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의 보개산 아래 구절암(九節庵, 일명 칠절사)을 찾아가는 길은 큰길에서 1.5km 정도의 거리지만, 산길은 외길이고 구불구불해서 한참 올라가는 느낌이 듭니다.

 

보통의 산사는 대부분 길이 좁아서 그러려니 하지만, 길도 좋지 않고, 또 마추치는 차가 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 찾아가는 산사에서 도시의 번잡함을 잠시 잊고 오는 작은 행복한 하루이기도 합니다.

 

※ 구절암 마애불(마애여래좌상)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입니다.


▼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려 온 구절암은 의외로 넓은 마당이 있으며, 곧장 올라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 높다랗게 자리잡은 구절암의 마당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나무들이 여러 그루 보이는데, 바람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하기만 합니다.

 

▼ 구절암은 중건기(서기1968년)에서 백제시대에 처음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고, 다만 기와조각에서 발견된 강희(康熙)라는 글자가 발견된 점으로 미뤄볼 때, 구절암은 늦어도 1662∼1722년 사이에 사찰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런데 보통은 연호 몇년, 예를 들어서 강희3년 이렇게 표기를 하는데, 그냥 강희라는 명문만 있었다니, 좀 이상합니다.

 

※ 강희(康熙), 서기 1662∼1722년까지 사용됐던 청나라 강희제의 연호

※ 1622~1722, 조선 현종(3년)~조선 경종(2년) 사이의 기간으로 60년간입니다.

 

▼ 대웅전옆에 샘이 있어서 들여다보았는데, 샘물은 양이 거의 없었으며, 마실 수 없는 물이었습니다.

 

▼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는 약간 기울어져 보이는데 처음부터 기울어져 있었는지 아니면 지반 침하로 기울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 "上典彌勒庚子生金沙童ㅁㅁ월일"이라는 글씨는 대응전옆 샘물이 있는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경자년(庚子年)에 태어나고 미륵을 상전으로 모시는 김사동이라는 어느 신도가 ㅁㅁ월(알 수 없는 글자가 2자 이므로 10월, 11월, 12월 중 하나)에 새겼다는 것인데, 어느 때 인지 글자가 없어서 아쉽습니다

 

※ [자료사진] 바위에 새겨진 명문을 보면 지금의 마애여래좌상을 오래전에는 미륵이라고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 마애불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보이는 어미거북이와 새끼거북이 모습인데, 아마도 구절암이 구항면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구항이(龜項)의 뜻은 거북의 목덜미라는 뜻입니다.

 

▼ 기울어진 바위에 마애여래좌상을 새겼습니다. 보통의 마애불은 서 있는데, 구절암 마애불은 특이하게 좌상입니다. 아마도 바위면의 면적이 작아서 좌상으로 처리하였겠다 싶습니다.

 

▼ 구절암 마애여래좌상은 솟아 있는 바위면의 오른쪽에 상호는 돋을새김을, 나머지는 선각으로 처리한 기법이 매우 특이하게 보이고. 상호(얼굴)는 신체에 비해 크게 처리하여 표현하였습니다

 

마여여래상의 크기를 보면, 높이는 대략 320cm, 폭은 190cm인데  얼굴높이만 130cm로서 신체(190cm)에 비해 크게 표현하였습니다.

 

신체는 통견의 법의로 가려졌고, 하부는 결가부좌로 처리하였지만, 대체로 얼굴이 크게 처리하여 나머지는 상대적으로 신체는 작아 보입니다.  

 

▼ 구절암 마애여래좌상은 고려시대(13~14세기)의 걸작으로 추정하는 매우 걸작으로 꼽히는 마애불로 보입니다.

 

▼ 대웅전 뒤편에는 조성된지 얼나 안되어 보이는 5층석탑이 잘 만들어져 있는데, 보통의 석탑은 보통 본전 앞에 세우는데, 본전 뒤에 세워서 좀 이상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 5층석탑에서 내려다보는 대웅전입니다. 구절암은 대웅전, 삼성각 산신각, 요사채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마애여래좌상 뒤쪽에는 마치 부도(승탑)처럼 보이는 탑(?)이 보이는데, 부도와 매우 비슷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 가을이 물들어 가는 산사는 이제 점점 더 짙은 가을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 여기까지입니다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