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시의 서운산 자락의 동쪽에 있는 석남사에 여러가지 문화재를 보러 갔습니다. 

석남사의 자료를 보면 신라시대에 창건하여 오랜동안 수행도량으로서의 이름을 얻었고, 조선 세조는 친서교지(親書敎旨)를 내려 석남사의 모든 승려에게 사역을 면제하고 수행에 전념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승려가 우대받고 어느정도 지위가 있었지만, 유교를 받들고 불교는 배척하는 조선시대에는 승려들의 처지가 그리시 녹록지 않아서, 각종 성곽공사나 군역, 성곽수비등 여러 노역에 불려 다녔다고 합니다.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영산전, 석탑, 대웅전의 문화재들이 있고 또한 최근에는 도깨비라는 드라마를 촬영한 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절에서 수양하시는 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이 드나든다는것은 별로 좋지 않을 수 도 있을것입니다.

 

석남사의 문화재를 보면 보물 영산전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8호인 대웅전, 향토유적 제11호인 고려시대 석탑 2기가 있고, 절 입구에 향토유적 제28호인 석종형 부도 2기가 있습니다. 절 왼쪽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9호로 지정된 마애여래불상도 있습니다.


▼ 석남사는 서운산 자락의 능선이 좌우로 감싸고 있는 아늑한 곳에 들어서 있습니다. 좌측의 넓은 길 앞에서 보는 모습인데, 특별하게 일주문, 천왕문, 범종각등은 없습니다.

 

▼ 석남사 글씨 옆에 墻築下(장축하)라는 글씨가 보이는데,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담장을 새로 쌓은 다음에  표지석을 세운듯 합니다.

 

▼ 석남사의 원래의 출입문앞에 왔습니다. 일반적인 산사처럼 축대를 쌓고, 사람이 다니는 길은 계단을 만들었습니다.

 

▼ 절집의 규모는 그리 커 보이지는 않지만 보물 영산전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지정문화재가 있는 의미가 깊은 산사 입니다

 

▼ 서운산 석남사 현판을 걸어놓은 이 누각은 금광루(金光樓)라고 합니다. 금광루는 2003년 원공정무스님이 주지로 있을때 신축하였습니다. 한글주련이 참 특별하게 보입니다.

 

▼ 금광루에 서운산 석남사의 현판을 걸었습니다. 금광루가 일주문도 되고, 천왕문도 됩니다.

 

▼ 금광루 밑을 통해서 석남사 안으로 들어 갑니다. 일반적으로 산사는 경사진 터를 이용하여 토목공사를 하기 때문에 흔히 누각밑으로 통로를 만들기도 합니다. 천왕문에 있어야 하는 사천왕상이 금광루밑에 있습니다. 산사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 사천왕상은 동,서,남,북의 방향으로 각각 천왕이 있습니다만, 사찰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를 수 도 있습니다. 보통은 손에 들고 있는 지물에 따라서 구분하기도 하는데, 사찰마다 경전에 따라서 또는 전해 내려오는 관습에 따라서 사천왕의 이름은 달리 하므로, 이것이 맞다, 저것이 맞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석남사의 방향에 따라서 이름을 봍여 봤습니다.

 

▼ 사천왕상을 보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통 문 양쪽으로 각각 북쪽,동쪽,남쪽,서쪽으로 있습니다만, 사찰 마다 명칭은 지물에 따라 다를 수 도 있으므로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 동방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 : 칼 또는 비파

- 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 : 용과,여의주 또는 칼

- 서방광목천왕(西方廣目天王) : 삼지창,보탑 또는 용과 여의주

-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 : 비파 또는 삼지창과 보탑

 

▼ 금광루를 안쪽에서 바라보는 모습입니다만, 원공유물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그전에는 금광루(金光樓)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원공대사에 대해서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 법호 : 원공(圓空)
. 법명 : 정무(正無)

. 출생 : 1931년 4월 19일(음)

. 1968년 영주 포교당 주지

. 1971년 화성 용주사 주지

. 1983년 여주 신륵사 주지

. 2000년/2007년 안성 석남사 주지

. 2011년 9월 29일 입적

※ 정무스님은 임종계를 남겼는데, "내가 이 세상에 인연따라 왔다가, 바르고 정직하게 살다 간다. 도솔천 내원궁에서 우리 거기서 만나자"라고 하셨습니다. 

 

※ 금광루의 주련이 한글로 되어 있어서 보기 좋았고 글도 아주 마음에 딱 들었습니다. 아마도 정무스님께서 금광루를 완공후에 한글로 주련을 하셨을것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서운산아래 / 금광루에서 / 부처님광명 / 다시빛내리

 

▼ 원광유물관(금광루)의내부 사진을 자료사진으로 보았습니다. 원공당 정무 대종사의 사진은 석남사 홈페이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원래의 금광루 현판인데, 누각 옆에 방치 되어 있었습니다.(자료사진입니다) 금광루라는 이름은 석남사 지역이 안성시 금광면이라서 이름을 인용한것이라 생각합니다.

 

▼ 금광루 앞에서 대웅전까지 길게 이어진 계단을따라 시선을 옮겨 봅니다.

 

▼ 평일이라서 조용합니다

 

▼ 동요사라는 하는 당우입니다

 

▼ 굉장한 인기가 있었다고 하는 드라마였다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연식이 있다 보니...

 

▼동요사 마루에 있는 동종입니다. 석남사 대웅전범종 이라고 되어 있고,모양은 신라시대의 종모양을 참조하여 만든듯 합니다

 

▼ 계단을 올라가 봅니다. 이렇게 일직선으로 금광루에서 부터 대웅전까지 계단이 이어져 있고 계단의 좌,우로 산사의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는 산사는 별로 없는듯 합니다.

 

▼ 중심당(종무소)앞에서 금광루를 바라봅니다,

 

▼ 종무소앞 계단끝에 놓여 있는 맷돌입니다. 옛날 절에서는 직접 농사를 짓고, 쌀을 뽷아서 공양을 올리듯 합니다

 

▼ 영산전앞에는 두기의 석탑이 있습니다만, 완전한 석탑은 아닙니다.

 

▼ 두기의 석탑이 몇층의 석탑인지 구분이 없습니다. 오른쪽 석탑을 보면 갑석이 있고, 옥개석이 3층이며 아무렇게나 생긴 보주가 올여져 있으며, 오른쪽 석탑은 갑석은 없고, 옥개석은 4층까지 있어서 5층석탑이었을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 화려한 3칸의 목조건물 영산전입니다. 1562년(조선 명종17년)에 지은 아주 오래된 건축물입니다. 자세히 보면 공포 사이에 석가모니불을 넣었습니다. 그것도 수인의 모양을 다르게 해서. . . 

 

▼ 안내설명에는 삼존불을 모셨다고 하는데, 좌,우 협시불없이 단독 석가모니불을 모셨습니다. 2013년 자료사진에는 협시불이 보이는데 2015년사진에는 없는것을 보면, 2013년~2015년 사이에 따로 모신듯 합니다. 오백나한이 아주 빼곡합니다.

 

▼ 영산전 우측에는 부모은중경탑이 보입니다. 어디서 본듯한 모습에 옛날사진을 찾아보니 화성 용주사의 부모은중경 탑입니다. 모양 거의 똑 같습니다. 탑의 모양이 똑같은 이유는 정무스님이 평소 효를 중요시 하셨는데,  2003년 석남사의 주지를 하실때 용주사의 부모은중경탑과 똑같이 부모은중경탑을 세웠습니다.

용주사 부모은경탑에는 불기 2524년이 새겨져 있으므로 서기로 하면 1981년 10월이 됩니다.

 

▼ 부모은중경탑 뒤에는 약사여래불좌상이 모샤져 있는데, 좁은 공간인데도 축대를 쌓고 둥굴게 담을 만들고 중앙에 감실에 여래불을 모셧습니다.

 

▼ 대웅전으로 오르는길에 내려다 보는 금광루입니다. 이 곳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석남사의 매력인듯 합니다.

 

▼ 대웅전입니다. 석남사의 대웅전은 맨 뒤에 있습니다. 보통은 산사의 중앙에 있는것이 보통인데, 안내판을 보면 영산전앞에 있었으나, 1978년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 닷집을 올려서 위엄을 갖추었습니다

 

▼ 맞배지붕에 다포계 대웅전입니다. 

 

▼ 대웅전 벽화는 청룡을 그렸고,  석남사가 있는 서운산은 청룡의 설화가 있는 산입니다. 서운산 너머 남쪽에는 청룡사가 있습니다.

 

▼ 대웅전에서 내려다 보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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