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군과 가평군의 경계에 있는 화악산에서 북쪽의 화천군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서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곡운구곡(谷雲九曲)에 조선중기의 선비 하나가 운둔하며, 성리학의 가르침대로 살아갔던 흔적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하여 화음동정사(華川華陰洞精舍址)라고 하는데, 터만 남아 있었으나, 기록이 남아 있어, 1990년에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된 곳으로써 중앙권력의 비정함과 서로의 죽음만을 강요하는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깊은 계곡에 숨어서 성리학을 배우고 가르쳤던 김수증의 운둔처를 둘러봅니다.
조선에서 성리학의 성지라고 하면 두곳이 있는데, 하나는 괴산의 화양구곡(송시열)이고, 다른 하나는 화천의 곡운구족(김수증)이라고 합니다
▼ 저 멀리 험준한 화악산을 배경으로 화음동정사(華川華陰洞精舍址)의 일부가 터만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지방도로가 화악산을 넘나들지만, 조선시대에는 길이 계곡을 피하여 산속으로 있었다고 하니, 화암동은 그야말로 최고의 은신처였을 것입니다.
▼ 복원도를 자세히 보면, 정자 한두개를 지어 놓고 운둔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 같이 수십 명이 생활했을 정도로 건물이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수증이 벼슬을 그만두고 화음동으로 옮겨올 때 가족들 모두 데리고 왔었다고 하니, 십여채 정도의 건물이 필요했었을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길에서 월굴암(송풍정), 천근석까지 다리(한래왕교)를 놓았다는 것인데, 지금의 지형을 봐도 보통일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삼일계곡은 단풍에 젖어 들기 시작하면서 아름다운 계곡의 멋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때 김수증도 이런 아름다운 계곡에서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숲에서 외롭지만, 넉넉한 삶을 즐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급격한 단애에 떨어지는 물소리는 세상의 번잡함을 한 순간에 잊게 해 줍니다.
▼ 화음동정사지에서 보이는 것은 두개의 정자뿐입니다.
▼ 커다란 바위 위에 놓인 정자는 송풍정이며, 큰 바위는 월굴암입니다. 기록에서 보면, 월굴암에 다리를 걸쳐놓고 건너 다녔다고 합니다.
▼ 계곡 건너서 보이는 정자는 삼일정이며, 통 바위에 기둥을 세개 세우고 초가를 얹었습니다
▼ 기둥이 세 개인 삼일정이며, 바위에는 삼일정(三一亭)이 각서(刻書)되어 있습니다
▼ 조선시대 선비의 로망인 정자를 짓고, 친구들과 담소하며, 시를 짓고 때로는 국가와 왕실에 대한 걱정으로 시간을 보냈을 정자는 소박한 초가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 [자료] 삼일정옆에 암반에는 그림과 같이 성리학에서 가르치는 우주의 정석을 표현한 그림들이 있으며, 글자는 하(河), 낙(落), 羲(희), 문(文)의 네 글자와 인문석(人文石)이 옆에 새겨져 있습니다.(실제 측정한 그림이라서 좀 기울어져 보입니다)
▼ 하도낙서(河圖洛書)의 앞 글자 河(하), 洛(낙)자를 차용하여 한들자씩 새겼습니다.
▼ 복희팔괘, 문왕팔괘에서 희(羲)자와 문(文)자를 차용하였습니다. 이렇게 총 7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어려운 용어의 뜻은 전혀 이해가 안 가서 좀 더 알아보기를 그만두었습니다...
▼ 태극은 우주만물의 근원이라는 사상입니다
▼ 머리 복잡한 각서(刻西)는 이제 그만 들여다 보고, 계곡의 가을맛이나 봐야겠습니다
▼ 월굴암 위에 정자(송풍정)는 어떻게 세울 생각을 했을까?
▼ 화천박물관 삼층(옥상에 간이건물)에 곡운구곡 특별전시회가 열기고 있어서 자세하게 보고 왔습니다
▼ 김수증의 호가 곡운(谷雲)인데, 아마도 자신의 호를 계곡마다 9개의 명소를 만들고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설명에 숙종실록(35권)에 김수증의 졸기가 적혀 있는데, 매우 고상하다고 적었습니다. 보통 졸기(卒記)는 사람이 살아 있을 때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고, 죽고 나서 그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에 비교적 사실 그대로 적었다고 합니다)
▼ 곡운구곡을 알아보겠습니다.(그림의 글씨가 크게 다시 적었습니다)
제1곡, 방화계(傍花溪)
제2곡, 청옥협(靑玉峽)
제3곡, 선녀협(神女峽)
제4곡, 백운담(白雲潭)
제5곡, 명옥뢰(鳴玉瀨)
제6곡, 와룡담(臥龍潭)
제7곡, 명월계(明月溪)
제8곡, 용의연(隆義淵)
제9곡, 첩석대(疊石臺)
▼ 화천문화원에서 곡운구곡의 사진을 인용하여 아름다운 계곡의 경치를 보겠습니다
※ 곡(谷)마다 시를 지었는데, 김수증 본인, 김수증의 아들, 조카, 외손 등 아홉 명이 시를 읊었다고 합니다.
▼ 김수증의 할아버지가 김상헌(15대)이었군요!!!
▼ Display의 버튼으로 조작하면, 매우 느리게 변환되기 때문에 . . .좀 그렇습니다
▼ 제2곡 청옥협이 제3곡으로 잘못인쇄 되어 있습니다.
- 여기까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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