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의 예당저수지 근처에 있는 쌍지암(雙池蓭)에 조선초기(세조)에 새워진 마애미륵불이 있습니다. 이 마륵불은 원래 광시면 장신리에 있었으나, 쌍지암 주지스님의 노력과 장신리 주민들의 어려운 결정으로 2019년 (5월 5일)에  쌍지암으로 옮겨져 잘 보존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장신리 미륵불이라고 하였지만, 쌍지암으로 옮긴 후에는 쌍지암 마애불입상이라고 합니다


▼ 쌍지암의 오른쪽에 웬 멋진 한옥이 있는데, 어느 분이 참 멋지게 지었구나!,  생각하고 현판을 보니 향적당(香積堂)이라고 걸려 있는 것을 보니, 쌍지암에 딸린 별채로 보입니다.

 

▼ 쌍지암은 예당저수지가 있는 광시면의 남쪽 백월산자락에 있습니다만, 백월산 자락에 두 개의 저수지, 살목지와 보강지가 있어서 쌍지암(雙池蓭)이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 쌍지암은 원래 백월암(白月蓭)이라고 하였으나, 지금의 주지스님께서 인수하여 새로 절집을 짓고 쌍지암이라고 개명하였다고 합니다.

 

무량수전(無量壽殿)은 엄청 잘 지었습니다. 쌍지암은 요사채, 무량수전, 산신각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무량수전의 왼쪽에 장신리 마래미륵불과 작은 삼충석탑이 보입니다.

 

▼ 쌍지암에 있는 이 장신리 마애불입상은 오랳동안 사연이 많은 마애미륵불입니다

 

표지판에서 보면 2019년 5월 5일에 이 쌍지암으로 이전되어 왔다고 하는데, 이 마애불은 원래 광시면 장신리 신흥천 옆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거의 500여 년을 마을 사람들과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같이했던 미륵불이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의 정신적인 미륵불이었지만, 문화재로 등록이 되지 않은 미륵불이어서 제대로 된 관리조차 받기 어려워 거의 방치되다시피한, 미륵불을 쌍지암으로 옮기려 하였을 때, 마을사람들의 반대가 심하였다고 합니다.

 

쌍지암의 미륵불에 대한 걱정과, 마을 수호신으로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는 미륵불이 옮겨 가는것에 대한 반대도 다 이해가 갑니다만, 만약 이 장신리미륵불이 문화재에 등록 되어 최소한의 보존관리라도 받았다면, 굳이 쌍지암으로 옮겨가지 않았을 것인데, 아쉽게 생각합니다.

 

▼ 예산 광시면 장신리에 있었던 미륵불의 위치를 찾아 보았습니다. 신흥천 옆 야산 끝머리에 있었습니다. 미륵의 땅 내포에는 마을마다 미륵불이 있었을 정도로 미륵이 많았는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작품성이 뛰어난 미륵불이 아니고서는 문화재에 등록되기가 싶지 않은 듯합니다.

 

▼ 예산 장신리 미륵불(禮山 長信里 彌勒佛)은 조선 세조 11년(1465)에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장신리(長信里)의 관민들이 제작한 600년 전 한국의 석각미륵불이며, 쌍지암으로 옮겨지기 전의 자료사진입니다.

 

▼ 어찌되었던간에 마애미륵불은 2019년(5월 5일)에 쌍지암으로 옮겨져 왔습니다. 무량수전옆에 마애미륵불이 안치되어 있는 모습이며, 작은 삼층석탑과 잘 어울립니다.

 

▼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오고부터는 국가차원에서 불교를 받들고, 사찰이나, 불상들의 조성에 많은 후원을 하였으나, 점차 지방의 호족들이나, 부지들에 의해서도 사찰이 세워지거나,  불상이 만들어지기도 하였습니다.

 

민초들도 점차 구원의 대상을 찾았으니, 국가나 권력자, 부자들이 떠 받드는 부처님이 아닌 구원자를 미륵이라 하고 마을마다 수호신처럼 미륵불을 만들어 세우기 시작하였으니, 지금도 마을마다 자신들과 오랬 동안 함께한, 미륵불은 그들만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수호신인 것입니다.

 

즉 절에 가지 않아도 마을 어귀에 있어서 언제던지, 아무 때나 만나서 이런저런 소원을 빌고, 길흉화복을 빌던 마을의 수호신이자, 든든한 마음의 어른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음 편하게 뵐 수 있는 부처님이 미륵불인 것입니다

장신리 마애미륵불의 전설
이 미륵바위에는 아래의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먼 옛날에는 바닷물이 마을까지 들어 왔는데 마을에 살던 어부가 배를 타고 나갔다가 결국 돌아오지 않자, 어부의 부인이 남편을 기다리며 서 있다가 결국 돌이 되었다

 

장신리 마애미륵불
세로 257㎝, 가로 170㎝의 바위에 음각하여 만든 것으로 불상의 크기는 높이 180㎝, 폭 65㎝이다. 

불상의 상부에는 *나발(螺髮)과 *육계(肉髻)를 표현하고 비교적 완만하고 관능적인 상호를 하고 있다. 

이마에는 *백호(白毫)가 있다. 눈은 반쯤 뜨고 있으며 코는 양각되었고 두툼한 볼에 얇은 입술로 표현되어 있다. 

목에는 삼도가 음각되어 있으며 수인은 가슴 앞으로 합장을 하고 있다

불상옆에 ‘성화 원년(成化元年)’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성화 원년은 조선 세조 11년인 1465년이다. 마모가 심해 확인이 쉽지 않다.


*나발(螺髮) : 불상의 머리카락이 오른쪽으로 꼬불꼬불한 나선형 모양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
*육계(肉髻) : 불상의 정수리에 있는 상투모양으로 두드러진 혹 같은 모습
*백호(白毫) : 불상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털로서 보통 보석으로 표현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미륵불의 상호(얼굴)을 보면, 마모가 심하기는 해도 어느 정도는 알 아 볼 수가 있는 목에 삼도가 뚜렷하게 보이고 입술은 자그맣게 표현을 하였으며, 다행히 코는 훼손되지 않았습니다.

 

이마 중간에 백호를 표현하며 보석을 박았던 홈이 보이며, 나발의 표현도 보입니다만, 나발에 있는 커다란 홈은 무슨 뜻이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 장신리 미륵불의 오른쪽에  '성화 원년(成化元年)'이라는 글귀가 있어서 조선 세조 11년(1465)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는데,  오랜 세월에 풍화되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번 갈린 흔적도 있고, 불상과 글자의 마모가 상당히 심해서 쉽게 알아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명문은 여러 글자가 있는데,  판독에 따르면 세조 11년(1465년)에 관의 지원 하에 마을의 승려들과 백성들이 힘을 모아 만들었으며, 마을의 수호와 안녕, 서로의 화목을 위해 조성하였다고 각서(刻書)되어 있다고 합니다.

 

※ 성화 원년(成化元年)은 명나라 헌종때 연호입니다.


 

▼ 마애불입상 앞에는 작은 석탑이 보이는데, 아무래도 뭔가 좀 이상하게 보입니다

 

▼ 보기에는 조선시대 양식으로 만든 탑처럼 보이는데, 아무래도 덮개돌(갑석)이 없이 옥개석만 4개가 쌓여 있고, 지대석과 면석만 올바르고 나머지는 전부 이것저것 조합해 만든 것처럼 보입니다.

 

▼ 면석에도 우주나 탱주가 없는 것을 보면 원래의 탑신재료가 아닌것으로 보입니다

 

▼ 무량수전앞에 석탑은 옛 하대석 위에 고려시대 양식으로 삼층석탑이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석탑은 대략 이와 비슷합니다.

 

▼ 스님의 눈썰미가 돋보이는 자연석의 석가여래좌상입니다.ㅎ.ㅎ

 

▼ 바람이 부는날 처마에 매달린 풍경 소리는 듣기 참 좋습니다

 

▼ 보살님께서 챙겨 주신 떡이랑 사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마침 배가 출출했었거든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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