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개성 부근의 남계원터에 남아 있던 탑으로, 예전에는 이 터가 개국사(開國寺)의 옛터로 알려져 개국사탑으로 불려져 왔으나, 나중에 남계원의 터임이 밝혀져 탑의 이름도 개성 남계원 칠층석탑으로 고쳐지게 되었다.
1915년에 탑의 기단부(基壇部)를 제외한 탑신부(塔身部)만 경복궁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원래의 위치에 대한 조사 결과 2층으로 구성된 기단이 출토되어 추가 이전해 석탑 옆에 놓았다가 다시 복원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세워져 있다.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소재지 :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야외석물정원)
□ 출토지 : 경기 개성 부근 남계원터
□ 문화재 : 국보 제100호
□ 시 대 : 고려중기 이전
▼ 개성 남계원터 칠층석탑(開城 南溪院址 七層石塔)은 크기면에서 일반적인 탑들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높이는 752㎝, 넓이는 334㎝입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때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2005년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 개성 남계원터의 칠층석탑은 2단의 기단에 7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으로, 얼핏 보면 신라 석탑의 전형을 따르고 있는 듯하나 세부적으로는 양식상의 변화를 보여준다.
먼저 기단은 신라의 일반형 석탑에 비해 아래층 기단이 훨씬 높아졌고, 상대적으로 2층 기단이 약간 낮아져 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1개의 돌로 조성하였으며,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겨 두었다.
지붕돌은 두툼해 보이는 처마가 밋밋한 곡선을 그리다 네 귀퉁이에서 심하게 들려져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밑면에는 3단씩의 받침이 얕게 새겨져 있다. 탑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과 복발만이 하나의 돌에 조각되어 남아있다.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일제 강점기 때, 경기 개성의 남계원터에서 찍은 칠층석탑의 모습이며, 1915년 전으로 추정 합니다. 상대갑석 이하는 묻혀 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나중에 다시 조사한 결과 기단부가 발견되어 경복궁에 안치된 칠층석탑의 옆에 두었다가 2005년 현재의 위치에 탑을 안치하면서 기단부를 넣었습니다
▼ 남계원터에서 경복궁으로 옮겨진 칠층석탑의 모습입니다. 상대갑석은 새로 만들어서 넣은 듯이 보입니다.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때의 사진입니다.
▼ 현재 상대갑석의 모습인데, 약간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 이 탑은 1915년 탑을 옮겨 세울 때, 탑신부에서 두루마리 7개의 『감지은니사경』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고려 충렬왕 9년(1283)에 탑 속에 넣은 불교경전으로, 이때 탑을 보수했음을 알 수 있다.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감지은니사경[紺紙銀泥妙經] :쪽물을 들인 종이 위에 은물로 글씨를 쓴 경전
▼ 상대갑석 이하, 기단부는 탑이 경복궁에 있을 때 탑 옆에 두었다가 2005년 경복궁에서 현재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할 때 원래의 모습으로 조립이 되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멋진 모습입니다.
▼ 상층 기단석은 탑의 크기가 너무 커서 하나의 면석으로 받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세 개의 기단석으로 꾸몄습니다.
▼ 칠층석탑이 개성 남계원 터에 있을 때의 모습과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모습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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