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 홍산면에 조선시대때의 부여 홍산현 관아(扶餘 鴻山縣 官衙)의 건물이 복원되었다고 해서 구경하러 가 보았습니다.

 

홍산현(鴻山縣)은 조선시대때는 충청도 공주목에 속한 현이었습니다. 1895년(고종 32)에 군으로 승격하였다가, 1914년 일제강점기때에 부여군에 합병되어 홍산군에서 홍산면이 되었습니다.

 

조선시대의 관청은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잡은 후 관청의 위엄을 세우기 위하여 전국에 걸쳐 관청건물을 정비하였는데, 홍산관아는 그 일환으로 고종 8년(1871) 홍산군수가 세웠습니다. 

 

1914년 홍산군이 부여군에 통합되고 나서는 일본군 헌병대 사무소로 쓰이다가, 1945년 해방 후에는 홍산지서로 사용하다가 1970년대까지 사용되었습니다. 1984년에 부여군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하였습니다.


▼ 홍산관아 앞은 넓다란 주차장겸 공터입니다. 공터에서 바라보는 관아의 모습은 그런대로 관청의 위엄을 갖추고 있는 모습입니다.

 

▼ 관아의 담장밖에 있는 건물은 관청이라는 건물인데, 지금으로 보면, 총무과의 업무를 보는 곳 입니다

 

▼ 홍산면내의 비석들을 모아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주로 공적비등이 있습니다.

 

▼ 집홍루의 전면에 커다란 선전그림이 걸려 있어서 자료사진으로 대체 하였습니다.(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인용하였습니다)

 

관아의 정문인 집홍루 입니다. 당당하고 화려하게 복원이 되었는데, 원래는 1871년(고종 8)에 다시 세워졌지만, 1964년에 부소산성 안에 있는 영일대에 옮겨져서 "영일루"라고 새 이름을 얻었고, 지금 집홍루는 1994년에 다시 세운것 입니다. 문루의 현판은 안 보입니다.

 

▼ 전국에서 유일하게 형방을 복원하였습니다.

 

▼ ㄷ자 건물이며, 옛날 조선시대때의 형방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건물 이라고 합니다.

 

▼ 형방에서 바라보는 집홍루와 관아 내부 입니다.

 

▼ 집홍루의 뒷면입니다. 앞면은 걸개그림이 걸려 있어서 건물의 형태를 볼 수 없어서 뒷 모습으로 대신합니다

 

▼ 이 건물은 승령청이라고 하는데, 관청의 잡다한 심부름을 하던 하급관리들의 사무실입니다.

 

▼ 동헌으로 들어 가는 정문입니다

 

▼ 동헌으로 드나드는 정문으로서, 안내문에는 내삼문이라고 되어 있는데, 삼문(三門)형태를 하기는 했으나, 문은 하나인 가운데가 높은 솟을대문이며, 문에는 홍산아문(鴻山衙門)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습니다.

 

▼ 잘 꾸며진 솟을대문이 관아의 위엄을 한층 뽐내고 있습니다

 

▼ 아문앞에서 바라보는 집홍루입니다

 

▼ 아문안에서 바라보는 동헌입니다.

 

▼ 동헌의 당호는 제금당(製錦堂)이며, 비단을 짜듯히 정사를 살피라는 뜻이 있습니다

 

▼ 동헌(제금당)에서 바라보는 아문입니다

 

▼ 동헌밖에 있는 유한당(遊瀚堂)이라는 건물입니다.


▼ 다음은 관아건물과 10분 거리에 있는 홍산객사에 들려 보았습니다. 홍산객사는 비홍관(飛鴻館)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만, 현판은 없습니다.

 

▼ 객사의 내부모습입니다. 조선시대의 객사의 모습은 대부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중앙건물은 정당(正堂)이라고 하고, 정당옆에 딸린 건물을 익실(翼室)이라고 하는데 좌익실과 우익실의 크기가 다릅니다. 좌익실은 3칸이며, 우익실은 5칸입니다

 

▼ 객사 내부에는 여러가지 비석들이 모여 있는데, 좀 특이하게 생긴것이 홍산만덕교비입니다.

 

▼ 홍산만덕교의 모습입니다. 현재는 다리로서는 기능이 없어졌고, 문화재로만 보존되고 있는듯 합니다_충남홈페이지(관광)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객사 동쪽에는 아주 오래된듯한 은행나무가 한그루 있습니다.

 

▼ 정당(正堂)은 왕에게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한번씩 두번 예를 올리던 곳 입니다

 

▼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가 의자에 반듯하게 놓여져 있어야 하는데, 바닥에 굴러다니는것이 보기에 좀 그렇습니다. 옛날 이었다면, 그 고을 수령은 파면되었다고 합니다.

 

▼ 익실(翼室)은 정당과는 떨어져 있지만 지붕은 붙어 있는 구조입니다.

 

▼ 객실은 좌,우 각각 2실씩 총 4실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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