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의 백강옆에 부산(浮山;뜬산)이라는 조그만 산이 있는데, 이곳 백강마을에는 효종때 영의정을 지낸 백강 이경여(李敬輿) 선생과 김집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기리는 부산서원이 있으며, 또한 부산(浮山)의 절벽 아래에는 각서석(刻書石)이 있어서 찾아 보았습니다.
부산서원은 인조,효종간에 학계와 정계에서 크게 활약한 김집과 이경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역유림들의 공론에 의해 창건된 서원이다.
이후 훼철된 서원의 복설을 위하여 1970년대 “부산서원 복설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삼문과 설단을 하였으며 1977년 충의사 건물을 완성하였다.
서원이 훼철되면서 주로 18세기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고문서들은 전주이씨문중에서 소장중으로 창건당시 有 司이상을 기록한 창건소제명록, 서원임원명단, 규약, 서제의 유생명단, 전곡관계를 정리한 문서, 노비대장 등이 있다.
- 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진변마을은 백강마을이라고도 하는데, 마을의 유래는 적어 놓은 안내문이 있어서 올려 보았습니다.
※ 김집선생 ; 조선 중기의 유학자, 호는 신독재(愼獨齋;1574∼1656), 18세에 진사에 합격하고 광해군 2년(1610)에 참봉이 되었으나 광해군의 문란한 정치로 은퇴하였다가 인조반정 후 다시 벼슬길에 올랐지만 곧 사직하였다.
효종이 즉위한 후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어 북벌을 계획하기도 하였고 판중추부사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죽은 후 고종 20년(1883)에 영의정으로 벼슬이 높여졌다.
그는 초야에 묻혀 아버지의 학문을 이어받고자 노력하였으며 이이의 학문을 계승하여 송시열에게 그 학문을 전해주어 기호학파 형성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의 묘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의 고운사 절터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봉분의 좌우에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서 있고, 묘역 입구에는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다.
이경여(1585~1657;선조18년~효종8년;73세)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세종대왕의 7대손(세종의 13번째 아들 밀성군의 손)이며, 자는 직부, 호는 백강, 본관은 전주, 목사 수록의 아들이다. 벼슬은 여러 관직을 거쳐 대사성, 형조판서, 우의정, 영중충부사, 영의정 등을 지냈으며 시문에 능하고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저서로 백강집을 남겼다. 시호는 문정이다. 선생의 묘는 포천에 있다.
▼ 부산서원은 말끔하게 정비 되었습니다. 밭이었던 곳에는 재실이 들어섰고, 원래의 서원의 모습은 없고, 사당으로만 보입니다.
※ 부산서원 입구에는 매화나무가 한그루 있는데, 부여동매라고 하며, 부여동매는 진변리 백강마을에 있는 부산서원 입구 왼쪽에 있다. 이 매화나무의 나이는 50년 정도로 생각되며, 돌기둥과 철책으로 보호되고 있다. 나무 앞에는 ‘부여동매(扶餘冬梅)’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다.
이 나무는 백강 이경여 선생이 중국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매화나무 3그루를 가져와 심었다고 전해지나 2그루는 죽고 나머지 한 그루마저 일제시대 말기 불에 타 죽어 현재 남아있는 나무는 죽은 나무 뿌리에서 싹이 나 자란 것이라고 한다.
부여 동매는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교류관계를 알려주는 나무로 향토문화연구의 자료로서 가치가 있어 문화재자료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부여동매라고는 하지만, 봄 4월에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만, 매화의 특성상 추은 이른 봄에 꽃이 피므로 동매(冬梅)도 맞는 말 입니다
▼ 부산서원이 정비되기전의 동매의 모습입니다. 지금은 매화나무만 남고 나무 뒤의 건물은 정비 되었습니다.- 부여문화재연구소
※매화나무는 가지가 초록색이며, 잎은 어긋나고 계란형으로 끝이 뾰족하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며, 연한 홍색이 도는 흰빛으로 향기가 강하다. 매화나무는 추위가 덜 가신 초봄에 꽃이 피기 시작하므로 봄소식을 알려주는 나무로 아낌을 받아왔다. 특히,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운다 하여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삼아 많이 재배하였고, 시나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하였다.
▼ 충의사 입구에는 홍살문으로 부터 길게 이러지는 길 언덕에 사당이 높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 홍살문이 있다는 것은 여기서 부터는 신령스러운 곳이니, 말에서 내려서 걸어서 조심조심 들어가라는 뜻이 있습니다
▼ 재실로 쓰이는 건물인듯 합니다
▼ 계단앞에서 올려다 보니, 문이 열려 있어서 올라가 봅니다.
▼ 삼문앞에서 보니 "부산서원"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부산서원은 숙종45년(1719)에 이 지역 유림들에 의해 세워졌으며, 숙종이 사액(賜額)하였습니다.
숙종은 조선 19대 왕으로서, 할아버지 17대 효종의 뜻을 잘 이어 받아서 또다시 청에 침략을 받지 않기 위해서 국방시설에 역량을 집중시킨 왕이었는데, 강화도를 빙 둘러서 48개의 돈대를 설치하였고, 전국에 산성을 쌓고, 보수하도록 하였던, 유비무한의 뜻을 실천하였던 성군이었습니다.
▼ 삼문을 들어서면 사당이 보이는데, 영의정 김집선생과, 이경여선생의 위패를 모신 충의사라는 건물 입니다.
1977년에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 있던 충의사(忠義祠) 건물을 본전(本殿) 건물로 이건하기로 결정하고, 그해 1977년 12월 도비와 군비 그리고 일부는 후손 측의 부담으로 본전의 건축 공사를 준공하였습니다. 서원의 배향인물에 대한 향사는 매년 9월 18일 거행하고 있다.
_서원연합회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사당앞에서 바라보는 삼문의 모습입니다.
▼ 삼문위에서 내려다 보는 백마강입니다. 하늘은 푸르고, 강물은 말없이 흘러 갑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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