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칭 : 역사속의 태극기 우표

※ 발행 : 2019년 8월 14일 

※ 인터넷우체국(K-stamp), 국가기록원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우주 만물의 원리를 형상화하여 세계에서 가장 철학적인 국기로 평가받는 태극기가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여러 가지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우정사업본부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다양한 태극기의 모습을 담아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구한말 고종이 미국인 외교 고문 데니에게 하사했다고 알려진 데니 태극기 는 189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습니다.
  

1897년 대한제국이 출범하며 근대화가 시작되자 교육 관련 태극기 제작도 이어졌습니다. 강릉 선교장 소장 태극기 는 1900년대 초 강릉지역의 동진학교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한 태극기로 추정됩니다.

 

명신여학교 태극기 는 1906년 순헌황귀비가 명신여학교(지금의 숙명 여중 고)를 설립할 당시에 제작됐고 동덕여자의숙 태극기 는 1908년 동덕여자의숙이 개교하며 게양되었습니다.
  

그러나 근대화와 동시에 국권침탈도 시작되었고 을사늑약 체결에 반발한 의병장 고광순은 1907년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뜻의 불원복 태극기를 만들어 항일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이후 독립만세 운동에 쓸 태극기를 대량으로 제작하기 위해 우리 민족은 태극기 목판 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남상락 자수 태극기 는 명주천에 손바느질로 만든 것으로 독립운동가 남상락이 1919년 4월 4일 만세 운동에 사용했고, 진관사 소장 태극기 역시 승려들이 3·1운동 등에 참여하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의장 등을 역임한 김붕준 일가의 기증품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들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역사 속에서 태극기의 변천사를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독립을 향한 우리의 염원은 태극기에 담겨 미국까지 뻗어 나갔습니다. 가늘고 긴 삼각형 깃발 속에 제작된 대한독립만세 태극기와 1941년 김구 주석이 미국으로 가는 미우스 오그 신부에게 건넨 김구 서명문 태극기가 이를 증명합니다.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해방된 후 완전한 독립국가를 향한 염원은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우리 민족은 또 다시 태극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학도병들의 굳은 의지가 담긴 경주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 , 당시의 진군 경로와 군인 정신이 표출된 이철희 사변폭발 태극기를 독립기념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 기증 태극기 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버스 비어가 서울 수복 전투 중 우리 시민에게 받은 태극기로 하남역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얼과 자주독립의 염원이 깃든 태극기의 변천사를 우표 16종에 담았습니다. 광복절을 맞아 한 장 한 장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펴보고 그 의미를 되새겨보면 좋겠습니다.

 

▼ 경주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慶州 學徒兵 書名文 太極旗)는 6·25 전쟁 당시 경주에서 자원한 19명의 학도병이 출정 전에 각자 소감을 적고 서명한 태극기로 학도병들의 굳은 의지와 각오가 표현되어 있다.


태극기 가운데 붉은색 태극 부분에는 ‘남북통일(南北統一)’이라는 글자가 한자로 크게 쓰여 있다. 그 외에도 ‘우리의 죽음은 역사의 꽃이 되라’, ‘17세 붉은 피 오직 조국에!’, ‘서라벌의 용사여 잊으랴 화랑정신’, ‘공부는 다음에 충성은 이 순간’, ‘쳐부시자 삼팔선’, ‘조국을 위해 희생 정신’ 등 학도병들의 굳은 의지와 각오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 기증 태극기 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버스 비어가 서울 수복 전투 중 우리 시민에게 받은 태극기로 하남역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 이철희 ‘사변폭발’ 태극기(李鐵熙事變爆發太極旗)는 특무 상사 이철희가 6·25 전쟁 때 지니고 있었던 태극기이다. 

 

이철희 ‘사변폭발’ 태극기는 흰색 광목천에 날염된 것으로, 크기는 가로 87㎝, 세로 56㎝이다. 태극 문양과 4괘의 모양 및 규격이 오늘날의 태극기와 같다. 

 

태극기의 네 귀퉁이에 ‘사 변 폭 발(事變爆發)’이라는 글자가 한 글자씩 쓰여 있고, 가운데 부분의 맨위쪽에는 ‘단기 4283. 6. 25일(1950년)’이라는 글귀가 가로로 쓰여 있다. 

 

태극 문양 주변에는 지명이 빼곡히 둘러 적혀 있다. 태극 문양의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의정부를 시작하여 서울, 안양, 수원, 천안, 그리고 태극 문양의 제일 아랫부분의 대구까지 약 30여 개의 지명이 빙 둘러 가며 쓰여 있다. 

 

또 거기에서부터는 ‘부산, 영천, 경주, 충주, 이천, 10. 5. 서울 입성, 승호리, 10. 21. 평양’ 등이 그 반대쪽으로 빙 둘러 쓰여 있다. 지명의 순서를 미루어 볼 때 태극 문양의 오른쪽으로 둘러 적힌 지명들은 북한군의 남침 경로로 보이고 왼쪽으로 둘러 적힌 지명들은 국군의 북진 경로라고 전해지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韓國光復軍書名文太極旗)는 광복군 제3지대 2구대에서 활동하던 문웅명[일명 문수열]이 1945년 2월경 동료 대원이었던 이정수에게 선물 받은 태극기이다.

 

그런데 1946년 1월 문웅명이 다른 부대로 옮기게 되자 이를 아쉬워한 동료 대원들이 광복의 기쁨과 바람직한 국가상, 완전한 독립 국가에 대한 염원을 담은 내용으로 태극기 여백에 서명을 하였다.

 

약 70여 명의 서명자 중에는 제17대 광복회장 김국주와 제18대 광복회장 김영일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광복군 서명 태극기는 1986년 8월 독립 기념관에 기증되었다. 

크기는 세로 61.8㎝, 가로 87.8㎝로, 흰색 바탕에 색깔 있는 옷감을 잘라 덧대어 태극 문양과 4괘를 박음질하였다. 태극 문양의 양방은 붉은색이고, 음방과 4괘는 검은색이다. 바탕에는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고 결의를 다짐하는 글귀와 서명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 ‘대한독립만세’ 태극기(大韓獨立萬歲太極旗)는 가로 71.1㎝, 세로 27.8㎝의 가늘고 긴 삼각 형태의 깃발 속에 제작된 태극기이다.

 

바탕은 파란색과 붉은색 모직 펠트 천을 연결한 기다란 삼각형 모양이다. 오른쪽의 붉은색 펠트 부분에는 붉은색 깃대가 있는 날염 태극기를 박음질하고, 왼쪽 파란색 부분에는 한자로 ‘대한 독립 만세(大韓獨立萬歲)’를 낱글자로 박음질하였다.

 

‘대한’ 두 글자는 위 아래 세로로 쓰여 있고 ‘독립 만세’ 네 글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로 쓰여 있다.

 

1982년 9월 독립 기념관이 건립될 때 수집된 태극기 중 하나이다. 마치 미국 대학의 깃발 같은 모양과 재질, 박음질 솜씨 등으로 보아 1930~1940년대에 미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김구 서명문 태극기(金九 書名文 太極旗)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 김구[1876~1949]의 서명문이 있는 태극기로 1941년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벨기에 출신의 신부 매우사(梅雨絲)[미우스 오그]가 미국으로 건너갈 때 김구 주석에게서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매우사는 미국 뉴욕에서 약 1년 동안 선교 활동을 하다가 중국으로 돌아갈 때 안창호의 부인 이혜련에게 김구 서명문 태극기를 맡겼고, 1985년 그 유족이 독립 기념관에 기증하여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높이 44.3㎝, 너비 62㎝로 흰색 바탕에 색깔 있는 천을 잘라 태극 문양과 4괘를 박음질하였다. 태극 문양은 파란색과 붉은색이 좌우 방향으로 맞물려 있고 4괘는 검은색이다.

 

태극기 바탕 오른쪽에는 광복군에 대한 우리 동포들의 지원을 당부한 김구의 친필 묵서가 세로로 쓰여 있다. “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과 인력과 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힘을 가진 세상의 나쁜 놈들)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광복을 완성하자.”라는 내용을 적고 서명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김붕준(金朋濬;1888∼1950) 일가가 소장하고 있는 태극기 3점은 부인인 노영재가 1940년대를 전후하여 제작한 것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정부공보 제75호(대한민단 24년 8월 20일)에 게시된 태극기와 유사한 형태다.

 

특히 재봉틀 박음질 제작기법이나 제작구도를 볼 때 중경 임시정부 시절 제작된 김구 서명문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8호)와 비슷하여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사의 국가 표상적인 맥을 함께 할뿐 아니라 국기 변천사를 알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 남상락 자수 태극기(南相洛 刺繡 太極旗)는 1919년 독립 운동가 남상락[1892~1943]이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4·4 독립 만세 운동 때 사용한 태극기이다.

 

남상락은 충청남도 당진군 대호지면에서 4·4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었다. 시위 때 사용된 태극기는 남상락이 평생 소중하게 간직했는데 1986년 10월 아들 남선우가 독립 기념관에 기증하였다.

 

크기는 가로 44㎝, 세로 34㎝로, 남상락의 부인 구홍원(具鴻瑗)이 직접 수를 놓았다. 흰색 명주 천에 색실로 수를 놓았으며 가운데 태극 문양의 양방은 홍색실로, 음방은 청색실로 수를 놓았다. 4괘는 검정실로 수를 놓았고, 테두리는 바느질로 마감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서울 진관사 태극기는 2009년 5월 26일 서울시 은평구 진관사의 부속건물인 칠성각(七星閣)을 해체ㆍ복원하는 과정에서 내부 불단(佛壇) 안쪽 벽체에서 발견된 것으로, 태극기에 보자기처럼 싸인 독립신문류 19점이 함께 발견되었다. 

 

진관사 소장 태극기 역시 3.1만세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즈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학계에서는 태극기를 숨긴 인물로 진관사 승려였던 백초월(白初月) 혹은 그와 밀접한 연관이 있던 승려로 추정하고 있다. 

 

진관사 태극기의 가장 큰 특징은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의 형상을 먹으로 덧칠해 항일(抗日) 의지를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3·1 운동 때 태극기를 대량으로 찍어내는 데 사용된 널판으로, 크기는 가로 32㎝, 세로 30㎝, 두께 6.5㎝이다. 가운데 태극의 양방과 음방은 동-서 방향으로 얽혀 있고, 4괘는 네 모서리에 꽉 차게 음각되어 있다.

 

가장자리에는 너비 약 1.8㎝ 정도의 테두리가 있다. 인쇄용 판목이기 때문에 4괘의 위치 및 태극의 음방과 양방이 반대로 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강릉 선교장 소장 태극기 는 1900년대 초 강릉지역의 동진학교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한 태극기로 추정됩니다.

 

▼ 동덕여자의숙은 민간이 설립한 여성 교육기관이 드물었던 1908년에 개교하며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그러나 1910년에 국권이 피탈주1된 뒤에는 태극기를 나무 상자에 넣어 보관하였으며, 3 · 1운동 때에는 장독 밑에 묻는 등 간직해 오다가, 1945년 광복 후에 동덕여자고등학교 교정에 다시 게양하였다.

한국전쟁 때에는 당시 교장 조동식이 태극기를 옷 속에 꿰매 괴나리봇짐 속에 넣어 피난살이에서도 소중히 간직하였다. 이후 학교 행사와 의식 때에 사용하다 1977년 동덕여자대학으로 이전해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불원복(不遠復)’ 태극기는 조선 말기 의병장 고광순[1848~1907]이 사용한 태극기로, 1986년 고광순의 증손 고영준이 독립 기념관에 관리를 맡겼다. 

 

‘불원복(不遠復)’ 태극기는 세로 82㎝, 가로 128㎝의 크기로, 태극 문양의 양방은 홍색으로 박음질하였고, 음방과 4괘는 검은색 천을 잘라 박음질하였다.

 

태극기의 흰색 바탕 의 위쪽 가운데에는 붉은 색실로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뜻의 ‘불원복(不遠復)’이라는 글자를 수놓았다. 깃대 쪽에는 마직물로 된 고정용 끈이 세 군데 달려 있다.

 

1905년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전라남도 구례 일대에서 항일 운동을 벌이던 의병장 고광순은 ‘불원복(不遠復)’ 태극기를 만들어 의병 활동의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고 전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순헌황귀비 엄씨가 1906년 5월 설립한 명신여학교의 설립 초기 교사(校史) 자료인 태극기, 현판, 완문 3점의 유물이다. 

 

태극기는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라는 묵서와 함께 4괘와 태극문양을 틀을 사용하여 찍어내는 기법으로 제작하였다. 현판은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를 양각으로 새기고 네 가장자리에는 액틀을 붙였으며 채색으로 화초문(花草紋)과 운두문(雲頭紋)을 장식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데니 태극기는 개항기, 외교고문으로 왔던 미국인 데니가 보관하였던 한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이다. 조선 말 고종의 외교고문으로 활동한 미국인 데니가 소장하였다.

 

1981년 데니의 후손이 한국에 기증하였으며, 한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크기가 큰 태극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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