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시의 문화재를 둘러 보던중에 이천의 문화재가 현재 일본 도쿄에 있는 오쿠라슈코칸(오쿠라박물관)의 후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문화재는 이천오층석탑이라는 고려시대의 오층석탑이며, 1918년 일본으로 반출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석탑이 복제되어 이천시청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가 보았습니다.
▼ 이천시청의 아트홀 앞에는 오쿠라슈코칸의 오층석탑을 복제한 오층석탑과, 김복동할머니의 동상이 있습니다. 오층석탑도, 김복동 할머니도 이찌보면 같은 아픔을 품고 있습니다.
▼ 이천시청 아트홀 앞에는 김복동 할머니의 동상과 추모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1992년 3월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고발했습니다. 이후 전 세계를 돌며, 일본군의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렸습니다. 전쟁 피해 여성들의 인권 신장과 지원을 위해 '나비기금'을 발족하는 등 인권 운동가로서 활발히 활동했으며, 2019년 1월 28일 93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 일본에 있는 오층석탑을 복제한 탑은 원래의 오층석탑이 돌아 올 그날까지 이천시청 아트홀 앞에 당당히 버티고 있을 것 입니다. 복제한 탑의 다른 이름은 이천오층석탑 환수염원탑이라고도 합니다.
▼ 경복궁의 자선당을 헐어 버리고 새로 지은 조선총복부 박물관 앞의 이천 오층석탑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이 조선(한국)에서의 마지막 모습 입니다._출처는 문화재청입니다.
▼ 조선총독부 박물관 앞에는 이천 오층석탑과 여러 지역에서 옮겨온 석탑들이 많이 보입니다. 좌측 건물은 근정전 입니다. 이 탑들과 기타 문화재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건 되었습니다
▼ 이천오층석탑 환수위원회는 2009년 오쿠라슈코칸을 방문하여 이천오층석탑을 반환하여 줄 것을 요청 하였으나, 그들은 동일한 가치의 문화재를 가져 오면 주겠다고 했답니다. 훔쳐간 문화재를 달라는데, 다른 문화재를 가져오라니... 상종 할 인간들이 아닙니다.
일본X들이 훔쳐간 우리 문화재는 수십만점에서 적어도 100만점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간혹 한두점씩 경매를 통해서 국내로 들어 오는 문화재도 있으나, 대부분은 환수가 불가능한 상태로 일본의 박물관에 있거나, 여기 저기 숨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 이 사진은 일본 오쿠라슈코칸 후원에 있는 이천오층석탑의 실물 사진입니다. 1915년 일제는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하면서 경복궁의 대부분의 건물들을 헐어 버리고, 전국의 유명 문화재를 경북궁안에 배치 하였는데, 이천오층석탑도 그때 이천에서 경복궁으로 옮겨졌습니다.
이후 1918년 일본인 수집가 오쿠라기하지로가 여러가지 문화재를 일본으로 반출하였는데, 그때 이천오층석탑도 인천항을 통해서 반출되었으며, 오쿠라슈코칸의 후원에 안치하였습니다.
▼ 일본의 수집가겸 사업가이며, 대표적인 문화재 약탈자인 오쿠라기하지로(大倉喜八郞·1837~1928년)가 세운 사립박물관인 오쿠라슈코칸의 모습입니다.
오쿠라슈코칸에는 수많은 한국의 문화재들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대부분 강탈해서 빼돌린 문화재 이며, 일본의 국립박물관도 우리의 수많은 문화재를 강탈해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 2009년 이천오층석탑환수위원회에서 오쿠라슈코칸을 방문하여 오층석탑과 평양 율리사지 5층석탑을 조사한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
▼ 오쿠라슈코칸 후원의 이천오층석탑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또다른 우리의 석탑이 보이는데 평양 율리사지 오층석탑입니다.
▼ 사진으로 보는 이천오층석탑의 모습은 참 안정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 일본 오쿠라슈코칸을 방문한 이천오층석탑 환수위원회의 기술진들이 탑의 구조를 측정하고 있습니다.
▼ 디지탈 3D SCAN장비도 가져 가서 측정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경복궁에서 개최하면서 경복궁의 대부분의 건물들을 해체하고 공진회 건물들로 채워 놓았습니다. 이때 조선의 예술성이 뛰어난 문화재들이 장식용으로 배치되었습니다.
맨 좌측의 하얀 건물이 자선당을 헐어서 오쿠라가 일본으로 반출한 자리에 세운 조선총독부박물관 입니다. 우측에 성문이 보이는데,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建春門)이며, 앞은 근정전 회랑입니다.
▼ 오쿠라슈코칸의 후원에 있는 평양율리사지의 오층석탑도 사진자료가 있는데, 일반적인 고려석탑과는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육각형의 기본구조에 탑신, 옥개석이 모두 팔각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기술진들이 평양율리사지 오층석탑도 3D SCAN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도 일본과 석탑의 반환을 위해서 협상을 해 봤지만, 효과는 없었습니다
▼ 경복궁의 자선당(資善堂)을 통째로 헐어 가서 오쿠라슈코칸의 조선관으로 사용하던 모습입니다. 하지만, 관동대지진때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남은 유규만 반환하여 현재 경복궁 북쪽의 건청궁에 안치하였습니다. 자선당은 조선 세종때 건립되어 문종이 세자였을때 세자빈과 거처하던 곳 이었습니다.
경복공의 자선당은 조선 세종때 건립하였다가, 화재, 그리고 중건, 재건을 거치면서 한동안 없어졌다가 1866년(고종 3)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어졌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 일본인 문화재 약탈자인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에게 불하되어 일본으로 헐려가, 도쿄의 오쿠라 호텔에서 ‘조선관(朝鮮館)’이라는 이름의 별채가 되었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되었습니다.
경복궁내 기존의 자선당 자리엔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들어섰다가, 1990년대 경복궁 재건사업으로 해체되었으며, 그 자리에 다시 동궁전이 들어 서면서 자선당이 복원 되었습니다.
▼ 건청궁에 안치되어 있는 자선당(資善堂) 유구입니다. 관동대지진때 불에 탄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헐어 버리고, 그 자리에 원래의 자선당(동궁)을 복원 하였습니다. 원래는 일본 오쿠라슈코칸에서 반환되어온 원래의 석재를 활용 할 계획이었으나, 불에 타면서 석재의 내구성이 상실되어 새로운 석재를 사용해서 지었다고 합니다.
자선당은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궁(東宮)으로 불렀는데, 왕위를 이어 받을 세자와 세자빈과 거처 하는 곳 이었습니다. 이 자선당에 처음 지어진 때는 세종때 였으며, 문종이 세자 시절에 여기서 지냈습니다.
▼ 오쿠라슈코칸에 있는 원래의 오층석탑의 측정 자료를 기준으로 그대로 복제한 오층석탑이며, 상륜부는 없었는데, 일부 자료사진에 상륜부의 모습이 남아 있어서 그대로 복원 했다고 합니다.
▼ 이탑의 이름은 이천오층석탑환수염원탑이 되었습니다. 일본에 있는 이천오층석탑이 돌아 올 그날 까지...
▼ 오층석탑 주위에는 오층석탑이 빨리 돌아 오기를 염원하는 각종 글귀들이 각 방향 마다 하나씩 써 있습니다.
▼ 이천오층석탑이 귀향하는 마음을 담아서 별궤적 배경사진으로 합성을 해 봤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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