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서 보면, 겨울 관광상품인 산천어축제로 많이 알려진 화천군에 몇 가지 문화재를 보기 전에 먼저 박물관에 들렸습니다.

 

박물관에서 보면 화천군의 특징이 군 소재지를 흐르는 북한강이 있어서 선사시대에는 수렵,농경이 발달한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선사시대의 유물들이 시대순으로 잘 전시되어 있으며, 큰 도시 같은 번잡함이 없어서 여유롭게 유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 아담한 모습의 박물관이며, 북한강 바로 옆에 있고, 주차장은 박물관 뒤편에 있습니다.

 

▼ 벼를 베고 나락을 찧는 연자방아를, 원형 모습 그대로 재현하여 놓았으며, 연자방아는 소의 등에 긴 막대를 매달고 빙빙 돌게 하면 마찰에 의해서 벼의 껍질을 까는 도구입니다

 

▼ 외부에 전시된 딱 하나의 작품인 개미와 베짱이

 

▼ 박물관 로비에서 보면 커다란 스크린에 각종 문화재를 보여주는데 이거 아주 잘 만들었습니다. 관심 있는 문화재를 누르면 자세하게 안내해 주는데, 전시실에 들어가기 전에 한번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 먼저 스크린에서 계성사터의 계성리석등을 한번 선택해서 자세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석등을 보러 박물관에 오게 되었습니다만, 박물관에 있는 계성리석등은 모작이고, 원본은 계성리에 있습니다.

 

▼ 박물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위라리칠층석입니다.

 

▼ 화천이 통일신라 이후에 낭천(狼川)이었고 한때는 현감을 두기도 했었던 제법 큰 고을이었습니다

 

▼ 화악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 근처에 김수증이라는 성리학자가 정치를 멀리하고 자신의 삶을 살았다는 화음동정사에 대한 안내문입니다


▼ 화천박물관에서는 대부분 북한강 유역에서 발굴한 유적지에 대한 안내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북한강 유역의 유적지를 보면, 상류에서부터 위라리유적, 용암리유적, 원천리유적, 거례리유적이 있습니다.

 

 

▼ 화천군의 위치를 보면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있으며, 자동차로 가도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먼 곳입니다. 

 

화천군의 인구는 현재 2만 3천 명이며,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마찬가지로 인구는 꾸준히 줄고 있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2023년도 현재는 다행히 약간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 화천박물관의 로비의 모습입니다. 박물관의 크기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화천의 역사를 잘 전시하여 놓았습니다

 

▼ 먼저 1층의 기증자료 전시실부터 들어가 봅니다.

 

▼ 양반들의 놀이였다는 승경도는 자제들에게 벼슬의 품계를 알려주기 위한 놀이였다고 합니다.

 

▼ 승경도 놀이판에 보면 조선에 이렇게 많은 벼술이 있었다니, 지금과 비교해도 적지 않은 벼슬자리가 있었습니다

 

▼ 토기는 선사시대에서부터 인간의 식생활에 아주 중요한 도구였으며, 지금도 흙으로 만들어지는 식기는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도구이며 예술이 가미된 예술품이기도 합니다

 

 

 

 

▼호작도(왼쪽)와 책가도(오른쪽)

 

▼ 화천의 주요 관광지의 사진들입니다


▼ 2층의 상설전시장입니다.

 

▼ 2층의 상설전시장은 주로 선사시대의 토기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인간들이 살아온 시대는 기록이 없었던 선사시대와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역사시대로 구분합니다.

 

선사시대란 문자로 된 기록이 없는 시대를 말하며, 석기시대(구석기, 신석기),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나누어지고 있으며, 이 기간은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온 기간을 수백만 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역사시대는 대략 3000년 정도로 본다면, 우리는 선사시대 인간들이 살아갔던 기간의 약 10%의 정도밖에 안 되는 안되는 기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 반달돌칼의 특징은 두 개의 구멍이 있다는 것인데, 구멍에 줄을 끼워서 휴대하기 좋게 하였고 주로 곡식을 벨 때 쓰였습니다

 

 

 

 

 

▼ 선사시대의 대형토기들의 전시공간입니다

 

▼ 백제시대의 화천지역에서 발굴된 토기류들의 전시공간입니다

 

▼ 화천은 1950년의 6.25 전쟁 때는 수많은 전투가 벌어진 곳이며, 전쟁이 잠시 멈춘 뒤에는 수많은 전투부대가 주둔하는 지역입니다

 

▼ 화천에서 벌어진 전투 중에서 가장 큰 전투는 파로호전투라고 할 수 있는데, 청성부대(국군 6 사단)가 용문산 부근에서 중궁공군과 전투를  시작하여 파로호에서 중공군 3개 사단을 전멸시킨 전투가 가장 큰 전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군 6사단은 사창리전투에서 중공군에게 거의 전멸하다시피 패하여 용문산 부근까지 후퇴하였던 부대인데, 얼마나 급하게 도망쳤는지, 미군이 준 대포등 중화기까지 그냥 두고 도망쳐온 부대였지만, 파로호에서는 중공군을 그냥 몰살시켜 버렸습니다.

 

한여름에 전투가 끝난 후에 보니까 얼마나 많은 중공군이 죽었는지 사체를 일일이 묻을 수가 없어서 불도저로 그냥 호수에 밀어 넣었다고 합니다.

 

파로호(破虜湖)라는 이름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직접 작명하였습니다.

 

그들이 또다시 이 땅을 넘 보겠다면 파로호의 전투를 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2층의 전시실 밖에 있는 옛날의 농기구들입니다.

 

▼ 특이하게 생긴 쥐덫(오른쪽 2개), 아래는 메밀로 반죽한 냉면재료를 압축하여 면발로 짜내는 도구 

 

▼ 짚으로 새끼를 자동으로 꼬아 주는 제승기로서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들여온 기계로 옛날에는 동네마다 두어 대씩은 있었습니다

 

▼ 나락을 넣고 핸들을 돌리면 강한 바람으로 나락에 붙은 짚등을 날려 보내는 기계인 선풍기

 

 

▼ 옛날에는 대마로 삼베옷을 만들어 입었으므로, 습한 농지에는 대마를 많이 심었는데, 지금은 대마의 잎에 마약성분이 있어서, 약제를 만들기 위해서 특별하게 허가 없이는 재배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 아낙네들의 꾸밈 도구들입니다

 

▼ 한약방에서 약제의 무게를 재던 저울과 약제도구들입니다.

 

▼ 각종 저울들입니다. 큰 저울은 돼지를 묶어 놓고 무게를 재기도 하였고, 쌀가마의 무게를 재기도 하였습니다

 

▼ 산속에서 짐승들을 사냥할 때 쓰이던 도구와 물고기들을 사냥할 때 쓰였던 도구들입니다

 

▼ 박물관 2층에서 바라다 보이는 북한강이며, 겨울이면 산천어축제가 열릴 것입니다

- 여기까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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