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 호저면 산현리에 있는 태실은 다른 태실과는 달리 찾아가기가 매우 쉬운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원래의 태실지의 주소로 찾아가면 너무 넓은 산주소이기 때문에 근처 주소지를 입력하여 찾아가는 방법이 제일 쉬운데 호저면 산현리 442-6번지를 찾아가서 반대편 느티나무 아래에 주차하고 보면 맞은편에 태실지가 바로 보입니다.
※ 자료사진은 원주문화편람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태실의 임자가 누군지 지금도 알 수가 없어서 마을이름을 붙여서 산현리태실이라고 부릅니다.
▼[자료사진] 태실지의 태봉은 길을 내느라 일부가 깍였습니다
▼ 전봇대 옆으로 길이 산으로 이어져 있으며, 금방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 잠깐이면 태실에 도착하는데, 태비가 빼꼼 보입니다
▼ 태실에는 원래 일반인 묘처럼 봉분이 있어야 하는데, 도굴된 이후로 태비만 복원이 되었습니다.
▼ 태실이 1968년 도굴된 후 태함만 나 뒹굴고 있는 사진이며, 태함은 현재 땅속에 묻혀 있다고 합니다.
▼ 일반적인 태실 앞의 태비모양이며, 대부분의 태비는 모양이 대개 비숫합니다. 전면이지만 글자는 판독이 안됩니다
▼ 비교적 깨끗한 상태에서 촬영된 사진으로 태비를 보겠습니다.
앞면은 판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마멸이 심한 상태여서, 다른 자료에서 글자를 알아보았는데,
황명만력이십팔년십이월이십구일해시생왕자손남아기씨태실
(皇明萬曆二十八年十二月二十九日亥時生王子孫男阿只氏胎室)
-> 선조 32년(1599년) 12월 19일(음력) 해시에 태어난 왕자의 아기씨(아들)의 태실, 그런데, 날자가 1599년 12월 19일에 태어난 왕자의 아들이면, 선조의 손자가 되는데, 1599년에 태어난 선조의 왕자는 없었으니, 어느 왕자의 아들이 태어난 생년월일을 새긴 것으로 봐야 하는지 헷갈립니다
아무래도 선조의 손자가 태어나서 일찍 죽어서 다른 기록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실의 뒷면에는 ‘만력이십구년사월삼십일입(萬曆二十九年四月三十日立)’이 새겨져 있은데, 선조 33년(1600년)에 태실을 조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만력은 명나라 황제인 신종(만력제)의 연호
▼ 글자는 점점 판독이 어려울 정도로 비바람에 조금씩 조금씩 마멸되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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