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대전사는 그 악명 높기로 유명한 엄청 비싼 문화재 관람료(4,500원)로 큰 이름을 빛내고 있습니다. 주왕산에 가려고 들린 날도 검표하는 사람과 관광객이 심한 언쟁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절집에 다니면서 당연히 문화재 관람료를 내고 봅니다만, 대전사처럼 비싼 절집은 없었습니다.
주왕산이라는 걸출한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용해서 길을 막고 , 문화재관람료라는 탈을 쓰고 영업을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절집의 터는 기가 막히게 잘 잡은 것 같습니다
▼ 일단 대전사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면,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고려 태조 2년(919년)에 주왕의 아들이 창건에 힘을 보탰다는 설이 있는데, 중국의 주왕이 주왕산에 피신하였다거나, 그이 아들이 대전사를 창건하였다는 설은 믿기 어려울 설(說) 일뿐입니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은 하지만, 기록에 의하면 조선 현종 13년(1672년)에 임진왜란 때 불탔던 것을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가장 오래된 기록입니다.
[자료사진:국립공원관리공단]
▼ 삼층석탑은 얼핏 보아도 기단부만 본래의 부재이고, 나머지는 새로 끼어넣은 것입니다. 기단부를 보면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입니다.
▼ 보통의 절집에서는 석탑 앞에 배례석이 있는 것을 보기 어려운데, 대전사 삼층석탑에 배례석을 배치하였는데, 최근에 설치한 것처럼 보입니다.
▼ 기단부의 면석에는 팔부신중이 양각되어 있습니다.
▼ 대전사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신라 문무왕(文武王) 12년(672)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보광전은 1976년 중수 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여 그 건축 년대(1672년, 강희 11년 임자 5월 초 119일, 현종 13년)가 밝혀져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조선 현종 13년(1672)에 중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스님들의 공부방인지, 요사채인듯한 탐진당(探眞堂) 현판을 달고 있습니다
▼ 석종형 부도는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까지 유행하던 스님들의 유골을 담아 두던 승탑입니다. 어느 스님의 부도인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 주왕암으로 올라가는 길에도 단풍이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 [자료사진:경북관광] 주왕암을 하늘에서 보는 모습입니다. 주왕암은 대한불교 조계종에 속하며, 대전사(大典寺)의 부속암자이다. 919년(고려 태조 2)에 눌옹(訥翁)이 대전사와 함께 창건한 사찰로서, 이곳에 은거하였던 동진(東晉)의 주왕(周王)을 기리기 위하여 주왕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주방사(周房寺), 김창흡(金昌翕)의 영남일기(嶺南日記)에는 주왕사(周王寺), 1937년 『청송군지(靑松郡誌)』에 주왕암이라 하였다._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인용
▼ 주왕암으로 들어가는 문은 가학루(駕鶴樓)이며, 2층 누각으로 되어 있습니다.
▼ [자료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아주 오래전(1980년대?)의 주왕암인데, 참선하기 딱 좋은 산속처럼 보입니다.
▼ 나한전에는 경북문화재자료인 후불탱화가 있습니다. 스님의 염불소리가 한참 지나도 안 끝나서 못 보고 왔습니다.
▼ 주왕굴도 보러 갑니다. 그런데 중국의 주왕이 숨었다는 굴이라는 설은 뻥입니다.
▼ 부적 하나에 5,000원, 엄청 많이 달려 있는데, 자율적으로 양심 판매합니다.
▼ 2009년에 들렸을 때는 굴이 좁았는데, 이번에 보는 주왕굴은 엄청 넓어졌습니다. 자료에서 보면 원래의 굴은 길이 2m, 높이 5m, 너비 2.8m인데, 지금은 깊이가 5m 정도는 되어 보입니다
▼ 2009년에는 불당이 없이 촛불만 있었는데, 2022년에는 내부가 훨씬 넓어져 있고 불당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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