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길상사는 진천 도당산에 있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한 흥무대왕 김유신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이다.

 

신라(新羅)때부터 장군의 태(胎)가 묻힌 태령산(胎靈山;진천 문복리) 아래 사당을 건립하고 국행제(國行祭)를 지내오다가 조선태종(朝鮮太宗)때부터 관행제(官行祭)로 치제(致祭) 하였다.

 

※ 자료를 보면 김유신장군의 사당은 현재의 길상사 자리가 아닌 태령산 아래에 있었습니다.

※ 치제(致祭)국가에서 왕족(王族)이나 대신(大臣), 국가를 위하여 죽은 사람에게 제문(祭文)과 제물(祭物)을 갖추어 지내주는 제사(祭祀).

 

그 뒤 임진(壬辰) 병자(丙子) 양란 시 병화를 입어 폐허가 된 것을 철종(哲宗) 2년(1851) 백곡(柏谷) 가죽리(嘉竹里) 죽계사(竹溪祠)자리에 계양묘(桂陽廟)를 건립하였으며 1926년 도당산(都當山)에 진천 길상사(吉祥詞)를 재건하고 1975년에 정화사업을 실시하여 자금의 규모를 갖추었다.

_ 진천군청 홈페이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길상사는 말을 언뜻 들으면 불교 조계종 길상사(서울)가 생각이 나는데, 진천의 길상사는 김유신장군의 사당입니다. 만약 절이었다면 일주문이 있었을 것입니다만, 사당 입구라는 홍살문(紅箭門)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너무 늦은 가을에 와서 그런지 낙엽은 전부 떨어지고 없습니다.

 

▼ 길상사 홍살문 옆에 세워진 안내도를 보면 사당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내삼문이 도당산성의 성곽과 이어지고 있습니다. 길상사는 충청북도 기념물 1호입니다.

 

▼ 김유신 장군의 묘는 옛 신라 영토였던 경주에 있지만 사당은 장군의 고향이었던 진천에 있습니다.

 

▼ 길상사(吉祥詞)의 재실 겸 관리사무소입니다. 문화해설도 겸하는 분이 계신 듯합니다.

 

▼ 재실 앞에서 올려다보는 사당의 모습입니다. 지금의 사당은 후손 김만희의 주선으로 1926년 현재의 자리에 새로 건립하였고, 1959년 개축하였으며, 1975년 사적지 정화작업으로 전면 신축하였습니다.

 

▼ 왼쪽은 길상사(吉祥詞) 중건 사적비, 오른쪽은 김유신 장군의 후손 김만희 공적비입니다.

 

▼ 사당의 외삼문이며 길상사 현판이 달려 있습니다.

 

▼ 외삼문에서 바라보는 진천읍의 모습입니다.

 

▼ 외삼문에 들어와서 내려다보는 모습입니다.

 

▼ 길상사의 내삼문인 진호문입니다

 

▼ 본전은 "흥무전(興武殿)으로 콘크리트조 기와집이며, 정면 5간, 측면 2간, 주심포(柱心包) 8작 집이며 그 안에 김유신 장군의 영정(影幀)을 모시고 있습니다.

 

▼ 김유신(金庾信, 595-673)은 만노군 태수(萬弩郡太守) 김서현(金舒玄)의 아들로 진천(鎭川)에서 출생, 신라 진평왕(眞平王) 31년에 화랑이 되고 낭비성(娘臂城) 싸움에 공을 세워 압량주(押梁州) 군주가 되었다.

 

선덕여왕(善德女王) 때 상장군(上將軍)이 되었고 진덕여왕(眞德女王) 때는 백제(百濟) 12성을 함락하여 상주 행군대총관(上州行軍大摠管)에 오르고 무열왕(武烈王) 7년 상대등(上大等)으로 당군(唐軍)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의 대총관(大摠管)이 되어 고구려를 정벌하고 태대각간(太大角干)이 되었으며 한수(漢水) 이북의 고구려 땅을 수복 삼국통일의 위업을 완수하였고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되었다.

_ 진천군 홈페이지에서 인용하였으며, 사진은 진천군 공식 블로그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흥무전 앞뜰에는 1957년 세운 "흥무대왕 신성비(興武大王神聖碑 ; 이선근(李宣根)이 글을 짓고 김만희(金萬熙씀)가 있습니다

 

▼  흥무대왕신성비와 마주 보고 있는 1976년에 세운 "김유신장군사적비(金庾信將軍事蹟碑)<이 은상(李殷相)글 김 충현(金忠顯)

 

▼ 흥무전 앞뜰의 모습입니다.

 

▼ 길상사의 외삼문과 내삼문의 모습을 옆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 길상사 옆에는 진천 도당산성이 있어서 잠사 흔적을 보러 갑니다. 도당산성은 석성입니다

 

▼ 한눈에 딱봐도 삼국시대의 성곽입니다. 할석을 벽돌처럼 정연하게 쌓은 성돌이 보입니다.

 

▼ 도당산성은 진천군내 서편의 낮은 구릉지에 축조된 산성으로서 넓은 평야 지대를 이루는 진천 지역의 외곽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삼국시대에는 만노군의 치소(治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축조 시기와 연혁을 알려주는 문헌 기록은 없고,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조선시대의 각종 지리지에 도당산성[都堂山城 또는 都唐山城, 陶唐山城으로 표기됨]이 진천현의 서쪽 3리에 있는데 돌로 축조하였고, 그 둘레는 1,836척이며 성안에 우물이 2개소가 있으나 성은 이미 폐허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_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도당산성의 성곽은 길상사의 내삼문과 담장으로 바뀌었습니다.

 

▼ 흥무전의 모습을 담장밖에서 바라보았습니다. 흥무전이 있는 자리는 진천 도당산성의 동쪽방향으로 내삼문은 도당산성의 성곽이 있었던 자리이며, 산성으로 드나는 성문(동문)이 있어을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내삼문(진호문)이 있는데, 길상사를 짓는다고 도당산성이 크게 훼손된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 흥무전밖에는 샘이 있는데, 샘의 양은 적고, 샘물이 흐르지 않아서 좀 지저분 해 보입니다. 김유신장군 사당에 제사를 지낼때 쓰는 물인듯 합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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