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전사지(令傳寺址) 보제존자 사리탑은 설명문이 없었으면 일반적인 고려시대의 삼층석탑이라고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만, 하지만 이 쌍탑은 고려시대의 유명한 보제존자 나옹선사의 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입니다.

 

보제존자 나옹선사는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였으며, 지금의 강월헌 주위에서 다비를 하고, 사리를 여주 신륵사, 양주 회암사, 원주 영전사에 각각 안치 하였습니다.

 

이탑은 1915년 일제가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 하면서 경복궁에 조경용으로 옮겨 놓았으며, 2005년 현재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 소재지 :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 출토지 : 강원 원주 영전사지

□ 문화재 : 보물 358호(서탑,동탑)

□ 시   대 : 고려말기 1388년(우왕14년)


▼ 탑의 형태가 안정감 있고, 짜임새 있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대략적으로 보면 옥개석의 두께와 상륜부의 모양만 다르고 대부분 양식이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개의 탑중에서 동탑, 서탑이 있는데, 보이는대로 좌측이 서탑이고 우측이 동탑입니다. 문화재청의 사진자료에는 사진의 제목이 틀린 사진도 있어서, 애매한데, 상륜부의 모양에 따라서 동탑과 서탑으로 구분 하였습니다.

 

▼ 자료사진으로 석탑의 주인을 알아봤습니다. 문경의 대승사 묘적암에 있는 보제존자 나옹선사의 영정이며 자세히 보면 목에 삼도를 그려 넣었습니다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여주 신륵사에는 보제존자 나옹선사의 사리탑인, 보물 제228호 보제존자석종, 보물 제 229호 보제존자석종비, 보물 제231호 보제존자석종석등이 있습니다. 

 

▼ 양주 회암사지에도 보제존자의 사리탑이 있는데, 사리탑과 석등입니다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한 영전사지 보제존자탑의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

개설
보물 제358호. 1915년 원 위치에서 반출되어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당시 두 탑 모두에서 사리장엄구가 출토되었다. 일제강점기 고유섭의 기록에 의하면 두 탑 중 하나는 조금 크고 상륜부에 연화가 새겨진 편평한 복발, 보병, 상륜 2개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방형 노반 위에 보륜, 보주 등이 있었다고 하며 그 중 보병이 없는 탑에서 탑지석이 나왔다고 전한다. 명문에 탑지석이 있는 탑을 본탑, 다른 탑을 동탑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크기와 형태로 볼 때 탑지석은 보병이 있는 탑에서 출토된 사리구와 일치하여, 현재 보병이 있는 큰 탑을 서탑, 보주가 있는 탑을 동탑으로 전시되어 있다. 원 위치에서 이동되면서 출토된 두 탑의 사리장엄구가 와전되어 전해지면서 발생했던 착오로 보인다. 1990년에 국립중앙박물관(현 국립고궁박물관) 정원으로 이전되었으며 현재는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있다.
 
역사적 변천
이 탑들이 있었던 영전사지는 관련 기록이 전혀 전해지지 않으며, 1912년에 이 탑들을 조사하였던 세키노 다다시[關野貞]는 “폐영전사지”로 기록하고 있어 당시에도 유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황폐화된 절터였던 것 같다.
 
다만, 출토된 현 동탑 사리장엄구에 시주자 ‘원룡(元龍)’의 이름이, 현 서탑 유물에서는 ‘시주 원로(元老)’, ‘시주 원씨(元氏)’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납석제 지석 앞뒤 면에는 도인(道人) 각수(覺修)가 왕사 보제존자의 사리 1과를 주탑(主塔)에, 비구니 묘관(妙寬)은 보제존자 사리 1과를 동탑에 봉안한다는 내용과 함께 공덕주들, 석수와 노야(爐冶) 등의 장인들의 이름과 홍무 21년(1388) 무진 4월에 목사(牧使) 강은(姜隱)이 이를 기록하였음이 새겨져 있다. 따라서 1388년에 동, 서 쌍탑의 불탑 형태로 조성되어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고려시대 전형 양식의 석탑 모습으로 조성된 고려시대 후기 승탑으로, 현 서탑의 기단과 탑신부가 동탑보다 약간 크며 옥개석이 조금 얇다는 것과 상륜부 형태가 다르다는 점 이외에는 거의 동일한 모습이다.
 
기단부는 2층 기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층 기단의 크기가 작다. 하층기단 하대와 중대석은 한 돌로 하단에 하대가 모각되어 있으며 4매의 부재로 결구되었다. 하층 기단 갑석은 서탑은 4매, 동탑은 2매로 구성되었으며 하단은 수평처리 되었으며, 상단에는 경사가 있으며 중앙에 호, 각의 괴임을 두어 상층 기단 면석을 받치고 있다.
 
상층 기단 면석은 4매로 엇물려 구성되었으며 갑석은 하단에 부연을 두고 경사를 약간 둔 상면 중앙에는 각, 호, 각의 괴임을 두어 위로 별석 받침을 두었다. 탑신을 받는 별석받침은 상, 하단에 각, 호, 각의 괴임을 가지고 있다. 기단부 상, 하층 면석에는 우주가 모각되거나 옆 면석의 측면이 대신하고 있으며 탱주가 각 1주씩 조식되어 있다.
 
탑신과 옥개석은 모두 각 1매로 조성되었으며 탑신은 초층에 비해 2층의 높이가 급격히 감축되었다. 그러나 폭과 전체적인 체감은 안정적이다. 탑신에는 양 우주가 모각되었으며 옥개석 층급은 4단이다.
상륜부는 동, 서 승탑이 차이를 보이는데 서탑은[ 동탑은 상단에 얕은 2단의 테두리를 두른 노반 위에 보륜과 보주가 중첩되어 있다.
 
 
특징
부처님처럼 분사리되어 다른 여러 곳에서도 보제존자나옹의 사리를 봉안한 탑들이 조성되었다. 그 중 이 동, 서탑은 두 명의 시주자에 의해 동, 서 쌍탑의 불탑형으로 조성되어 특이하다. 또한 고유섭의 기록에 의하면, 서탑의 상륜부가 복발과 보병 위에 현재는 없어진 보륜 2개가 얹혀 있었다고 하여 라마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동탑의 모습도 라마탑을 한국적으로 표현한 양주 회암사지 부도탑의 모습과 유사하여 주목된다.
 
 
의의와 평가
고려 12세기 법상종에서 방형의 특수형 승탑이 조성되고 있기는 하지만, 보제존자의 탑은 분사리에 의해 다수가 조성되었음이 확인되고 그 형태도 구형탑신, 석종형 탑과 함께 심지어 불탑형 쌍탑이 남아 있어 당시 승려들에 대한 숭배의 정도를 짐작하게 해 준다. 이러한 현상은 여말선초에 집중되는데 특히 나옹의 스승인 지공선사와 나옹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온전하게 남아 있지는 않지만, 동, 서탑의 상륜부에는 여말선초에 영향을 미쳤던 라마탑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어 시대성을 보여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原州令傳寺址普濟尊者塔))]


▼ 왼쪽이 서탑, 오른쪽이 동탑입니다. 옥개석과, 상륜부의 모양에 따라서 구분 하였습니다만, 문화재청의 흑백자료사진의 제목도 동탑과 석탑이 바뀐 사진도 있으므로, 여러 자료를 봐야 합니다.

 

▼ 원주 영전사지에 있을때의 보제존자의 사리탑 자료사진입니다. 그런데 모양이 비슷한 탑이 세개입니다. 그럼 보제존자의 사리탑이 세개였다는 것인지, 아니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탑 처럼 두개였다는 것인지, 참 애매하게 보입니다. 왼쪽의 두기의 탑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탑입니다  (이하 자료사진은 e_뮤지엄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1915년에 경복궁으로 옮겨진 영전사지 보제존자 사리탑중에서 동탑입니다. 그런데, 원래처럼 동탑과 서탑을 나란히 세우지 않고, 좀 멀리 떨어지게 세웠습니다.

 

▼ 서탑입니다.

 

▼ 보제존자 사리탑의 탑지석이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영전사지보제존자사리탑", 금석문 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소]

 

- 전면부(前面部)

도인(道人) 각수(覺修)가 왕사(王師) 보제존자(普濟尊者)의 사리(舍利) 1과(粿)를 주탑(主塔)에 안치(安置)하였고, 비구니(比丘尼) 묘관(妙寬)도 보제존자(普濟尊者)의 사리 1과를 동탑(東塔)에 봉안(奉安)하였다.

 

대공덕주(大功德主) 봉익대부(奉翊大夫) 서윤현(徐允賢)의 법명(法名)은 각희(覺喜)이며, 처씨(妻氏)는 단산군부인(丹山郡夫人) 장씨(張氏)이니 법명(法名)은 묘연(妙然)이다.

-후면부(後面部)

석수(石手)는 도인(道人) 각훈(覺訓)이고
노야(爐冶)는 도인(道人) 각청(覺淸)이며
권화(勸化) 비구(比丘)는 각여(覺如)이다.
홍무(洪武) 21년(1388) 무진(戊辰) 4월 일에 기록한다.
목사(牧使)는 강은(姜隱)이다.

 

▼ 보제존자 사리탑의 동탑에서 발견된 동제 사리함 자료사진 입니다.

▼ 보제존자 사리탑의 서탑에서 발견된 동제 사리함 자료사진 입니다.

▼ 서탑 상륜부는 연화문이 조식된 편평한 복발형의 부재 위에 보병이 남아 있고 일제강점기에는 위로 상륜 2개가 더 있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동탑은 서탑보다 규모가 약간 작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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