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 대안리에 있는 효종의 딸(공주)의 태실지인 운산태실은, 1929년 일제강점기 때 숙정공주의 태실이 서삼릉으로 이안되면서 본래의 경관이 훼손되었으나, 1993년 11월 금물산 클럽이라는 민간단체가 흩어져 있던 태함과 함께, 아기태실비 등을 수습해 지금과 같이 복원하였습니다.

※ 자료는 원주문화재편람, 사삼릉 홈페이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길에서 바라보면 어느곳이 태실지인지 헷갈리는데, 사진상으로는 오른쪽 봉우리이며, 밭옆길을 따라서 끝까지 들어가다 보면 숲길로 길이 보입니다.

 

▼ 겨울에 낙옆이 없을 때는 태실이 잘 보입니다

 

▼ 내비주소를 '대안리 2109-3'으로 지정하고 주차는 길옆에 하면 됩니다

 

▼ 왕손의 태실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치장을 하지는 않고 평범하데 일반 민묘처럼 봉분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모든 왕자, 왕녀의 태실은 모양이 대개 비슷한데, 만약 태실의 주인이 왕이 되면, 태실의 지위와 모양은 크게 바뀝니다.

또한 왕이 된 태실은 태봉(胎奉)이라고 높여 부르게 됩니다. 

 

▼ 일반 민묘처럼 보이는 태실이지만, 태실의 주인이 왕으로 등극을 하게 되면 대대적으로 태실을 꾸미고 이름도 태봉이라고 높여 부릅니다

 

숙정공주가 동생, 숙휘공주가 언니이며, 조선의 19대 왕 숙종이 조카입니다.

 

▼1993년 원주의 뜻 있는 분들의 모임인 금물산클럽에서 태실을 복원하였다는 내용입니다 

 

▼ 효종의 가계도를 보면, 효종은 인선왕후에서 3남(2명은 조졸), 6녀를 얻었으며, 아들은 현종입니다. 가계도에서 보는 효종의 자식들은 모두 효종이 즉위 전인 봉림대군일 때 얻은 자식들입니다.

다른 자료에서 보면, 숙휘공주와, 숙정공주가 쌍둥이라고 되어 있으나, 사실은 4살 터울이었습니다. 다만, 태실조성은 한날에 이루어졌습니다.

 

▼ 숙정공주의 태비를 보면 상단의 재질이 많이 다른데, 파손된 상단 부분은 1993년에 새로 맞춘 것으로 보이며, 다행히 글자는 거의 남아 있어서 다행입니다.

 

▼ 1929년 태실의 태지서과 태항아리를 서삼릉으로 옮길 때 훼손되었던 태실은 1993년에 원주시민들에 위해서 복원되었습니다.

아마도 태함은 땅속에 묻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오른쪽의 숙희공주의 태비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숙정공주보다 4살 위 언니입니다. 태비에는 淑徽公主阿只氏胎室(숙휘공주아기씨태실)'이라고 각서 되어 있습니다.

 

▼ 태비 뒷면에는(康熙元年十一月二十五日巳時立(강희원년 11월 25일 기시입)이라고 각서 되어 있으며, 강희원년은 1662년이며, 현종 3년 차가 됩니다. 즉 봉림대군 때 태어난 숙휘공주와 숙정공주의 태를 왕이 되어서야 공주로 격상시켜 태를 안태 하였습니다.

 

▼ 숙휘공주의 합장묘 자료사진입니다(위키백과)


▼ 숙정공주는 효종과 인선왕후(仁宣王后)의 5 왕녀로 옆에 있는 숙휘공주의 바로 아래 동생입니다.

태비 전면에는 淑靜公主阿只氏胎室(숙정공주아기씨태실)이며, 태지석에 의하면 1646년 11월 초 7일 해시(亥時)에 태어났으며 1662년 11월 25일 사시(巳時)에 안태 하였습니다.

- 태비 상단은 깨져 분실되었으나, 새로 맞추어 결합하여 색이 많이 달라 보입니다.

 

▼ 숙정공주의 태실비 뒷면 우측에는 ‘咸豊五年三月十七日六代孫基鎬(함풍오년삼월십칠일육대손기호)’라는 명문이 각자 되어 있는데 1855년 3월 17일에 숙정공주의 6대손 기호(基鎬)라고 각자 된 글자는 아기태실비의 수개(修改)나 개건(改建)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명확하지 않습니다.

※ 咸豊五年(함풍 5년)은 청나라 9대 황제 문종의 연호이며, 함풍 5년이면, 서기 1855년이고, 조선의 철종 6년의 시대입니다.

※ 6대손 기호( 基鎬)는 성이 정 씨(鄭氏)이며, 숙정공주의 남편이 동평위(東平尉) 정재륜(鄭載崙)입니다.

 

▼ 일제강점기 때 1929년 즈음에 촬영한 숙정공주의 태호와 태지이며,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 숙정공주(5녀)의 태지석 자료에서 에서 보면.태지석과 태 항아리를 국림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어서 자료를 알아보았습니다.(서삼릉 홈페이지)

 

- 앞면은 ‘병술년십일월초칠일해시탄생숙정공주아기씨태(丙戌年十一月初七日亥時誕生淑靜公主阿只氏胎)’,

 

- 뒷면은 ‘강희원년십일월이십오일사시장(康熙元年十一月二十五日巳時藏)이 새겨져 있는데,

 

효종(孝宗)의 딸인 숙정공주(1645~1668)의 태지석으로 음각된 명문이 있는데, 글자수는 앞면 21자, 뒷면 14자 총 35자이다. 명문 내용은 ‘병술년(丙戌, 1646) 11월 초 7일 해시(亥時)에 태어난 숙정공주(淑靜公主) 아기씨의 태를 청(淸) 황제 강희(康熙) 1년(1662) 11월 25일 사시(巳時)에 묻다(丙戌年十一月初七日亥時誕生淑靜公主阿只氏胎康熙元年十一月二十五日巳時藏).’이다.

 

숙정공주(淑靜公主)는 1646년(병술년)에 태어났는데 이때는 인조 24년이 됩니다. 그러므로 숙정공주는 인조의 손녀가 되며, 아직 공주라는 호칭이 없었을 때의 아기씨였습니다

그럼 언제 안태가 되었는가를 보면, 숙정공주가 태어난 지 16년이 지난, 1662년, 즉 효종 3년에서야 강원도 원주 백운산 자락에 안태를 하면서 정식으로 공주라는 직위를 부여했습니다.

 

▼ 숙정공주의 묘소(위키백과)

 

- 인조 24년(병술년, 1646년)에는 인조가 소현세자빈에게 사약을 내린 날이며, 몇 개월 후에 숙정공주가 태어났습니다. 옆길로 살짝 빗나간 말이지만, 인조만 생각하면, 너무도 모지리이고, 너무 왕을 오래 해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았고, 조선왕조의 질을 수백 년 후퇴시킨 놈이었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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