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1박2일로 양양의 낙산사에 여행을 다녀왔다. 낙산사가 있는  낙산도립공원은 면적이 9.1㎢.이며 1979년 6월 22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낙산사와 낙산해수욕장이 공원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남쪽으로 하조대가 있고 북쪽으로는 설악해수욕장과 정암해수욕장이 자리잡고 있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지역이다.

 

낙산도립공원은 설악산국립공원과 오대산국립공원 및 강릉 부근의 경승지를 연결하는 중간 지역에 위치하여 이들과 함께 동해안 관광권을 형성한다. 인제 ·강릉 경유의 국도가 포장되었고 노면이 확장되어 교통도 편리하다.

 

의상대는 약 1,300년 전에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창건할 때 세운 정자이다

671년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낙산사”와 낙산사 창건 당시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한 해안 암벽 위에 설치하였다는 “의상대와 홍련암은 바닷가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 노송(老松)들이 자리하고 있어 동해안의 아름다운 해안 절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떠오르는 일출 경관으로 유명하여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다.

 

▼ 낙산사 홈페이지에 있는 "낙산사 안내도" 이며 포털의 지도검색에 나오는 모양과 비슷하다. 대략적으로 2시간이면 돌아볼수 있지만 모처럼 산사에 와서 색다른 분위기를 즐기면서 유유작작 무념무상에 한번 빠져보는것도 조금도 손해보는 일이 아닐것이다.

▼ 아침에 일어나서 모델의 창가에서 바라보는 낙산비치유스호텔 방향의 해변에는 며칠전 내린 눈이 해변 모래밭에 그대로 쌓여 있고 보이는 그대로 겨울바다 냄새가 가득 하다.

 

▼ 전진항의 활어회센타 방향으로 들어서니 다리 난간이 물고기 형상으로 장식을 해 놓았는데 아주 오래전에 왔을때 보다는 주변이 세련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 활어회 센타 에서 바라본 모텔과 식당가들이 밀집해 있는 상가의 모습인데, 겨울철이라서 그런지 모텔의 방값는 그다지 비싸지 않게 받는다(해변쪽 4만원, 반대쪽 3만원),하지만 횟집은 수도권 보다는 아주 많이 비싸다, 둘이서 20만원정도 한다.

 

▼ 전진항은 관광객들이 회맛을 즐기기 위해서 많이 찾는곳인데 오래전에 기억의 의하면 지금 보다는 건물도 없었고 주민들이 좌판을 벌려놓고 멍개,해삼,게등을 팔던곳이었는데 너무 많이 변했다.

 

▼ 방파제에서 낙산사쪽을 바라보니 해수관음상과 의상대, 홍련암이 차례로 보인다. 2005년 4월 5일 이전에는 나무가 울창해서 해수관음상이나, 의상대가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주 잘보인다, 하지만 웬지 허전허다.

 

양양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은 송강 정철(1536~1593)의 <관동별곡>에 소개된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로 동해 일출경으로 매우 유명한 곳이다.

 

대형산불(2005년4월5일)이전에는 크고 작은 소나무가 제법 많이 있었는데 정자를 개축하면서 화마에 그슬린 소나무는 정리하고 남은 두그루의 소나무만 남아서 의상대의 고고한 자태를 더 뽐내주는듯 하다

 

▼ 낙산비치 방향에서 들어가는 진입로 인데 예전에는 별 생각없이 드나들었는데 여기가 후문이라는것을 이날 처음 알았다. 정문은 일주문이 있는 곳으로 서쪽 방향에 있으며 유스호텔의 뒷쪽에 정문이 있다.

 

특별히 눈에 띄는 문구가 있는데, 1년동안 무료입장이란다. 아마도 화재로 인한 복구사업에 국민성금이라는 돈이 들어갔는데 이에 보답하는 의미로 무료입장 방침을 정한것으로 보인다. 또 자판기의 커피도 무료란다.

 

▼ 왼쪽은 의상박물관, 오른쪽은 다래원인데 기념품과 전통차를 팔고 있으며 한잔에 5000원씩 한다. 다래원의 분위는 조용한데 차도 마시고 책(길에서 길을 묻다)도 보면서 산사의 분위기를 느껴보는것도 좋을것이다.

 

▼ 다래원쪽의 소나무는 그나마 화마를 피했는지 우아한 자태를 보여주니 참으로 보기 좋다.

 

▼ 소나무 밑에는 생소한 문구가 새겨진 반듯한 돌이 놓여져 있고 그 뜻을 알듯 말듯 한데 자꾸 생각이 난다  "길에서 길을 묻다"  ... 무슨 말이지???

 

▼ 보타전 방향의 모습이며 산등선에는 아예 나무가 보이지 않으니 화마가 싹 쓸어버린 모습은 참혹했으리라...

 

▼ 가까이서 보는 의상대이며, 지금의 의상대는 해체하여 복원한 상태이며 마당도 넓혀졌다.

 

▼ 편액의 글씨도 커졌다

 

▼ 낙산사의 모태가 되었다는 홍련암입니다.이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본절인 낙산사를 창건하기 앞서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한 장소로서, 또한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석굴 안에서 기도하던 바로 그 장소로서 낙산사의 모태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한편 또다른 창건설화로서는,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한 자리에 대나무가 솟았는데, 그 곳에 불전(佛殿)을 지으니 곧 홍련암이라고도 전한다

 

의상대사가 홍련 속의 관음보살을 친견하여 설치한 “홍련암” 등 낙산사의 곳곳에 의상대사와 관련한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전해지는 이야기)

낙산사와 홍련암이 창건된 때는 671년(신라 문무왕 11년)으로 창건주는 신라 화엄종의 초조인 의상대사(625~702)이다. 창건연기는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 제3권 "낙산이대성 관음·정취·조신"조에 소상하게 기록돼 있다.

 

이에 따르면 당나라에서 돌아온 의상대사는 곧바로 낙산의 해변을 찾는다. 관세음보살의 진신이 해변의 굴 안에 상주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동해에 간 스님은 재계한 지 7일만에 좌구를 물 속에 띄웠더니, 천룡 등 팔부신중이 관음굴 속으로 스님을 인도했다.

 

굴속에서 공중을 향해 예배하자 수정염주 한 꾸러미를 내주므로 받아 가지고 물러 나왔다. 동해용으로부터 여의주 한 알을 받았지만 관세음보살의 진신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7일 동안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정진하자 마침내 바다에서 붉은 연꽃이 솟아나고, 그 꽃 속에서 관세음보살이 현신하여 말했다. "좌상의 꼭대기에 한 쌍의 대가 솟아날 것이다.

 

그 땅에 불전을 짓는 것이 마땅하리라." 스님은 그 말을 듣고 나오니 과연 대가 땅에서 솟아 나왔다. 스님은 대가 솟은 곳에 낙산사를 짓고 관음상을 만들어 모시고 수정염주와 여의주를 봉안했다.

 

▼ 홍련암에서 바라본 의상대이며 일출사진을 찍기에는 이만한 장소가 없을듯 하다. 역광으로 찍었는데 의상대의 고고한 모습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 새로 만들어진 약사불과 홍련암 비구니들의 거처인 요사채 연하당(蓮河堂)

 

▼ 앞에 보이는 건물은 보타루이며 뒤에는 보타전

 

▼ 원통보전으로 가는길에 내려다본 다래원과 앞의 신축건물인 해우소

 

▼ 저 멀리 보이는 해수 관음상

 

▼ 노송도 해수관음상에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춘다

 

▼ 홍예문이 있는 이쪽이 정문인것을 이날 알았다. 그럼 그렇지 일주문이 없을수는 없는데 어쩌다 못보고 왔다.

 

▼ 흔히 있는 사천왕문

 

▼ 동종과 북이 있는 종루이며 현재의 동종은 산불화재로 녹아내린것을 2006년에 복원하였다.

 

원통보전으로 향하는 길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빈일루(賓日樓)는 ‘해를 맞이하는 누각’이란 뜻을 지닌 건물로, 총무원장 지관스님께서 친필로 현판을 써주셨다고 한다.

 

▼ 보타전과 해수관음상이며, 해수관음상으로 가는 길이 넓어지고 포장이 되어 있는것으로 보니 소빙차가 진입할수있는 길로 만든것 같다.

 

▼ 원통보전 쯤에서 바라보는 해수관음상

 

▼ 여기서 원통보전 옆길을 통해서 해수관음상으로 가는길을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라는데 주지인 정념스님이 지으신 길의 이름인데 대형산불로 절이 거의 불에 타버린 후 복원공사를 진행하면서 명명하신것으로 보인다.

 

▼ 빈일루의 2층 누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손잡이, 굽어진 나무면 굽어진대로, 생긴 그대로...

 

▼ 응향각이라는 건물인데 안쪽 기둥에 덧살을 댓는데 산사에서는 처음 보는 방식이라서 그런지 웬지 중국풍의 냄새가 난다.

 

원통보전은 높다란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앞에서 볼때 상당히 위압적으로 보인다

 

▼ 원통보전 앞의 거축물들에 대한 안내가 없어서 무슨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복원된 건물이다.

 

▼ 저 멀리로는 설악산의 대청봉이 듬직하게 보인다.

 

▼ 원통보전은 낙산사의 중심법당으로서 낙산사가 관음성지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원통보전원통전(圓通殿), 혹은 관음전(觀音殿)으로도 불리며,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봉안한다.

 

원통보전 앞에 세워진 조선시대 석탑으로서 현재 보물 제499호로 지정되어 있다. 낙산사는 조선 세조 대 (재위,1455∼1468)에 중창되었는데 이 탑도 그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한국전쟁 당시 손상되었으나 1953년 4월 이형근 장군이 낙산사를 중건할 때 함께 재건되었다. 현재 탑의 크기는 전체 높이 620㎝이다.

 

▼ 꿈이 이루어지는길이며 이 길은 해수관음상으로 이어진다

 

▼ 해수관음상 모습들인데 높다란 봉이 피뢰침인지 불분명하지만 사진에서는 보기가 좋지 않다.

 

▼ 꿈이 이루어지는길의 끝에는 해수관음상이 자애로운 모습으로 중생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 해수관음상이 있는 쪽의 능선을 따라서 좀 높은 곳에 가서 설악산의 대청봉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대형산불로 잿더미가 되어버린 앝으막한 산야를 보니 그 당시의 산불의 규모가 느껴진다.

 

▼ 정암해수욕장 저 끝으로는 물치항

 

▼ 백두대간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봤다.

 

▼ 해수관음상은 약사불인데 중생들의 아픔을 헤아리시고 그 병을 치유해주시기를 바라나이다.

 

▼ 설악산을 배경으로...

 

▼ 해수관음상 아래에 있는 해수관음전인데 여기는 꼭 한번 들려봐야 한다. 왜냐 하면 이 법당에는 흔히 있는 불상이 없다.

 

▼ 불상이 없는 해수관음전에는 덩그러니 불전함만이 있지만 법당안에 들어서면 또 다른 부처님 세상을 만나게된다.

 

▼ 해수관음전 앞레서 바라보는 의상대

 

▼ 복원된 원통불전과 부속건물들

 

▼ 보타전은 배산임수의 지형 덕으로 지난 2005년 대형 산불에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현재 보타전 앞에는 누각 형태의 보타락이 있으며, 그 앞에는 큰 연못이 자리잡고 있다.

 

▼ 또 다시 길에서 길을 묻다.

 

▼ 낙산사 복원후에 시작된 무료국수공양실인데 이날은 공양이 없었는지 한가하다.

 

 낙산비치유스호텔에서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 앞에 펼쳐져 보이는 낙산해수욕장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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