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기흥저수지 동쪽(기흥휴게소 아래)의 공세리의 민가 안에 고려시대의 석불이 있습니다. 고속도로와 지방도로에 갇혀서 교통도 좋지 않은 마을의 한 민가에 있는 삼층석탑은 이곳이 예전에는 절터였었음을 알게 해 줍니다.
□ 명 칭 : 용인공세리오층석탑 (龍仁貢稅里五層石塔)
□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로81번길 48
□ 출토지 : 소재지와 동일
□ 분 류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42호
□ 시 대 : 고려시대
▼ 자료사진으로 보면 상륜부는 없어서 아무 부재나 얹어 놓은 모양인데, 지금은 보주 같은 부재가 얹혀 있습니다.
▼ 공세리오층석탑은 네비로 찾아 갈 수는 있지만, 길이 외길이고, 시민들의 산책길이어서 위험 하므로 다른 곳에 주차 하고 걸어서 가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 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 인용한 공세리오층석탑의 설명 내용입니다
기단(基壇)의 아랫부분은 표토에 의해 묻혀 있으나 표토 위로 노출된 부분만 놓고 볼 때 이중 기단의 정형성이 많이 흐트러진 고려 후기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표토 위로 일부 노출된 기단의 하대석(下臺石)에는 연꽃이 조각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4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진 기단의 면석은 마주보는 한 쌍의 면석이 결실되었다. 기단의 갑석(甲石)도 부연(浮椽) 표시가 없고 하단부가 경사지게 잘려 있어 부연을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 옥신(屋身)은 1층만 옥개석과 분리되어 있고 나머지 층은 옥개석과 옥신석을 하나의 돌로 다듬었다.
옥개(屋蓋)는 3단의 층급 받침이 있고 전체적으로 평박하며 옥개석의 처마 모서리[轉角]의 들림[反轉]이 경쾌하고, 처마가 많이 들려 있다. 기단 갑석의 탑신 괴임은 아예 생략이 되어 있으며, 각각의 옥개석에도 탑신 괴임의 흔적은 약하게 표현되어 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용인공세리오층석탑(龍仁貢稅里五層石塔)를 설명 하는 경기문화재연구원의 자료를 알아 보겠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옛 절터에 불상, 석등 하대석 등과 함께 보존되어 있는 높이 2.5m의 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있다. 기단부의 지대석은 16판의 연꽃(복련)으로 장식되었으며, 그 위로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조각한 4장의 판돌을 사방에 세워 만들었는데, 현재 마주보는 2장이 없어졌다.
탑신부의 몸돌은 1층에 비해 2층 몸돌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그 위층은 거의 줄지 않았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하나의 석재이고, 각 층의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다. 두툼한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위로 들려있어 날렵한 멋을 풍긴다.
기단의 맨윗돌이 탑의 전체 비례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규모로 되어 있지만, 지붕돌이 위층으로 갈수록 적절하게 줄어들어 안정감을 준다. 현재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다. 치석수법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_ 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갑석의 크기가 1층 옥개석 보다도 너무 작고, 1층 옥개석과 다른 옥개석을 비교해 보면 1층의 옥개석이 너무 크고 비례가 맞지 않습니다만, 2,3,4,5층의 옥개석은 비교적 균형이 잘 맞게 보입니다.
면석은 4개중 2개가 없이 버티고 있는데, 하중을 지탱해줄지 걱정스러운 모습이기는 합니다.
▼ 자세히 보면 1층을 제외한 2,3,4,5층의 탑신석과 옥개석은 일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 오층석탑 뒤로는 석조여래좌상이 보이는데, 불행이도 불두는 없습니다. 좌대는 안상에 복련이 있는 형태이지만 불상과는 서로 일치되지 않는 모습입니다. 민가 마당에 있는 불상이지만, 이 집의 주인도 불상과, 오층석탑도 같이 살아가시는 것을 보니, 아마도 배려가 있으신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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