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 결성면의 고산사는 청룡산 중턱에 있는 규모가 작고 아담한 사찰입니다
고산사는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창건 하였다고는 하지만 창건기록이 없어 사실로 보기는 어렵다고 하며, 사찰 안에 남아 있는 3층석탑과 석조여래입상 등을 볼 때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 산의 중턱에 자리 잡은 고산사는 축대를 튼튼하게 쌓고 전각은 일렬로 배치하여 간결한 느낌이 듭니다
▼ 공적비에는 고산사가 신라말엽 도선국사가 창건하였으며, 대광보전은 고려 이전의 귀중한 건축물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 홍성문화원 자료 에서 고산사의 이력을 보면 매우 자세하게 이력을 알 수 있어서 옮겨 보았습니다.
고산사와 관련된 기록으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권20 결성현 불우조(佛宇條)에 “高山寺在靑龍山”(고산사는 청룡산에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고, 같은 책 산천조(山川條)에 “靑龍山一名高山 在縣西北五里”(청룡산은 일명 고산이라 하며 결성현의 서북쪽으로 5리 지점에 있다)라고 하고 있어, 고산사의 사명(寺名)이 청룡산의 다른 명칭인 고산(高山)에서 연유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1974년 문화재 연구소에서 학술 조사를 실시하였을 때 발견된 암막새 기와에서 시주들의 성명과 함께 “天啓六年月日高山寺(천계육연월일고산사)”라고 새겨진 명문이 있었는데, 천계 6년은 조선조 인조 4년(1626)에 해당되는바, 이 해에 고산사 대웅전이 대대적으로 중수(重修)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중수 현판의 내용에 의하면 조선조 성종 16년(1485)에 네 번째 중수(重修)가 이루어졌고, 인조 14년(1636)에도 중수가 있었음이 기록되었다. 그 뒤에도 현종 13년(1672), 1927년, 1961년, 1974년, 1984년, 1990년으로 이어지면서 보수가 있어왔다.
한편 이때 대웅전(大雄殿)현판 뒷면에 “終南山麓有廢寺在基名當仙寶(종남산녹유폐사재기명당선보)(이하 생략)”이라고 새겨진 ‘선학사영건기(仙鶴寺營建記)’가 발견된 바 있는데, 이에 따라 고산사 대웅전(大雄殿)의 현판은 선학사에서 사용하던 것을 옮겨다 활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 보물로 지정된 대광보전과 내부에는 충남유형문화재인 아미타불좌상, 앞에는 문화재자료인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대광보전은 목조건물의 특성상 몇십 년에 한 번씩은 보수공사를 하게 되는데, 아마도 2000년 이전에 한번 보수공사를 한 듯합니다
▼ 대광보전의 편액을 자세히 보면, 그냥 목판에 붓으로 쓴 글씨가 아니라 글씨를 양각하고 먹물을 입힌 편액입니다.
자료에서 보면, 현재 고산사의 달린 편액은 아미타불좌상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대웅전이라고 달아야 한다고 하는데, 비로자나불을 모신 본전에만 대광보전 편액을 달 수 있다고 합니다.
한편 이 대광보전(大光寶殿) 현판 뒷면에 “終南山麓有廢寺在基名當仙寶(종남산녹유폐사재기명당선보)(이하 생략)”이라고 새겨진 ‘선학사영건기(仙鶴寺營建記)’가 발견된 바 있는데, 이에 따라 고산사 대광보전의 현판은 선학사에서 사용하던 것을 옮겨다 활용한 것으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 홍성문화원 자료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아름답게 지붕을 받치고 있는 부연과 처마가 아름답습니다.
▼ 창호는 일반적인 창호를 달았습니다.
▼ 대광보전에는 아미타불좌상을 모셨는데, 진흙으로 만든 소조아미타불좌상입니다.
1967년에 소조아미타불을 받치고 있는 대좌에서 후령통, 증도가, 천인동발원문, 관세불보살예의문, 금강경서책, 주옥류등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 [자료사진:문화재청] 닫집으로 위엄을 더 하였습니다.
▼ 대광보전은 작지만 아담하고 멋진 건물입니다. 역시 보물로 지정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 [자료사진:문화배청] 공포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 대광보전 우측의 건물은 최근에 지어진 건물로 보이는데, 원래의 건물을 헐고 새로 지은 것입니다
▼ [자료사진] 1980년대의 사진으로 추정이 되며, 축대를 새로 쌓아서 전각 앞의 마당을 넓혔으며, 요사채가 지금과 다른 것을 보니 헐고 새로 지은 것입니다.
▼ 산사에 자리 잡은 고양이는 한가롭거나, 경계하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은 귀중한 것이므로 차별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 대광보전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삼층석탑(문화재자료)은 신라의 영향을 받은 고려초기의 석탑입니다
▼ 2단의 기단석위에 면석을 얹고 갑석을 올렸으며, 탑신석은 층수에 따라서 적절한 비율로 크기를 줄였습니다만, 3층의 지붕돌이 심하게 파손된 것이 좀 아쉽습니다.
▼ 언듯 보면, 오랫동안 흙속에 묻혀 있다가 최근에 나타난 석불처럼 보입니다
▼ 안내문에서 보면 산 아래의 마을의 폐사지에서 옮겨왔다고 하는데,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는지, 불두는 분리되어 시멘트로 접합한 자국이 보입니다.
▼ 아미타불입상은 2m가 넘는 대형석불이며, 옷주름을 깊게 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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