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미평리약사여래입상(龍仁彌坪里藥師如來立像)의 문화재자료의 자세한 설명 내용을 경기도문화재단에서 인용하였습니다.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미평리에 있는 화강암으로 만든 이 석불은 동네에서는 병의 치유를 기원하면 약을 준다고 하여 ‘의왕불(醫王佛)’로 불리며, 이 마을은 미륵불이 섰다고 하여 ‘미륵뜰’이라고 부르고 있다. 불상 앞에는 자연석으로 된 불단이 있고 불상의 주변에는 돌기둥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는 불상을 모시던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불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으나, 머리 위에는 자연석의 넓은 돌이 별도로 놓여져 있다. 소발(素髮)의 머리에는 육계(肉髻)가 있고, 상호(相好)는 이마의 중앙에 백호(白豪)가 표현되었다. 얼굴에는 눈꼬리가 길게 표현된 초승달 모양의 눈과 오똑한 코가 묘사되어 있다.
양 귀는 짧게 표현되었는데,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넓은 U자형의 주름이 흐르고 있다. 양 손은 가슴에 놓여 있는데, 왼손에는 물병같은 것을 들고 있다. 불상의 높이가 4.3m나 되는데 묻혀 있는 발목 이하 대좌까지 계산한다면 용인지역에서 가장 거대한 석불이라고 할 수 있다.
민머리 위에 넓적한 보개(寶蓋)를 얹은 불상 양식은 고려 시대 이래의 지방 석불 양식으로 긴 눈, 주먹코, 길게 다문 입, 달라붙은 큼직한 귀, 체격에 비해 빈약하게 처리된 팔과 손 등의 표현에서 지방의 토속적인 특징이 잘 나타난다. 보병(寶甁)을 잡은 손은 안성 대농리 석불입상과 더불어 이 지방 약사 석불상의 한 특징을 이룬다. 이 불상은 지방 장인의 미숙한 솜씨가 보이지만 거대한 석불 계통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하다._경기도문화재연구원
□ 명 칭 : 용인미평리약사여래입상(龍仁彌坪里藥師如來立像)
□ 소재지 :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미평리 66-19(문화재청 및 지방문화재 자료의 주소는 틀림)
□ 출토지 : 소재지와 동일
□ 분 류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44호
□ 시 대 : 고려시대
▼ 다음음 문화재청에서 자세한 설명을 인용하였습니다.
높이 4.3m로 미평리 마을 안에 모셔져 있는 석불상이다. 돌기둥 같은 신체에 머리에는 원형에 가까운 보개(寶蓋 ; 인도에서 귀인의 외출시에 사용하던 양산을 불상의 머리 위에 갓처럼 씌운 것)를 쓰고 있다.
발목 이하는 땅에 묻혀 있으며 불상 앞에는 자연석의 넓은 돌을 두어 불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민머리에 얕은 육계(肉髻; 상투 모양으로 솟은 붓다의 정수리, 붓다의 지혜를 상징)가 있고, 이마 중앙에는 백호(白毫; 흰 터럭이 말린 것으로 이곳에서 빛이 나온다고 함)가 표현되었다.
양 어깨에 걸쳐져 내려오는 법의는 가슴에서 넓은 ‘U’자형의 주름을 형성하면서 신체 하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른손은 손등을 바깥으로 하여 가슴 부근에 놓여 있으며, 왼손에는 정병(淨甁)을 들고 있다.
돌기둥 같은 신체에 옷 주름을 간략하게 표현하고, 머리 위에 보개를 얹는 등 고려 시대 전기에 충청도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유행한 불상 양식의 계보를 잇고 있는 석불상이다.
여기에 얼굴과 신체에 양감 표현이 거의 없고, 가로로 긴 눈, 두툼한 코, 일자로 다문 입, 크기에 비해 빈약하게 처리된 두 팔과 손의 표현 등에서 지방 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머리의 갓과 밋밋한 신체에 간략한 옷 주름과 양 손의 표현, 그리고 왼손에 들고 있는 보병 등에서 안성 대농리 석불입상과 매우 유사하여 이 지역에서 유행한 불상 양식을 전해주는 것으로 파악된다._문화재청
▼ 보기 드물게 거대한 불상이 들판에 세워져 있습니다. 세련되지 못하고, 좀 투박하게 보이지만, 왼손에 약병을 들고 있는 모습은 중생의 질병없는 생을 보살피는 모습으로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런데 표정도 없으시고, 머리도 약간 삐딱하게 ㅎ.ㅎ.ㅎ
약사여래상 주위에는 돌기둥을 세워 놓고 기다란 나무로 담을 친 흔적이 보입니다.
▼ 보개는 원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저기 깨진것이지 너무 작게 보입니다. 이마에는 백호(白豪)흔적이 보입니다. 제단은 막돌처럼 보이지만 정형으로 가공 한 것 보다는 더 정감이 가는 모양새 입니다. 약사여래상의 키가 작았다면 코는 아마도 민간신앙에 거의 남아 있지를 않았을 수 도 있을것입니다.
▼ 발고락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후대에 누군가 끼워 넣었은지 모르겠지만, 참 재미있어 보입니다.
▼ 상체는 지긋이 들판을 바라보는 의젓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 끝 -
'▣ 역사.문화재.사찰 > 경기지역 문화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인 공세리 오층석탑 (0) | 2022.01.06 |
---|---|
용인 두창리 삼층석탑과 선돌 (0) | 2022.01.05 |
용인 가창리 미륵입상(백암 용화사) (0) | 2022.01.03 |
용인 목신리 석조보살상(용인 원삼면) (0) | 2022.01.01 |
용인 목신리석조여래입상(용인 원삼면) (0) | 2021.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