크기가 무려 6.26m X 9m의 대형 걸개그림입니다. 지금 이 괘불탱은 보물이어서 다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불화를 전문으로 하는 승려가 따로 있었습니다.

 

▼ 자료사진으로 보는 청룡사 감로탱입니다. 문화재청의 자료사진으로 보니 자세히 보이지는 않습니다.

 

▼ 청룡사에는 3종류의 도난 탱화가 있습니다만, 아직도 수배 중입니다. 문화재를 도난당한 시기는 30년 전인 1991년 3월 7일~3월 8일 사이이며, 칼로 도려내어 훔쳐 갔다고 합니다.

 

▼ 대웅전 내부는 자료사진으로 보겠습니다. 2015년에 촬영되었습니다

청룡사 대웅전의 소조석가여래삼존상(塑造釋迦如來三尊像)은 흙을 빗어서 만들었다는데, 소조불상은 먼저 나무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입히고, 흙이 마르면, 표면에 천을 입혀서 굳힌다고 합니다. 

 

▼ 자료사진으로 보면 좌우 협시보살이 처음에는 소발과 육계가 그대로 보이는 상태로 있다가 지금은 보관을 썼습니다. 보살이 민머리로 있는 게 보기에도 이상합니다.

 

▼ 좌측 끝에 보이는 있는 관음보살좌상은 현재 관음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 안내문에 보면 석가여래좌상에서 복장유물이 나왔다고 하는데, 문화재청에서 인용한 자료사진으로 보겠습니다.

청색으로 물들인 비단에 붉은 글씨로 만든 날자와 스님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조성원문을 통해서 만력 31년(1603년,조선 선조36년)화원 광원(廣圓)이 수화승을 맡아 조성한 것이 밝혀졌습니다. 발원문에는 커다란 글씨로 화원(畵員, 조각승)들의 이름이 쓰여 있는데 6명(?)의 화원 가운데 일반인의 이름 이금정(李今貞)도 보입니다.

 

만력은 중국 명나라 황제 만력제(万历帝)의 연호입니다. 그리고 보니 명나라 황제인 만력제가 31년째이니 참 오랫동안 황제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만력제는 임진왜란 때 군대를 파병하였습니다. 그러니 선조에게는 큰 은인이었을 것입니다. 

 

▼청룡사 대웅전의 좌, 우 벽에 걸려 있는 감로탱입니다. 2015년에 촬영되었습니다.

 

▼ 대웅전 옆으로 돌아가 봅니다.

 

▼ 대웅전 좌측면에서 보면 지붕의 높이 앞과 뒤쪽이 다릅니다. 뒤쪽이 내려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진을 잘못 찍었나?... 그런 것도 아닙니다. 이유는 대웅전 앞과 뒤쪽이 차이가 나게 의도적으로 지붕을 만들었고, 앞쪽이 조금 더 들리게 하였습니다.  대웅전 앞 지붕만 들려있는데,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 대웅전의 기둥을 보면 이 대웅전을 만든 대목장의 지혜가 돋보이고, 자연적으로 휘어진 목재를 그대로 사용한 배포가 놀랍습니다. 그래도 400여 년을 버티고 있습니다.

 

▼ 대웅전은 여러 번 수리공사가 있었는데, 그 내역을 적은 중수기가 벽화 위에 걸려 있습니다. 중수기는 4개가 보입니다. 1개를 제외한 세 개는 글씨를 알 볼 수가 없습니다.

 

▼ 대웅전 지붕을 자세히 보면 추녀가 두 개인 것처럼 보이는데, 위쪽은 사래라고 하고 밑에는 추녀입니다. 사래는 대웅전 앞쪽에만 있고, 좌,우 옆쪽, 뒤쪽에는 없습니다.

 

추녀는 맞배지붕에는 없고, 팔작지붕이나, 우진각 지붕에만 있는데, 지붕이 홑처마인 경우에는 추녀만 있으면 되지만, 부연이 있는 겹처마가 있을 때는 추녀가 하나 더 걸리는데 이것을 사래라고 합니다.

 

대웅전 같은 경우에는  위엄을 나타내고, 아름다움을 배가 시키는 역할로 겹처마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보기에는 도도하고 아름다운 처녀가 턱을 약간 든 채 치마를 버선 위로 약간 들어 올린듯한 멋이 있습니다.

 

직업으로 전기일만 하다가 아름다운 전통건축을 보니 참 재미있고, 배워가는 기쁨이 있습니다.

 

▼ 대웅전의 사래와 추녀면에는 금강역사(?) 그려져 있습니다. 청룡사는 천왕문이 있기는 한데, 사천왕상은 없습니다. 사찰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이 없어서 이상 했으나, 추녀에 사찰의 문을 수호하는 금강역사를 그려 넣었으니, 천왕문에 사천왕이 없는 것이 이해가 됐습니다.

 

▼ 대웅전 앞쪽 사래면에는 청룡이 그려져 있고, 추녀면에는 금강역사(金剛力士)가 그려져 있는데, 칼과 창을 들고 있습니다.

 

▼ 대웅전 뒤쪽의 추녀면에는 금강역사가 그려져 있습니다. 대웅전 뒤쪽으로 사래가 없고, 추녀만 있습니다.

 

▼ 대웅전 옆에 있는 명부전입니다. 죽어서 천당인지, 지옥인지 10대 왕의 심판을 받는다는 시왕전입니다. 물론 염라대왕(5대왕)도 있습니다...

 

▼ 산신각도 아담합니다. 산신각은 불교가 대중 신앙인 산신을 받아들여서 불교 신중에 하나가 되었는데, 보통 신령각, 삼성각을 두는데, 산신각이 세워지기 시작한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라고 합니다.

 

▼ 대웅전 왼편에 보이는 산뜻한 봉향각입니다. 스님들의 공부방인 듯이 보입니다.

 

▼ 왼쪽의 청룡당과 오른쪽의 봉향각 사이의 모습입니다.

 

▼ 마지막으로 보는 관음전입니다만, 위치가 뒤쪽에 있어서 까딱하면 못 볼 수도 있습니다.

 

▼ 관음전 내부는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옛날 사진을 보면 대웅전에 있었습니다만, 관음전을 새로 만들고 따로 모신 듯합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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