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박물관에서 말고개전투 전시실의 내용만 따로 알아보았습니다

 

※ 자료사진은 나무위키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박물관의 특별전시실에 말고개전투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말고개전투를 이해하는데 부족하여 여러 자료를 인용하여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았습니다.

 

▼ 순천출신의 특공대가 전투직후 파괴된 SU-76 자주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앞줄 우측이 조달진(1928~2008) 당시 일병입니다.

 

조달진일병(6사단 19연대)은 홍천 말고개, 상주에서 전차 특공대로 두 번 참전하였으며, 각종 훈장(을지무공훈장,화랑무공훈장,태극무공훈장)를 받으신 분입니다.

 

▼ 6.25 전쟁중 전선의 현화를 하나의 지도에 표시하였습니다

 

▼ 6.25전쟁 개전초기 북한군의 남침경로

 

▼6.25 전쟁당시 노획된 SU-76 자주포를 살펴보는 국군입니다. SU-76 후기형 자주포이며, 소련은 북한에 약 180대를 넘겨준 것으로 보입니다.

 

▼ 자료사진이 너무 작아서 현재 어느 곳인지 알 수 없지만, 화양강휴게소 뒤쪽인 듯 보입니다. 작은 글씨로 말고개 육탄 11 용사의 개요가 쓰여 있습니다

홍천에서 발발한 날고개전투는 1950년 6월 28일 새벽, 북한군 제2군단의 공격을 저지해 국군의 조기 붕괴를 막아낸 전투이자 6.25 전쟁 최초의 국군승리로 이야기되는 전투이다 불리해지는 전황 속에서도 자신의 몸을 내던져 승리를 이끌어 희망의 불씨를 만들어 낸 육탄 11 용사의 숭고한 업적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여러 자료를 참고해서 말고개전투가 벌어진 위치를 추정해 보았습니다

 

▼ 홍천 말고개전투의 앞, 뒤 현황을 간단하게 알아보겠습니다.(당시 말고개전투 전에 1차 전투를 벌여 다수의 적을 사살하고, 2차 전투는 단독으로 말고개를 넘다가 전멸한 SU-76 자주포와, T-34 전차인 것으로 보입니다)
 
말고개 전투는 1950.6.27 ~ 6.28일 강원도 홍천의 유일한 진출로인 말고개에서 벌어진 전투입니다. 국군 6사단 19 연대장 민병권 (1918 ~ 1992) 중령은 말고개의 지형이 도록 폭이 좁고 굴곡이 심해 대전차방어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고 북한군의 전차(실제로 SU-76 자주포)를 파괴하기로 하고, 특공대를 직접 선발하였습니다.
 
특공대는 지원자로 뽑았으며, 30여명중 결혼등의 이유가 있는 병사들을 제외한 11명을 선발하였으며, 특공대의 무장은 81mm 박격포탄 1발과 수류탄 2발씩을 분배받았고, 북한군 전차(자주포)의 장단점과 파괴요령을 교육받았으며, 6월 28일 새벽 4시경을 기해 적의 주력 탱크부대를 격파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음. 

 
※ 말고개전투 개요 

 

1. 일시 : 1950년 6월 27~28일 

2. 지역 : 말고개(홍천) 

3. 적군 : 북한군 제 7 사단 예하부대(후에 12사단) 11대 전차 

4. 아군 : 국군 제6사단 19연대(연대장 민병권중령) 특공대 11명※ 작전경과 - 춘천에서 홍천으로 이동한 6사단 19연대장(중령 민병권)은 대전차공격 특공대 지원자 30명중 11명을 선발

 

- 무장은 81mm 박격포탄(4kg, 1발), 수류탄(2개) 및 연막탄

- 특공대 교육(임택규 이등중사) .

.해치가 열려 있으면 수류탄과 화염병을 그 속에 투입한다

. 해치가 닫혀 있으면, 81mm 박격포탄을 궤도에 밀어 넣어 파괴한다

. 박포탄이 불발이면, 연막탄으로 시계차단하여 해치개방을 강요

. 계획대로 안되면 화염병을 엔진실 상판에 투척

 

- 특공대는 27일 22:00 폭우를 무릅쓰고 3/4톤 트럭에 탑승 말고개로 출발

- 조달진일병이 적군의 통신선을 돌로 절단하려다 발각되어 작전실패

- 28일 특공대는 S자 급경사 커브길 배수로에 6개 특공대(각 2명)를 10~20미터 간격으로 배치
 
※ 전투내역과 전과(자료마다 내용이 많이 달라서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 먼저 국군 57mm 대전차포로 1차 사격하고, 조달진일병이 박격포탄(81mm_ 1발을 궤도에 넣었으나 불발됨

- 2차  57mm 대전차포가 전차에 명중되고, 승무원이 허둥대며 해치을 열자 조일병이 신속하게 해치 안으로 수류탄과 화염병을 집어넣음 

- 중간 특공조는 연막탄으로 시계를 차단하고 승무원들이 도주하자 다른 보병들이 사살 

- 적전차 4대 파괴 노획 6대, 적사살 24명, 아군은 부상 1면

- 특공대원전원 1~2계급 특진 및 훈장수여
- 3일간 홍천에서 북한군을 지연시킴
 
※ 말고개에서 파괴 된 전차는 전부 T-34 전차가 아니고 대부분 SU-76 자주포라는 자료도 있습니다(궤도가 달린 SU-76 자주포와 T-34 전차를 구분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  그런데 박격포탄을 전차궤도에 밀어 넣었다고 이게 터지나???,  참고로 현재의 81mm 박격포탄이며, 무게는 약 4kg입니다

 

▼ 1975년 홍천 군민들이 성금을 모아 조달진 소위를 비롯한 육탄용사들의 전적비가 있습니다.

 

※ 전적비의 비문은 중앙, 좌측, 우측에 하나씩 있는데, 홍천 말고개전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 비문 그대로 옮겨 보았습니다.

 

전투는 하나인데, 내용은 조금 다른 비문이 좌측과 우측에 있어서, 전투경과에 좀 문제가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전적비문(중앙)
반만년 역사의 비극인 6.25! 평화롭고 살기좋은 이 강토에 잔악무도한 공산군의 불법 남침으로 인하여 고요한 이곳 홍천에도 악마와 같이 밀려드는 북괴군 정규 7사단을 맞아 강토를 지키려는 피끓는 국군용사들은 열악한 장비와 병력으로 오직 조국과 민족을 구하겠다는 일념에서 국군 6 사단 주력부대인 제 2 연대와 에비부대인 19연대 용사들은 각기 “대전차 돌격대”와 “육탄 특공대”를 조직하여 적 자주포 1대와 탱크 9대를 폭파 및 노획하는 6.25개전초 아군 독자적인 힘으로 승리를 거두는대 전과를 올림으로써 6월 30일까지 이곳 홍천 동.북부 전선을 방어하여 풍전등화같이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한 자랑스런 국군용사들의 살신성인 호국정신을 길이 후손에게 계승 및 선양하기 위해서 이곳 말고개 갈림길에 홍천군민의 성금으로 전적비를 세워 님들의 얼과 넋을 받들고자 한다.

1999년 12월 22일


※ 당시 지휘관


제 6  보병사단장 준장 김종오

제 2  보병연대 대령 함병선

제 19 보병연대 중령 민병권


※ 좌측의 돌격용사 전공탑

 돌격용사전공탑(좌측)
1950년 6월 26일 김주형소령(2연대 1대대장)은 대전차 돌격대를 조직하여 자은리에서 적 전차 2대를 격파하여 적의 기세를 꺽은 후 철정리로 돌격해오는 적의 전차부대를 맞아 보병과 전차를 분리하는데 성공, 말고개 정상으로 돌진해오는 적 전차를 향하여 대전차포 사수인 김학두일등중사외 10명의 돌격대원들은 적 1번 탱크를 향하여 57미리 대전차포를 이용, 1탄 철갑탄을 적 자주포바퀴에, 2탄은 정면에 명준시켜 화염이 차인 틈을 타 일제히 공격을 감행하여 선두자주포와 탱크를 폭파하는 대 전공을 세움으로써 위기에 처한 아군을 승리로 이끄는 게 기여를 한 자랑스러운 돌격용사들의 호국정신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서 이곳에 전공탑을 세워 님들의 넋을 위안코자 한다.-1999년 11월 일

 

※ 우측의 육탄용사 충용탑

육탄용사충용탑(우측)
1950년 6월 27일 오후 민병권 연대장은 홍천국교 교정에 도착한 3대대장병들 중에서 11명의 용사를 선발하여 박준수 중위(육사8기)의 지휘하에 말고개에 도착한후 2명이 1개조씩 조를 편성하여 도로 양쪽에 시체를 가장하여 매복중 대전차포 대원들의 집중화력지원으로 적 전차가 움찔하고 동작을 멈추자 조달진 대원이 1번, 양화진 대원이 3번, 원근호 대원이 5번 전차등을 일제히 공격하여 적 자주포등 전차 10대를 폭파하는 개전초 아군 독자적인 노력으로 대승을 거둠으로써 우리고 육탄으로 적 탱크를 부술수 있다고 하는 신화를 창조하여 군의 사기 양양 및 전투력 강화에 기여함은 물론 위기에 처한 전선을 유리하게 이끈 육탄용사님들의 멸사봉공의 호국정신을 군의 귀감으로 삼고자 충용탑을 세워 그 숭고한 얼을 받들고자 한다.

1999년 11월 일

 

▼ 말고개에서 57mm 대전차포로 북한군의 SU-76 자주포를 공격하는 그림이며, 자세히 보면, T-34 전차가 아니라 SU-76 자주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국가보훈처에서 말고개전투에서 북한군을 공격한 육탄용사의 내력을 알리는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

 

※ 국군의 방어무기

 

1) 57mm 대전차포

 

 

※ 북한군의 SU-76 자주포이며 국군은 이 궤도 달린 자주포와 T-34 전차를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차로 오인하는 자료가 많습니다.

 

▼ 이 SU-76 자주포는 (구) 소련에서 T-70 경전차에 76mm ZIS-3 사단포를 얹어서 급하게 만들었지만,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멀티 플레이어로서 대단한 성능을 뽐냈으며, 6.28 남침 때 북한에는 약 180여대가 있었습니다.

 

6.25 남침 당시 남한군에는 기갑부대를 상대할 만한 무기가 없었으므로 SU-76 자주포를 대포처럼, 탱크처럼 써먹었습니다.

 

SU-76 자주포는 76.2mm 사단포를 기본 무장으로 시속은 약 40Km로서 탱크와 비숫한 정도입니다. 분당 25발 사격이 가능하고 사거리는 약 13km 정도입니다.

 

SU-76 자주포에 장착된 ZIS-3 사단포는 명중율도 좋고, 다루기 쉽고, 정비가 쉬워서 아직도 북한에서는 서해 해안포로 운용 중입니다.

 

▼ 프라모델로 북한군의 SU-76 자주포의 전투실을 보면 개방되어 있어서 방어에 취약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주, 엔하비에서 인용)

 

▼ SU-76 자주포는 6.25 남침 초기에는 나름대로 미친활약을 했지만, 국군에서 취약점에 대한 집중공격으로 거의 사라졌습니다

 

※ 북한군의 T-34 전차는 6.25남침 초기 SU-76 자주포와 함께 취약한 국군의 방어전선을 무너트렸습니다

- 여기까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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