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갑사는 420년 아도화상이 창건했으며, 679년 의상대사가 크게 중창하면서 신라 화엄 10찰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887년(진흥왕 원년) 무염대사가 중창한 것이 고려시대를 지나 조선초기까지 이어졌으나 정유재란으로 많은 전각들이 소실되었습니다. 1604년(선조 37년) 인호, 경순, 성안, 보윤스님 등이 대웅전과 진해당을 중건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조선후기 들어 새롭게 조성된 불상과 탱화 경판 등이 남아있습니다. 또한 갑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장 영규대사를 배출한 호국불교 도량으로도 유명한 유서 깊은 고찰입니다.

 

계룡산은 일찍이 무학대사가 산의 형국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금닭이 알을 품는 형국)이요,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 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라 일컬어 계(鷄)와 용(龍)을 따서 계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 계룡갑사 블로그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계룡갑사 입구에는 아주 커다란 괴목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미 고목인 상태지만 신령이 깃들어 있는듯한 모습입니다

 

▼ 갑사 입구의 일주문입니다. 

갑사는 岬寺, 岬士寺, 鷄龍甲寺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지다가 으뜸 또는 첫째란 뜻을 가지는 甲寺라는 지금의 명칭은 18세기 말부터 산 이름을 붙여 鷄龍甲寺로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경내에는 15동의 불전과 승당, 부속 전각들이 있으며 주변 산골짝 여러 곳에 산내 암자를 두고 있습니다. _ 계룡갑사 블로그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갑사의 전각 배치도 입니다. 가 볼 곳은 많았지만, 대부분 발길을 돌리라는 안내문이 있어서 못본곳이 많았습니다

 

▼ 공주에는 두곳의 유명한 절이 있는데, 마곡사는 봄꽃이 아름답고, 갑사는 가을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지금의 갑사는 아름다운 가을색입니다.

 

▼ 계룡사 옆 숲길 대적전으로 가는길에는 박희선 시비가 있는데, 박희선 시인은 (朴喜宣.1923∼1998.8.29) 충남 강경읍 출생으로 동경 고마자와대학(東京駒澤大學) 졸업전에 일본 학도병으로 끌려가서 중국에서 탈출하여 독립운동을 하던중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습니다.

 

▼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가을의 진한 색갈의 옷을 입은 계룡갑사의 숲길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 영규대사토굴지 입구 라고 새겨진 표석옆에는 의승장 영규대사를 추모하는 글귀가 새겨진 표석이 있는데, 그냥 보기는 좀 그렇습니다

 

▼ 대적전으로 가는길입니다. 가을의 숲길은 역시 햇빛이 좋아야 합니다. 조선중기때는 이길이 갑사의 진입로였습니다

 

▼ 엄청 높은 철당간입니다. 철당간은 일정한 크기의 철제통을 쌓아 올린 당간입니다만, 24개중에서 4개는 벼락에 없어지고, 현재 20개만 남은 상태라고 합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철당간이라니 비바람을 견딘 그 오랜세월이 경이롭기만 합니다.

 

보통은 당간이나 당간지주는 사찰의 중심부근에 위치하는것이 일반적인데 이렇게 외진곳에 당간이 있는것은 갑사가 원래는 이 부근에 있었는데, 오래전에 갑사의 중심부가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당간은 자연스럽게 외진곳에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 일제강점기(1930년대초)의 철당간의 사진입니다.

 

 

▼ 갑사에서 단풍이 제일 좋은 곳은 대적전 앞입니다.

 

 

▼ 아름다운 대적전과 앞의 승탑입니다. 승탑은 부도라고도 하고, 보통은 절 주변의 한적한 곳에 집단으로 만들어저 있는데, 특이하게도 대적전 앞에 있습니다.

 

 

- 일제 강점기때(1930년대초)의 승탑과 스님(?)의 모습입니다.(출처는 e-뮤지엄). 사진으로 보면 승탑은 현재 대적전 앞에 있었던것이 아니고 중사자암에 있었다고 합니다

 

▼ 갑사를 청건할 당시에는 여기가 대웅전이 있던 자리였다고 합니다. 대적전은 대적광전이라고도 하는데, 건물이 아담하면서도 아주 화려합니다.

 

 

▼ 일제강점기(1930년대초)때의 갑사의 모습이라는데, 분간이 안됩니다. 보이는 건물은 지금의 대적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228호 대적전 목조삼존불입니다. 내부에서 사진을 담기가 어려워서 갑사 홈페이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대적전앞이 곧 극락입니다...

 

▼ 사천왕문 주위의 단풍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볼거리 입니다

 

▼ 강당은 승려들이 법문을 강론하던 건물로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뒤로 다시 지은 것이며, 원래는 갑사의 정문이었다고 합니다.  ‘계룡갑사(鷄龍甲寺)’라는 현판은 절도사 홍재의가 1887년(조선 고종24년)썼으며, 전체적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은 조선시대 후기의 웅장한 건축물입니다. 

※ 조선시대때는 절도사(節度使)는 무관(武官)으ㄹ로서, 병마절도사, 수군절도사로 나뉘는데, 보통은 관찰사가 경임했다고 합니다.

 

- 자료사진을 찾다보니 1970년대로 추정되는 갑사의 사진을 봤는데, 강당의 위치가 현재의 위치보다 대웅전 앞으로 있었습니다. 진해당과 적묵당 사이에 일직선상에 강당이 있었는데, 무슨 이유로 강당을 뒤로 물렸는지, 언제 이건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진에서 보면 강당앞의 솟을 대문과 행랑은 지금 없어졌고, 대문 자리에 강당이 옮겨져 있습니다-출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입니다

 

- 강당이 진해당과 적묵당 사이에 있고 대웅전이 바로 뒷쪽에 붙어 있는것 처럼 보이는데, 아마도 대웅전 앞마당이 좁아서 강당을 뒤로 물렷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갑사동종 보호각입니다. 문은 잠겨 있었습니다. 원래는 강당옆에 있었는데, 화재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 내부를 봤는데, 그닺 관리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갑사동종은 조선 초기의 종으로 국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며, 갑사에 봉안하기 위하여 선조 17년(1584)에 만들어졌다. 일제시대 때 헌납이라는 명목으로 공출해 갔다가, 광복후 반출대기중이던 것을 찾아 갑사로 다시 옮겨왔습니다. 표면을 자세히 보면 명문도 있고 화려한 모양새 입니다.

 

▼ 갑사동종 옆에 있는 이 탑은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과 기단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에는 탑의 건립내용이 음각되어 있고 2층의 탑신에는 『우탑(牛塔)』이란 이름과 3층 탑신에는 『공(功)』이란 명문이 각각 음각되어 있습니다.

 

이 탑은 탑신에 새겨진 명문으로 보아 갑사 중창시에 큰 공을 세운 소가 늙어 죽으니 그 은공을 기려 세운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 범종루

 

▼ 범종루를 지나서 표충원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 영규대사 기적비라고 합니다. 비문이 사방에 적혀 있습니다.

 

▼ 표충원은 승병장(僧兵將) 휴정(休靜) 서산대사(西山大師),  유정(惟政) 사명대사(四溟大師), 기허당(騎虛堂) 영규대사(靈圭大師)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으며, 좌/우에는 다른 스님들의 영정도 보입니다.

▼ 팔상전의 문입니다만, 출입금지 입니다. 갑사에는 여러곳이 출입금지 상태 입니다.

 

- 팔상전에는 출입금지라서 자료사진으로 대신 합니다(출처 문화재청)

 

- 정면모습

 

- 좌측모습

 

- 우측모습

 

- 측면모습

 

▼ 경내에서 보는 강당의 모습입니다.

 

▼ 진해당은 공사중이라서 자료사진으로 대신 합니다.

 

▼ 진해당 안에는 석조보살입상(甲寺石造菩薩立像)이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갑사 뒷산 중사자암에 약사여래입상, 갑사 부도와 같이 있던 것을 갑사에 옮겨 보관하고 있으며. 화강암 석재로 만들었으며 목부분이 깨졌고 보주형(寶珠形) 두광(頭光)부분을 마애불처럼 붙여서 조각하였다.

 

얼굴은 마멸이 심해 분명하지 않으나 코가 오똑하고 눈은 감은 듯 하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데, 한 자락이 오른손 손목을 거쳐 등쪽으로 넘겨졌다. 하체에 걸쳐진 옷은 선이 부드럽고 얇아서 신체의 굴곡을 충실히 표현하고 있다.

 

가슴부분의 오른손은 뭔가 들고 있는 듯 하나 분명하지 않고, 왼손은 팔을 내려 무릎 부분에서 목이 긴 병을 들고 있다.  전체적으로 잘록한 허리, 어깨 등 조각수법이 세련된 감을 주고 있으며 백제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_감사홈페이지에서 인용

 

▼ 대웅전의 모습입니다. 대웅전 좌측의 진해당은 보수공사중이어서 사진으로 담지는 않았습니다.

 

- 대웅전 내부의 자료사진입니다(e-뮤지엄에서 인용하였습니다)

 

1) 갑사소조삼세불(甲寺塑造三世佛)은 대웅전에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중앙에 봉안하고 우측에 아미타불, 좌측에 약사불을 봉안하여 삼세불의 봉안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협시불(脇侍佛)로는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의 4대보살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삼세불 뒤로 보이는 탱화는 영산회상도, 약사회상도 입니다

 

2) 갑사의 국보 298호 삼신불괘불탱의 자료사진입니다(갑사 홈페이지에서 인용)

 

- 대웅전 벽에는 삼장보살도가 있습니다(출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계룡산을 배경으로 대웅전 앞의 모습을 담아 보았습니다. 옛날 사진을 보면 적묵당과 진해당 사이에 강당이 일직선으로 있어서 대웅전앞 마당이 무척 좁았는데, 강당이 뒤로 물러 나면서 강당앞 마당이 넓어졌습니다.

 

- 하늘에서 보는 갑사의 모습입니다(출처는 공주시홈페이지 캡처)

 

▼ 칠성, 산신, 독성의 삼신을 모신 삼성각입니다.

 

▼ 삼성각 내부의 모습입니다. 중앙이 칠성신, 좌측이 독성신, 우측이 산신이 되겠습니다

 

▼ 관음전앞에는 아무런 현판이 없는 건물이 보이는데, 월인석보목판이 보관되어 있는곳 입니다

▼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입니다. 갑사의 관음전은 최근에 불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 대적선원은 스님들이 공부를 하는곳인듯 대웅전 뒷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 울타리를 벗어나서 잠깐 올라가면 계곡이 있는데, 물은 말았습니다

 

▼ 계곡옆에 보이는 석조약사여래입상입니다.

 

▼ 갑사 외곽으로 내려가면서 보는 거대한 비석은 갑사의 사적비입니다.

 

▼ 갑사 사적비 옆으로는 부도군이 보이는데, 아주 오래된것 부터 최근의 부도까지 많이 보입니다. 스님들이 입적하면 보통 다비식(茶毘式)으로 장례를 하는데, 다비식이 끝난후에 사리나, 남은 뼈조각을 돌탑 내부에 담아서 안치를 하는데, 그 돌탑을 부도, 또는 승탑이라고 합니다. 모든 스님들의 사리가 승탑에 안치되는것은 아닌듯 합니다.

 

▼ 갑사를 나서면서 길옆의 비틀린 나무를 보는데, 나무도 사는동안 많은 번뇌가 있었나 봅니다

 

▼ 사천왕문을 나서면서 일주문까지를 오리(십리의 반)숲길이라고 하는데, 참 좋은 숲길입니다

 

▼ 갑사를 나서면 조금후에 저수지를 보는데, 계룡저수지 입니다. 무척 넓은 저수지입니다. 뒷산은 게룡산입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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