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송림사 부도는 고려초기의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 양식을 이어받은 부도(浮屠)로서, 통일신라 말기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의 승탑으로 전해져 오지만, 탑신에 명문도 없고, 주위에 승탑비도 없기 때문에 도선국사의 승탑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부도(浮屠)의 모습은 통일신라 말기와 고려초기에 유행하던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이지만, 제작된 시기는 조선초기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 고려초기에 유행한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 부도(浮屠)로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2006 년)입니다.

 

▼ 송림사 입구에 여러 공덕비가 서 있고, 뒤에는 여러개의 송림사부도를 알리는 입간판들이 널브러져 있습니다만, 보기에는 좀 안 좋습니다.

 

▼ 송림사는 고려시대의 부도가 있고, 부도가 있는 지역 일대에서 고려와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편과 자기편이 확인되고 있어서 고려시대부터 이 일대에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태종실록』 1407년(태종 7) 12월 2일 기록에, 천태종에 속한 대흥현에 송림사가 있었다고 하였으므로 고려시대부터 송림사 있었으나, 조선 전기 이후 어느 때에 송림사가 폐찰되고, 현대에 와서 그 터에 새롭게 지금의 송림사가 들어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종각를 한번 둘러보았습니다.

 

▼ 화엄성종(華嚴聖鐘)이라고 하였고, 여러 시주자들의 이름들이 빼곡하며, 비천상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 상부에는 고려시대 동종처럼 음통이 달려 있습니다.

 

▼ 용이 굳세게 종을 바고 있습니다.

 

▼ 동종의 당좌(撞座)와 종을 치는 당목(撞木)을 보니 아주 오랫동안 종을 친 흔적이 보입니다. 아주 일찍 새벽 4시쯤 절에 들리면 혹시 종소리를 들을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 하대의 당초문양도 아름답고, 종소리의 울림을 오랬동안 유지하고, 종소리를 좋게 하기 위한 홈도 설치했는데, 한번 종소리를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 삼성각에서 남쪽으로 15미터 정도 위치에 부도 2기가 보이는데, 송림사 신도분들의 유골함인 듯합니다. 송림사 부도는 바로 옆에 있습니다.

 

▼ 이 송림사 부도(승탑)은 보기 드물게 완성도가 높고, 결실되거나, 훼손된 곳이 없이 거의 완벽한 보존상태를 보여 줍니다. 일반적인 승탑을 보면 상륜부가 깨지거나, 부분적으로 결실된 것을 볼 때가 있는데, 송림사의 부도(승탑)는 원형 그대로인 것으로 보입니다.

 

자료에서 보면,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만 해도 사지에는 부도 2기와 석탑 1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에 경찰이 보호라는 명목 아래 부도와 석탑을 경찰서로 옮겨 갔다고 합니다.

 

이후 한 승려가 사지에 조그만 사찰을 짓고 명맥을 이어 나갔고 해방이 되자 경찰서에 남아 있던 부도 1기를 사지로 다시 옮겨 왔다고 하는데 그 부도가 지금의 부도인 것으로 보입니다.

 

나머지 부도 1기와 석탑은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 안내판의 글자가 거의 안 보여서 옮겨 보았습니다

예산_송림사 부도(松林寺 浮屠)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송림사 부도는 송림사에 있는 고려 시대 승탑이다. 

승탑은 돌아가신 스님의 유골을 모신 탑이다. 

일반적으로 덕망이 높은 스님이 돌아가시면 그를 따르는 제자와 신도들이 부도와 함께 탑비*를 세운다.

송림사 극락전 동쪽에 있는 이 부도는 고려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통일신라 말의 도선국사를 모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이를 입증할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2.4m의 부도는 신라와 고려 시대에 유행한 양식인 팔각원당형**을 잘 갖추고 있다.

팔각형 기단 위에 놓인 원통형 중대석***에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엉켜 있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새겨 놓았다.

이와 함께 지붕돌의 지붕 끝에는 꽃 모양의 기와 장식을 올려놓아 우수한 석공의 기교를 잘 표현하였다.

*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
** 탑의 기단부터 탑몸, 지붕돌이 팔각형으로 이루어진 모양. 
*** 상대석과 하대석을 연결하는 기둥 모양의 가운뎃돌.

 

▼ 송림사 부도는 높이가 2.4m 정도 이고, 재질은 화강암이며, 팔각의 지댓돌 위에 상대, 중대, 하대를 완벽하게 갖추었으며, 옥신과 옥개를 갖춘 탑신부 등을 볼 때 전통적인 팔각원당형 부도 형식의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탑신부에는 희미하게 문고리가 보이고, 중대석에는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그림이 양각되어 있으며 . 상륜부에는 복발, 옥개, 노반에 보주를 올려놓았습니다.

 

▼ 안내판은 잘 만들었습니다. 승탑의 구조에 대해서 알기 쉽게 잘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만, 틀린 부분이 있어서 고쳐 놓았습니다. 화사부(화사석)는 부도(승탑)에 쓰이는 용어가 아니고 석등에 쓰이는 용어입니다.

 

▼ 전문적이고 상세한 내용을 인용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산 송림사 부도 (禮山 松林寺 浮屠)
기단부는 지대석-하대석-중대석-상대석으로 결구되었는데, 모두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지대석은 팔각형이며, 하대석은 면석부에 안상(眼象)을 새기고, 그 안에 문양을 추가로 장식하였다.

하대석의 안상 안에는 구름이 뒤엉킨 형상과 연주문 등 다양한 문양들이 표현되어 장인의 기교가 엿보인다.

하대석 상부에는 16엽의 연화문이 장식되었는데, 연화문 외곽에 돋을대를 마련하였으며, 연잎이 날카롭고 길쭉하게 표현되어 특징적이다.

중대석은 구름과 용이 함께 뒤엉켜 있는 운룡문석(雲龍紋石)으로, 모서리에 각을 주어 팔각형의 평면이 유지되도록 하였다.

중대석 앞면에는 2마리 용이 서기(瑞氣)를 내뿜으며 마주보고 여의주를 받치고 있는 형상이, 뒷면에는 2마리 용이 각각 서기를 길게 내뿜으며 마주보고 있는 형상이 표현되어 있다.

상대석은 하부에 각형(角形) 2단의 낮은 받침을 마련하고, 그 위에 16엽 연화문을 장식하였는데 하대석과 동일한 기법으로 되어 있다.

상대석 상면에는 낮은 2단의 탑신석 괴임을 마련하고 그 위에 탑신석을 올렸다.

탑신석은 각 면에 우주(隅柱)를 세워 사각형으로 구획하였는데, 앞면과 뒷면에만 용두(龍頭)가 새겨진 자물쇠를 표현하였다.

옥개석은 하부에 2단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부 합각부에는 길게 사래를 표현하였다. 낙수면은 완만한 경사를 보이며, 합각부에는 굵고 높은 마루부가 표현되어 있다. 마루 끝에는 귀꽃을 높게 돌출시켜 장식적인 기교와 함께 우수한 석공의 기술을 보여 준다.

상륜부는 받침석-보개석-보주석 등이 차례대로 올려져 있다. 이 중 보주석은 규모와 치석 수법 등으로 보아 원래의 부재가 아니라 다른 석조물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 한국민족대백과사전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상륜부를 보면 거의 완벽한 상태를 보여 줍니다. 다만 보개의 귀꽃이 떨어져 나간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승탑에서는 귀꽃이 완벽하게 남아 있는 승탑은 별로 없습니다.

 

▼ 옥개석의 귀꽃을 시멘트로 접합하였습니다만, 워낙 마모가 심한 상태입니다.

 

▼ 승탑의 재질을 보면 납이 많이 들어 있는 좀 무른돌처럼 보입니다.

 

▼ 운룡문석으로 된 중대석을 보면 두마리의 용이 구름 속에서 여의주를 물고 있는 듯한 모습인데, 대체적으로 간략하게 표현하였습니다.

 

고려시대에 건립된 고달사지 부도, 고달사 원종대사 혜진탑, 흥법사 진공대사탑 등과 양식적으로 아주 비슷하게 제작되었습니다만, 작품성으로 보면 좀 낮아 보입니다

 

▼ 참고로 송림사 승탑(좌)과 고달사지 승탑(우)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 승탑에서 보는 송림사이며, 아주 조용한 절집이었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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