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군의 중심부에는 관풍헌(觀風軒)과 자규루(子規樓)가 있습니다. 관풍헌은 본래 영월 객사의 동헌 건물로서 태조 1년에 건립되었을 만큼 유서 깊은 건물이었습니다.
단종이 청령포에 유배되어 있다가 홍수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 생활한 곳으로 단종은 이곳에서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현재는 조계종 보덕사에서 포교당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규루는 관풍헌의 동쪽에 있습니다. 단종이 관풍헌에 머물 때 자규루에 자주 올라와 자규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1428(세종 10) 군수 신권근에 의해 지어져 매죽루라 불렸으나 단종의 자규시가 너무 슬퍼 자규루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이후 퇴락하여 민가가 들어섰는데 1791(정조 15년)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이 이곳에서 터를 발견하여 다시 복원하였습니다.
<<< 관풍헌과 자규루의 자료는 영월군의 관광용 자료와 홈페이지에서 인용 하였습니다 >>>
▼ 관풍헌을 찾았던 날은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관풍헌의 정문은 관풍문이라고 한다는데, 문의 이름이 걸려 있지는 않았습니다.
▼ 단종이 청령포의 홍수를 피해서 관풍헌에 머물때 영주에 머물던 금성대군이 지척에 있던 영월에서 단종의 왕위 복위 움직임이 세조에 의해 발각되어 금성대군도 죽임를 당하고 단종도 사약을 받고, 여기 관풍헌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관풍헌은 보기 드문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 정면에는 약사전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원래 관풍헌의 현판이 걸려있었던 곳으로 추정이 됩니다. 옛날 객사였던 관풍헌이 어떻게 절의 건물로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조계종 보덕사의 소유라고 합니다. 보덕사는 단종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던 원찰이었습니다.
▼ 관풍헌의 소유는 보덕사이지만, 문화재 관리주체는 영월군청이랍니다. 무슨 공사인지는 모르겠으나, 온전한 마무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조선시대때의 관풍헌의 건물 배치그림입니다. 지금의 관풍헌에 비하면 무척 넓은 객사였습니다(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 관풍헌의 동쪽에는 자규루라는 정자가 있는데, 단종이 이곳에 올라서 자규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잠시 시를 옯겨 보겠습니다.
자규시(子規詩)
一自寃禽出帝宮(일자금원출제궁) :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을 떠난 뒤로
孤身隻影碧山中(고신척영벽산중) :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가 푸른 산속을 헤맨다
假眠夜夜眼無假(가면야야면무가) :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못 이루고
窮恨年年恨不窮(궁한년년한불궁) :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聲斷曉岑殘月白(성단효잠잔월백) : 두견 소리 끊어진 새벽 멧부리에 지새는 달빛만 희고
血流春谷落花紅(혈류춘곡낙화홍) : 피를 뿌린 듯한 봄 골짜기에 지는 꽃만 붉구나
天聾尙未聞哀訴 (천롱상미문애소) : 하늘은 귀머거린가? 애달픈 하소연 어이 듣지 못하는지
何乃愁人耳獨聰 (하내수인이독청) : 어찌하여 수심 많은 이 사람의 귀만 홀로 밝은고
자규사 (子規詞)
月白夜蜀魂湫(월백야촉혼추) : 달 밝은 방 소쩍새 슬피우니
含愁情倚樓頭 (함수정의루두) : 시름 못 잊어 자규루에 기대었네
爾啼悲我聞苦 (이제비아문고) : 네 울음 소리 내 듣기 괴롭구나
無爾聲無我愁 (무이성무아수) : 그 소리 없으면 내 시름도 없을 것을
寄語世上苦勞人(기어세상고로인) : 세상의 괴로운 이들에게 내 말을 전하노니
愼莫登春三月子規樓(신막등춘삼월자규루) : 춘삼월 자류구에 오르지 마오
▼ 자규(子規)의 우리말 이름은 소쩍새입니다.
▼ 원래는 1428(세종 10) 군수 신권근에 의해 지어져 매죽루라 불렸으나 단종의 자규시가 너무 슬퍼 자규루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 자규루의 원래 이름은 매죽루였습니다
▼ 관풍헌과 매죽루를 보고 나오는 길에 담아 보았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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