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은 하남시 교산동에 있는 선법사에 있으며, 선법사는 남한산성에서 뻗어 내린 줄기의 능선에 있는 객산의 아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마애불상이 있는 곳은 지금은 하남시 교산동으로 행정구역 명칭이 바뀌었으나 원래는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교리에 해당하는 지역이었습니다.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은 보물로서 국가지정문화재입니다.(자료는 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부처님의 세계로 들아가는 길에는 일주문 등의 건물들이 없이 곧바로 가람(伽藍)을 만나게 됩니다. 선법사는 의외로 마을과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  비가 내린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오는데 폭포 옆에 작은 삼각형의 돌에 여래좌상이 보입니다. 폭포 옆에는 온조왕이 마셨다는 어용샘이 있습니다만, 마실 수는 없는 샘으로 보입니다.

 

​▼ 바위가 약간 기울었는데, 원래 부터 기울어져 있었는지, 아니면 지형의 붕괴로 한쪽으로 기울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마애여래좌상은 아주 적은 면적에 세밀하게 불상을 새겨 넣었습니다. 폭포는 객산 폭포라고 하는 듯합니다

 

▼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는 1.3m 높이에 폭은 1.1~1.6m에 지나지 않는 작은 크기인데, 바위면에 새겨진 마애불이 너무 작아서 잠시 헷갈렸습니다. 고려시대의 마애불은 보통 4~5미터 정도의 아주 큰 마애불이기 때문에 전체 높이가 1m도 안 되는  93㎝의 너무 작은 교산동 마애여래좌상을 보고 놀라는것은 당연했습니다.

 

삼각형의 바위면을 움푹 파서 감심실의 형태를 만든 다음에, 면을 고르게 연마하고 약사여래상을 새겼습니다. 크기는 1m도 안되는 작은 크기이지만 작품성만큼은 고려시대 어느 마애불 보다도 훨씬 뛰어난 작품입니다. 그러나 마애약사여래좌상을 더  소중하게 보는 것은 바로 왼쪽에 새겨진 명문 때문입니다.

 

▼ 얼굴은 대체로 부드럽게 보이고,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친 우견편단이며, 전체적으로 옷 주름의 표현도 간결하고 가지런하게 하였는데, 어깨에서 내려오는 옷은 한번 꼬인 것처럼 보입니다. 광배는 두광(頭光) 신광(身光) 각각 삼중원으로 이루어졌으며, 삼중원 주위에는 화염문(火焰文)이 둘려져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작품성이 매우 뛰어난 마애약사여래좌상입니다.

 

▼ 불상 왼쪽에 (太平二年丁丑七月二十九日古石佛在如賜乙重修為今上皇帝萬歲願) '태평이년정축칠월이십구일고석불재여사을중수위금상황제만세원'이라는 기록인데, 이는 '태평 2년 정축 7월 29일 석불을 고쳐지어 황제의 만세를 기원한다' 라는 뜻으로서, 이 불상을 만든 시기가 고려 경종 2년(977) 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석불을 고쳤다고 하였으므로 불상의 최초 조성시기는 977년보다 빠른 920년 정도로 볼 수도 있는데, 근거는 경종이 고 려 태조 왕건의 아들이었으므로 고려초에 마애여래좌상을 새겼다면 920년대로 본다는 생각입니다.

 

▼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계단식으로 새기고 있으며, 주위에는 불꽃무늬가 둘러져 있다.

 

▼ 질병에서 모든 중생을 구제해 준다는 약사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왼손에는 약사발을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시무외인으로 손바닥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 대좌(臺座)는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모양의 하대석 위에 4개의 짧은 기둥으로 이루어진 중대석이 있으며, 그 위에 활짝 핀 연꽃이 불신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 선법사의 극락보전(수리중)옆에 부도(승탑)를 앉혀 놓았는데, 탑신석에는 범산당병선대종사((梵山堂炳善大宗師)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유명하신 스님들의 승탑을 많이 닮았습니다

범산당병선대종사((梵山堂炳善大宗師)는 1971년 법륜사에서 송정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계하였으며, 2003년 경기동부 종무원장 및 2007년 제12대 중앙종회의원 등을 역임하신 분이셨으며, 2020.10월 12일 법납 52세(세납 84세)에 원적에 드셨습니다. 보통은 부도(승탑)는 사찰과 떨어진 숲 속에 있는데, 대웅전 옆에 세워져 있어서 좀 이상하게 보이기는합니다

- 끝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