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군의 임진강에 있는 고구려군의 진지(陣地)였던 호로고루(瓠蘆古壘;호로하에 있는 오래된 보루)를 알아보겠습니다. 고구려가 한탄강과 임진강가에 십여 개의 성을 쌓았다는데, 현재까지 발굴조사를 해서 일반에 공개된 고구려의 성은, 연천의 은대리성과 당포성,  그리고 호로고루뿐 입니다.

 

나머지는 위치가 확인이 안되었거나, 또는 민통선 내부에 있어서, 발굴조사가 어렵고 또한 일반인에게 공개하기가 어려운 사정이 있는 성들입니다.

 

연천지역은 삼국시대에도 물고 물리는 전쟁터였고, 한국전쟁때도 중공군과 한국군,유엔군의 격전지로, 지금도 언제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지역입니다.

 

※ 인용된 자료사진은 문화재청, 경기문화재연구원, 연천군청등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호로고루는 이제 관광지가 돼서 홍보관이 생겼습니다. 홍보관 앞의 비는 광개토대왕비의 모조비입니다

 

▼ [자료사진_조선고적도보] 현재 중국의 길림성 집안시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의 사진입니다.(1910년대에 일본인들이 찍었으며, 호태왕비로 소개하였습니다)

 

▼ [자료사진_조선고적도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를 중국인들은 이제 거리낌 없이 자기들의 역사라고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 호로고루의 위치를 나타내는 관광지도입니다. 남방한계선과도 가깝고, 경순왕릉은 차로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 호로고루의 모양은 기다란 삼각형으로 마치 피자 조각 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호로고루는 삼국시대에는 삼국통일을 위한 격전지였습니다. 고구려와 당나라군과 전투로 고구려가 망한 후에, 신라는 당나라군과의 전투를 이 호로고루에서 벌였으며. 당군이 신라와의 전투에서 패한 매소성은 연천의 대전리산성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연천의 고구려 3 대성을 비교해 본 사진입니다. 연천 은대리성, 연천 당포성, 연천 호로고루 모두 큰 강가의 높은 평지에 가로질러서 성을 쌓은 방식은 모두 똑같습니다

 

[자료사진_문화재청] 하늘에서 보면 호로고루의 특징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용암의 만들어 준 수직 단애의 절벽과 물의 흐름이 완만한 여울목 지점에서 적군이 말을 타고 강을 건넌다면 감시하기 좋은 지형을 갖추고 있습니다.  삼각형의 꼭짓점 방향은 옛날의 고랑포였습니다

 

▼ 지금은 보리밭(밀밭?)이지만 가을에는 해바라기 밭이 된답니다.

 

[자료사진_문화재청)

 

▼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어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아늑하게 만들어진 곳입니다.

 

▼ 삼족오(三足烏)인데, 돌로 만들어서 현실감이 좀 떨어집니다. 차라리 세밀하게 청동으로 만들면 좋았을 것을 그랬습니다.

 

▼ 넓은 밭 저 멀리로 높다란 성벽(동벽)이 보입니다. 진지는 저 성벽 너머에 있었습니다

 

▼ [자료사진_문화재청)

 

▼ [자료사진_경기문화재연구원] 옆에서 올려다보는 성벽은 꽤나 높아 보입니다. 성벽은 원래 돌로 쌓았지만, 지금은 성체 보호를 위하여 흙으로 덮혀 있습니다

 

▼ 은대리성이나, 당포성에는 안 보이던 돌출된 치성이 있습니다. 고구려군은 성벽 아래에 보축성벽을 쌓았으며, 그 아래의 2중으로 보이는 치는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고 나당전쟁에서 승리한 신라군이 점령했을 때 추가로 쌓은 치성입니다. 

 

성돌을 보면 색갈이 틀리게 보이는데, 고구려군은 현무암을 다듬어서 쌓았으며, 신라군은 현무암이 아닌 편마암으로 쌓았습니다, 현무암은 다루기가 어렵고, 편마암은 가공성이 좋다고 합니다.

 

▼ 안내판을 잘 보면 대부분의 자료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 [자료사진_문화재청] 성벽의 발굴조사 모습입니다. 성돌을 아주 촘촘하게 쌓았습니다.

 

▼ 동벽의 남쪽 치성에서 보는 동벽의 치성입니다.

 

▼ [자료사진_연천군청] 동벽의 남쪽 치성과 출입구가 보입니다. 호로고루의 유일한 통로였으며, 6.25때는 인민군의 포병부대 진입으로 남쪽치성이 훼손되었다가, 주민들이 성벽에 숨어있던 뱀들을 잡는다고 중장비로 성벽을 훼손하면서 흙속에 묻혀 있던 성벽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1991년 문화재연구소가 지표조사를 통하여 고구려 유적지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 호로고루 끝에서 바라보는 동벽의 모습입니다. 높이가 10m이고, 폭은 40m, 길이가 90m입니다

▼ [자료사진_문화유산채널] 예전의 모습이며, 지금은 성체로 올라가는 길이 추가로 생겼습니다

 

▼ 건물지의 발굴조사 모습이며, 현재는 보존하기 위해서 흙으로 덮여 있습니다. 

 

호로고루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를 비롯하여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고구려 기와류이다.

 

또한 고구려의 생활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물로는 절풍이라고 하는 고구려 관모의 실질적인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유추할 수 있는 토제 모형이 출토되었으며, 고구려 도량형을 이해할 수 있는 저울추와 도침, 삼족벼루, 도침형태의 토제품 등 지금까지 출토 예가 없는 다양한 유물자료를 확보하였다.

 

창고시설에서는 쌀, 콩, 조 등의 탄화곡물과 소, 말, 사슴, 개, 멧돼지 등 다양한 동물 뼈가 수습되었으며 금속유물로는 화살촉과 도자류, 금동불상 등이 출토되었다._연천군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호로고루는 1991년 문화재 연구소가 실시한 군사보호구역내의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통하여 고구려유적임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1998년 토지박물관에 의하여 다시 정밀지표조사가 이루어졌고, 2001년 동벽을 중심으로 한 1차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2005년에는 성 내부에 대한 전면 시굴 및 건물터에 대한 2차 발굴조사가 실시되었으며, 2009년에는 지하식 벽체 건물터를 중심으로 한 성 내부의 동쪽 부분에 대한 3차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호로고루는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2000년 경기도기념물 제174호로 지정되었고, 2006년 1월 2일자로 사적 제467호로 지정되었다._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자료사진_e뮤지엄] 일제강점기 때의 호로고루의 내부

 

▼ 호로고루의 끝부분입니다. 망향단이 개성 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 [자료사진_한국관광공사] 옛날에는 개성이나 서울로 들어가는 길은 고랑포구를 거쳐서 가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랑포구는 서해의 수산물이나, 서울의 문물들이 배에 실려서 모이던 곳이고 교환되는 곳으로써 무척 번창했다고 합니다. 특이한 것은 화산백화점이 있었습니다.

 

▼ 동벽 위에 올라서면 무척 높게 느껴집니다.

 

▼ 남쪽으로 보면 강가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자료사진_e뮤지엄] 호로고루 동벽 위에서 남쪽으로 보는 모습입니다.

 

▼ 동벽 밖으로 보는 모습입니다.

 

▼ 서쪽으로 보면 지명만 남은 고랑포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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