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는 인터넷에 설명자료가 많아서 별로도 그 내용을 옮겨서 적을 필요는 없으나, 마곡사(麻谷寺)라는 절의 이름의 유래는 알아봐야 겠습니다. 마곡사(麻谷寺)라는 이름의 유래는 세가지가 있는데...

 

첫번째 설은 640년(선덕여왕 9)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慈藏)이 선덕여왕에게서 하사받은 전(田) 200결로 절을 창건하기 위한 터를 물색하다가 통도사(通度寺)·월정사(月精寺)와 함께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자장이 절을 완공한 뒤 낙성식을 할 때 그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이 ‘삼대[麻]와 같이 무성했다’고 하여 ‘마(麻)’자를 넣어 마곡사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두번째 설은 신라의 승 무염(無染)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이 절을 지을 때 스승인 마곡보철(麻谷普徹)을 사모하는 뜻에서 마곡사라고 하였다는 설과,

 

세번째 설은 절을 세우기 전에 이곳에 마씨(麻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마곡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 삽입된 흑백자료사진은 e-뮤지엄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일주문에는 태화산마곡사라는 현판(懸板)이 금색으로 걸려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찰을 보면 일주문은 엄청 화려 합니다.

 

▼ 일주문은 기둥이 하나라는 뜻으로 통상적으로 일주문(一柱門)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규모가 큰 일주문인 경우 사진과 같이 보조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일주문이 아닌것은 아닙니다.

 

작은 기둥은 큰기둥 옆에서 보조로 지붕을 받치는 역활만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으로서 일주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을 상징하는 것이고,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말끔히 잊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 일주문을 지나면 매표소가 있습니다. 성인(3,000원), 청소년(1,500원), 어린이(1,000)입니다. 주차장은 상가앞에 있으며 무료 입니다.

 

▼ 매표소를 지나면 마곡사의 가람배치도를 볼 수 있는데, 태화천을 가운데 두고 북원과 남원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마곡사는 세계문화유산 산사 승지선원으로 등재된 7개의 사찰중 하나 입니다. 즉 마곡사 단독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것이 아니라 한국의 7개 사찰을 묶어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 산사 승지선원으로 등재된 사찰은 다음과 같습니다.(2018년 7월1일 등재)

1) 대흥사(전남해남)

2) 통도사(경남양산)

3) 봉정사(경북안동)

4) 마곡사(충남공주)

5) 선암사(전남순천)

6) 법주사(충남보은)

7) 부석사(경북영주)

 

▼ 마곡사의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해주는 안내문입니다. 어디를 가나 안내문은 꼭 읽어두는게 도움이 됩니다

 

▼ 매표소에서 마곡사 까지는 마곡천을 옆길을 따라서 약 500미터 정도 걸어서 들어 갑니다

 

▼ 가을이기는 한데 나뭇잎은 아직도 푸르기만 합니다. 공주에는 두곳의 유명한 절이 있는데, 마곡사는 봄에 좋고, 가을에는 갑사가 좋다고해서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하던데 역시 마곡사의 가을은 그저 그렇습니다.

 

▼ 마곡사의 극락교입니다. 남원(南院)과 북원(北院)을 이어주는 다리입니다만, 옛날식으로 홍예 돌다리로 했으면 참 좋았을것을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 주차장이 마곡사 앞에도 있기는 하지만, 차는 상가앞 공영주차장에 두고 태화천 옆길을 사부작 사부작 걸어서 오는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안내판 오른쪽으로 들어 갑니다.

 

▼ 마곡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다무정이라는 카페도 있습니다

 

▼ 담장 밖에서 보는 마곡사의 수산전, 영산전,매화당, 홍성루가 모여 있는 곳 입니다

 

▼ 정면의 해탈문과 왼쪽의 흥성루가 보입니다.

 

▼ 마곡사 흥성루(興聖樓)는 조선 말기나 일제강점기때 세워진것으로 추정되고, 용도는 영산전에서 대규모 법회 행사때 강당의 용도로 쓰였을것이라고 합니다. 내부는 텅 비어 있습니다.

 

▼ 해탈문 옆에 보면 마곡사와 영산전을 안내하는 내용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 사찰로 들어가는 문은 보통 3개로 이루어 지는데, 첫번째가 일주문, 두번째가 해탈문(=불이문), 세번째가 천왕문입니다. 해탈문은 사찰의 두번째로 통과하는 문으로서 불이문(不二門)이라고도 합니다. 속계를 벗어나 법계에 들어서는 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 일제강점기(1930년초)때 해탈문의 사진입니다(출처는 e뮤지엄)

해탈문이 지금과는 달리 통로를 막아버렸고, 뒷쪽의 건물은 천왕문으로 보입니다.

▼ 해탈문 내부 안쪽에는 금각역사상과 동자상이 있습니다. 

 

▼ 해탈문을 지나면 곧바로 천왕문이 있습니다.

 

▼ 천왕문 내부에는 사천왕상이 있습니다. 밤에 보면 저 칼이 엄청 무서울것 같습니다.

 

▼ 천왕문을 지나서 왼쪽의 명부전으로 들어갑니다. 왼쪽은 매화당으로 스님들이 동안거, 하안거등을 수행하는방 입니다

 

명부전(殿)은 지장보살()과 염라대왕을 비롯한 시왕을 모신 곳으로 시왕전(殿), 지장전(殿), 명왕전(殿)이라고도 합니다. 명부전은 죽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면서 그 동안의 업장을 참회하고 소멸하는 기도 처입니다.

 

명부전을 보면 4개의 기둥에 글이 써 있는데 이것을 주련(柱聯)이라고 하며, 사찰 궁중등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 명부전은 1939년 건립되었습니다.

 

영산전은 현재 남아있는 마곡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650년에 중수돼 현재 보물 제80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마곡사의 영산전은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마곡사에서 가장 영험이 큰 전각으로, 특히 어진 정승과 용맹스러운 장수를 만들어 낸다는 군왕대의 모든 기운이 모여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판은 세조의 어필이라고 합니다.

 

- 일제강점기(1930대년초)때의 영산전 사진입니다

 

▼ 정면에는 매화당, 왼쪽에는 영산전, 오른쪽에는 흥성루 입니다. 매화당은 스님들의 수행처 입니다. 매화당은 앞에서 보면 일자형 건물이지만 북쪽이 터진 ㄷ자 형 건물입니다.

 

▼ 매화당과 마주보는 수향각인데 용도는 요사채인듯한데, 아마도 템플스테이 용도로도 쓰이는듯 합니다 

 

▼ 수향각 건물의 기둥을 보면 아주 오래된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건립연대는 1939년 명부전을 지을때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초기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했던 지도에 보면 연향각(然香閣)이라는 건물이 보이는데, 아마도 연향각이 지금의 수향각이 된듯 합니다.

 

▼ 다음은 명부전 뒤 군왕대 중턱에 있는 산신각입니다. 국사당이라고도 합니다

 

▼ 산신각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군왕대가 있습니다.

 

▼ 군왕대에서 바라보는 마곡사 대웅보전이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 조선고적도보(제12권)에 실린 마곡사의 전경이며, 시기는 1930년대 초 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체적인 모습은 별로 변한게 없는 모습입니다

 

- 윗 사진과는 달리 마곡사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 보입니다.

 

▼ 저 징검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대웅보전에 갈 수 있습니다.

 

▼ 징검다리를 건너서 보는 성보박물관 방향입니다.

 

▼ 극락교 방향으로 내려가면서 바라보는 마곡사의 모습들입니다.

 

▼ 이제 극락교를 건너서 들어 갑니다.

 

▼ 범종류의 규모가 엄청 크고 화려 합니다. 목조 건물이 아니고 시멘트 건물인듯 합니다.

 

▼ 요사채와 스님들 생활에 필요한 창고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 왼쪽은 중층고방, 정면은 영각, 오른쪽은 연화당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 심검당 안쪽에서 바라보는 연화당입니다. 심검당은 ㄷ자형 건물이며 마곡사의 스님들이 일상 생활 하는 곳 이랍니다.

 

 

▼ 일자형 콘크리트 건물에는 연화당과, 관음전이 들어서 있습니다.

 

▼ 화려하게 꾸며진 관음전의 정면 모습입니다

 

▼ 관음전에서 바라보는 왼쪽은 심검당, 오른쪽은 중층고방인데 중층고방은 2층으로된 창고 입니다

 

▼ 오른쪽에 영각이 보이는데, 영각이라는 곳은 돌아가신 스님들의 영정이 있는곳이라고 하는데, 문은 잠겨 있었습니다.

 

▼ 관음전 내부에는 목탁장인의 작품들이 많이 전시 되어 있었는데, 목탁소리는 아주 맑았습니다

 

▼ 이제 심검당(왼쪽)과 중충고방(오른쪽) 사이에 왔습니다. 아주 오래된 목조건물입니다.

 

▼ 중층고방를 보면 2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아주 묘하게 생겼습니다. 통나무에 계단을 만들었는데, 두개의 사다리가 한조로 사용되는 듯 합니다. 자료를 보면 중층고방은 원래 현재의 연화당 자리에 있었는데, 연화당을 건립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1990년 이건하였습니다.

 

▼ 심검당과 중층고방 사잇길로 나오면 대광보전 앞마당이 나옵니다.

 

▼ 대광보전 앞 5층석탑 앞에서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이탑은 고려말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서 세워진 탑으로 보물제799이며 다보탑이라고도 합니다. 1972년에 수리를 위해서 해체를 하였는데, 탑신 내부에서 몇가지 유물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특징을 보년 상륜부에 청동으로 된 상륜이 있는데, 처은 보는 모양 입니다. 현재의 5층석탑은 대광보전 화재때 하단부가 손상을 입어서 손상을 입은 화강암을 교체 하면서 언뜻보면 이질감을 느낍니다. 1970년초에는 대광보전과 5층석탑이 무척 가깝게 있었으나, 화재후 대광보전과 좀 떨어진 현재의 위치로 이건 되었습니다.

 

탑의 옥계석을 자세히 보면 옥계석 사방으로 풍탁(風鐸)이 하나밖에 안보이는데, 1930년대 사진을 보면 옥계석 사방으로 풍탁이 달려 있습니다. 아마도 화재로 인해서 풍탁이 훼손된듯 합니다

 

▼ 1930년대초 발행된 조선고적도보12권에 수록된 마곡사 대광보전과 5층 석탑의 모습입니다. 대광보전과 5층석탑이 무척 가깝게 붙어 있습니다.

 

조선고적도보는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고조선, 고구려,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후삼국, 조선시대의 모든 문화재를 이 잡듯 뒤져서 방대한 측량자료와 사진을 포함해서 발행한 총 15권의 도보입니다.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정신적인 문화유산을 침탈하기 위해서 만들었지만, 일본이 패망하면서 남겨진 조선고적도보는 역설적이지만, 지금은 문화재 복원의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으니, 참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 대광보전은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입니다. 대광보전의 글씨는 강세황이 말년(1788년)에 쓴 글씨입니다. 단청이 바래지만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대광보전은 여러번 화재로 중건을 했는데, 문화재는 화재에 취약하므로 철저한 화재에방이 필요합니다

 

▼ 자료사진을 보면 왼쪽에 일본인은 가야모토모리토(榧本杜人)입니다. 조선에 건너와서 고조선부터 조선에 이르는 역사를 통달하였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왼쪽의 두번째는 최영희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고 두분은 마곡사의 승려입니다

 

- 일제강점기(1930년대초)때의 대광보전과 딋쪽의 대웅보전의 모습입니다. 왼쪽의 건물은 응진전으로 보이는데 일제때는 대광보전 옆에 바짝 붙어 있는 모습입니다.

 

▼ 대광보전 오른쪽에는 심검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심검당(尋;찾을심, 劍;칼검; 堂;집당) 즉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랍니다. 글씨는 조윤형이 썼습니다. 왼쪽에 보면 작은 현판에 마곡사라는 글씨는 해강 김규진이 썼습니다

 

응진전이란 석가모니의 제자인 아라한을 모신 전각을 말하는데, 부처님 좌우네 16나한상이 있습니다. 철종3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으로 봐서 그 이전에 된것으로 보입니다. 

 

▼ 김구선생이 한때 은거하였던 곳을 해방후에 동지들과 다시 찾와서 기념으로 식수를 한 향나무 입니다

 

▼ 백범당은 김구 선생이 민비(명성황후)가 시해된 1896년에 조선인으로 변장한 일본군 헌병중좌를 살해하고 살인범으로 인천교도소에 복역중 탈출하여 마곡사에 은신하면서 1898년 법명을 원종으로하고 출가 하고 이곳에서 잠시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 해방후(1946년) 동지들과 함께 다시 찾은 마곡사에서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 원래 종무소였던 자리에 2006년에 조사전을 건립하였습니다. 조사전에는 마곡사에서 전해지는 옛 선사의 영정을 모셨습니다

 

▼ 대웅보전으로 올라가는 계단끝에 있는 대향각(大香閣) 이라는 건물인데, 법당의 일을 보시는 보시는 분들의 숙소라고 합니다

 

▼ 마곡사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대웅보전 입니다. 보물 제801호 이며, 밖에서 보면 중층이지만 내부는 통층입니다.

 

▼ 1930대년초 대웅보전의 모습입니다.

 

▼ 측면에서 보는 대웅보전인데, 추녀를 밪치는 활주(보조기둥)이 보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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