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의 민통선 안에 아주 귀중한 보물 석등이 있습니다만, 아무 때나 드나들 수 없는 곳에 있기 때문에, 석등을 보려면 화천박물관에 가야 합니다.
▼ 박물관 구석에서 만나는 석등은 보통 흔하게 보는 일반적인 석등과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만, 시민들을 위해서 모작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 박물관 로비의 대형스크린에서 계성사터와 계성사 석등에 대한 자료를 먼저 알아봅니다
▼ 계성사는 고려초에 창건되어 조선초까지 운영되었으며, 금강산 정양사와 매우 흡사한 가람의 형태를 가졌다고 합니다
▼ 계성사터를 발굴조사하는 모습인데, 법당의 구조가 일반적인 일자(一) 형이 아닌 8 각형으로 되어 있고 금강산 정양사와 똑같은 구조여서 거의 같은 시기에 화천 계성사와 금강산 정양사를 지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금강산 정양사를 일제강점기 때 찍은 사진(조선고적도보)으로 8 각형의 법당이 보이고, 석등이 보이는데, 계성사 석등과 매우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화천 계성사도 금강산 정양사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가람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절집에서의 석등의 개념은 촛불을 밝히는 용도가 아닌 진리를 밝히는 등불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계성사에는 두 개의 석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한기의 석등만 남아서 지금 우리들에게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 계성리석등의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옮겨 보았습니다.
화천 계성리 석등(華川 啓星里 石燈) |
이 석등은 계성사에 있던 것으로 원 위치는 알 수 없다. 다만, 현재의 자리에서 계곡 위쪽으로 약 200m 지점에 법당터가 있고 석탑이 무너져 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의 자리는 계성분교가 있었던 곳인데, 석등은 주민들이 학교 정원석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1960년경 옮겨 놓은 것이라 한다. 지대석(地臺石)이 보이지 않고 지붕돌의 귀꽃이 일부 깨진 것을 제외하고 모든 부분이 완전하게 남아 있다. 이 석등의 특징은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이 6각형이라는 점이다. 석등을 받치는 기둥돌은 북 세 개를 연결해 놓은 양식을 취하고 있다. 북과 같은 부분에는 문의 모양 4개를 배치하고 그 사이마다 연꽃과 고사리 무의를 새겨 놓았다. 이것은 실상사 석등에서 볼 수 있으나 퇴화한 양식이다. 각 면의 부재(탑의 각 부분에 쓰인 재료)를 따로 조립하여 만들어 기존의 석등과는 다른 면을 보이고 있다. 지붕돌에는 귀꽃이 장식되어 있으며 물매는 완만하나 폭이 넓어 안정감을 주고 있다. 총 높이는 2.77m로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 지대석(地臺石;기초부에 까는 받침돌) ※ 귀꽃(탑 지붕돌의 추녀마루 끝에 꽃무늬를 새긴 장식) |
▼ 계성리 석등의 특징은 고려초에 유행하던 둥근 간주석에 일정한 간격으로 북을 세 개 엎어 놓았고 화려한 무늬로 치장을 하였습니다
▼ [자료사진] 계성리석은 높이가 2.77m로서 무척 큰 석등인데, 사람과 비교하여 높이를 비교하여 보겠습니다(화천박물관 관계자와, 관광탐험가 문경수 씨)
▼ [자료사진;유리건판] 금강산정양사의 석등도 비교해 보겠습니다. 스님의 가사를 보면 두루마기를 입었는데 조선시대 스님들의 일반적인 외출복인듯 합니다.
▼ 좌측, 중앙, 우측으로 각각 찍어 보았으나, 방향성을 쉽게 알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비율로 만들어졌습니다
▼ 석등을 상, 하 두 부분으로 자세하게 보겠습니다.
▼ 금강산 정양사와 화천 계성사는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석등도 매우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붕돌의 모양이 다르며, 지붕돌 이하는 거의 같은 모양입니다
▼ 자료사진으로 화천 계성리에 있는 석등을 참고적으로 보겠습니다.(출처;문화재청)
▼ 지붕돌 귀꽃
▼ 화사석 내부
▼ 간주석
- 여기까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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