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강원도청 서쪽 지역에 있는 조양루(朝陽樓)와 위봉문(威鳳門)은 조선인조 24년(1646년) 춘천부사 엄황이 관아의 부속건물로서 문소각(聞韶閣)을 지을 때 함께 지었습니다.
1890년에는 고종의 지시를 받은 춘천부사 민두호(閔斗鎬;민영휘의 아버지)가 문소각(聞韶閣)을 48칸이 넘는 규모로 증축하고 조양루(외삼문)와 위봉문(내삼문)도 함께 정비해 춘천이궁(春川離宮)을 완성하였습니다.
현재 강원도청이 자리잡은 춘천관아의 최초설립은 조선 광해군 8년(1616년) 춘천부사 황근중이 세운 것으로 여지도서(1757-1765)에서 춘천관아의 크기를 보면, 아사 41칸, 객사 10칸, 향청 8칸, 연무정 6칸, 훈련청 7칸, 장관청 8칸, 토포청 6칸, 아전청 14칸 등으로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춘천이궁(春川離宮)은 1890년에 고종의 이궁으로 완성이 되었지만, 고종은 한번도 사용해 보지 못하고 국운이 기울어 일본군의 춘천수비대 주둔지와 강원도청으로 사용되었으며, 1940년에 발생한 화재로 모두 타버리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두 개의 건물들이 조양루와 위봉문입니다.
조양루와 위봉문의 이건 이력을 보면, 조양루는 2차례, 위봉문은 5차례 이건되었습니다
▼ 봉의산 아래에 있는 강원도청의 역사는 춘천에 있던 춘천이궁(춘천유수부 관아)을 1895년에 춘천부(府) 관찰부청으로 사용한 것이 강원도청의 시초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강원도청"이라는 공식명칭을 사용한 시기는 1896년에는 영서지방의 춘천부와 영동지방의 강릉부를 합하여 '강원도'로 환원되자 춘천의 관찰부청이 강원도관찰부청의 업무를 대신하면서 "강원도청"으로 이름이 바뀌어졌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강원도청은 춘천이궁의 건물을 증, 개축하여 사용하다가 1940년 2월 22일에 화재로 전소해 새로 지었으며, 지금의 건물은 6.25 전쟁으로 파괴되어 1957년에 근대식으로 건립한 것입니다.
강원도청을 보면 마치 1900년대의 근대식 건축물처럼 그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데 관공서에서 이러한 형태의 건축물은 이제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 춘천관찰부도에서 춘천관아의 문소각, 위봉문, 조양루등의 위치를 보겠습니다. 문소각(춘천관아)이 춘천관아의 일부분처럼 보이는데, 이는 춘천이궁을 지을 때 춘천관아의 건물등을 그대로 이용하여 보수, 증축하여 지었기 때문입니다.
▼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1938년 이전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며, 조양루가 강원도청의 정문으로 사용 중인 모습입니다.
▼ 1940년대의 강원도청이며, 위봉문이 보입니다. 조양루는 이미 우두산으로 옮긴 상태입니다
▼ 1971년의 강원도청이며, 지금과 비교해도 별로 다른 점이 없어 보입니다.
▼ 강원도청의 최근모습이며 2000년 전후로 보입니다.
▼ 강원도청 정문 앞에 있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기념 조형물입니다.
▼ 1919년 봉의산에서 내려다본 춘천이궁의 모습이라는 사진인데, 조양루와 위봉문은 확실한데, 문소각의 모습이 이상합니다.
▼ 1924년 문소각의 모습이며, 일본복장을 한 어린아이가 모델을 하였습니다. 이 문소각은 일제강점기 때 강원도청으로 사용되었으며, 1940년 2월 22일 화재로 불에 타버려서 다시 지었다고 하는데, , 6.25 때 또다시 불에 타버려서 새로 지은 건물이 지금의 강원도청입니다
▼춘천관아와 춘천이궁을 일본군 춘천수비대와 강원도청으로 사용하던 시기의 모습입니다. 나무 왼쪽으로 조양루가 보입니다.
▼ 유튜브에서 춘천이궁을 재현한 그림입니다.
▼ 강원도청 서쪽의 옆길을 따라서 가다 보면 보이는 조양루와 위봉문입니다
▼ 조양루는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일제가 새 청사와 관공서를 지으려던 중 주변 부지가 협소하여 조양루를 우두산 자락으로 옮겼다가, 이후 2013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어 복원되었습니다.
아마도 도로 때문에 원래의 위치에서 뒤로 많이 물러서서 복원한 듯이 버ㅗ입니다.
▼ 조양루의 편액 글씨는 안내문에서 보면, 명필(자하선생)의 글자에서 집자해서 만든 편액이라고 합니다.
글자를 붓글씨로 쓴 것이 아니라 나무판에서 글자만 돋을새김 하였습니다
▼ 일제강점기 때(1905~1910) 춘천이궁을 일본군 춘천수비대가 점령할 때의 조양루의 사진을 보겠습니다.
▼ 1910년의 조양루와 위봉문이며, 담장은 거의 철거를 하였고 주변의 지형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 조양루가 1938년 우두산으로 이전되기 전의 강원도청
▼ 춘천이궁에서 우두산으로 이전된 조양루의 모습이며, 2013년에 강원도청 옆, 지금의 자리에 이전하였습니다.
▼ 조양루를 강원도청의 옆으로 이전한 자리에 단층의 우두정을 세웠는데, 원래 문헌에 전해져 오는 우두정을 복원하는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 조양루와 위봉문의 거리가 너무 없는데, 조양루를 복원할 때 도로 때문에 원래의 위치에서 뒤로 물러서 복원한 듯 보입니다.
▼ 이 위봉문은 조선 인조 24년(1646년)에 춘천부사 엄황(嚴惶)이 지었던 문소각(聞韶閣)의 내부 담장 출입문인 내삼문이며, 그 후 고종 27년(1890년)에 왕명으로 춘천유수(留守) 민두호(閔斗鎬)가 문소각을 확장하여 임금의 피난처로 이궁(離宮)으로 고쳐지었으나, 임금이 사용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 위봉문의 편액은 조선시대 문관 조윤형(曺允亨)이 쓴 것이라고 합니다.
▼ 위봉문 편액의 글씨를 쓴 조윤형(曺允亨;1725~1799), 호는 송하옹(松下翁), 조선 영조~정조때의 문신이며 글씨에 능하였다고 합니다.
▼ 5.16 군사혁명정부의 송요찬내각수석이 춘천의 강원도청을 시찰하고 위봉문을 나서는 모습이며 1961.5.16 이후 8월경으로 추정합니다.
▼ 언제 사진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강원도청의 뒤에 이전하였을 때의 사진이라고 합니다. 위봉문은 모두 5차례 이전을 하였습니다.
▼ 최근 신문을 보면, 강원도청이 멀지 않은 곳으로 이전할 계획이라는데, 이전 후에 춘천관아와 춘천이궁이 수원화성처럼 복원되기를 희망합니다.
- 여기까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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