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지역의 문화재를 거의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신륵사의 불교문화재를 보러 갔습니다. 신륵사는 고려 말인 1376년(우왕2)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며, 고려시대 때는 다층전탑으로 인해서 벽절(甓寺)로 부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1472년(조선 성종 3)에는 세종의 능이 지금의 서초구 내곡동에서 여주로 천릉(遷陵;1469년 예종원년) 되어온 영릉의 원찰(英陵願刹)로 삼아 보은사(報恩寺)라고 불렀다고 하며, 조선시대 어느때 부터는 다시 신륵사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 여주 신륵사 문화재(1편)에서 소개되는 문화재 입니다

- 보물 제180호 여주 신륵사 조사당(驪州神勒寺祖師堂),

- 보물 제225호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驪州神勒寺多層石塔)

- 보물 제1791호 여주 신륵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驪州神勒寺木造阿彌陀如來三尊像)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 여주 신륵사 극락보전(驪州神勒寺極樂寶殿)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77호 여주신륵사건륭38년명동종(驪州神勒寺乾隆三十八年銘銅鐘)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78호 여주 신륵사 극락보전 삼장보살도 (驪州 神勒寺 極樂寶殿 三藏菩薩圖)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7호 여주 신륵사 삼화상진영((驪州 神勒寺 三和尙眞影)

 

※ 여주 신륵사 문화재(2)에서 소개 하는 문화재들입니다.

- 보물 제228호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驪州 神勒寺普濟尊者石鐘)

- 보물 제229호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驪州 神勒寺普濟尊者石鐘碑)

- 보물 제231호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驪州 神勒寺普濟尊者石鐘앞 石燈)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95호 여주 신륵사 팔각원당형석조부도 (驪州神勒寺八角圓堂形石造浮屠)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34호 여주 신륵사 원구형 석조부도(驪州神勒寺圓球型石造浮屠)


▼ 봉미산신륵사의 일주문입니다. 사실 여주 봉미산은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산인데, 아마도 신륵사가 봉미산 끝자락에 있는 모양입니다.

 

▼ 잠시 신륵사의 자료사진들을 보겠습니다. 왼쪽 사진은 20년 전의 사진으로 보입니다_여주시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여주 신륵사는 사찰 전체가 문화재로 가득한 사찰입니다. 이번 신륵사 1편에서는 붉은 화살표의 문화재 및 건물 등을 알아보겠습니다

 

▼ 여주 신륵사는 신륵사와 주변이 관광지화 되면서 사람들도 많이 드나들어서 좀 번잡하며, 건물도 꾸준히 현대화되고 있습니다

 

▼ 현판이 없는 누각인데, 보제루라고 합니다. 특별한 내력이나 의미가 있는 누각은 아니고, 여강의 풍경을 바라보는 정자로 보입니다

 

▼ 여주신륵사사적비, 한일 불교 관계자의 소원비와 우측은 신륵사에 공이 많으신 분들의 공덕비들입니다

 

▼ 오랜만에 다시 와보니 조금씩 건물이 늘고 있습니다.

 

▼ 세심정(洗心亭)은 콘크리트로 지은 듯한 모습이며, 사실 물은 일반 수돗물을 뿜어내는 듯하며,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서 지저분 한 물만 고여 있습니다. 정자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므로 마음을 씻는 샘이라는 뜻으로  세심정(洗心井)이 더 어울릴 듯합니다.

 

▼ 구룡루는 1858년에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오래전에 왔을 때는 극락보전이 수리를 할 때 임시 대웅전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보통의 누각이라는 것이 2층의 개념으로 아래층은 사람이 드나드는 통로인데, 신륵사 구룡루는 누각이라기 보다는 정자에 가까운 느낌 입니다.  특별한 문화재나, 문화재자료들의 등재 기록은 없습니다.

 

▼ 1962년 11월 사진이며, 구룡루의 계단이 앞에 있었으며, 동쪽에 대장각기비가 보입니다_여주시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자료사진으로 보면 구룡루는 법당으로 사용되어 왔었습니다. 10여년 전에 왔을때도 극락보전이 보수공사중 일때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_여주시사에서 인용하엿습니다.

 

▼ 안쪽에서 바라보는 구룡루이며, 봉미산신륵사(鳳尾山神勒寺) 편액(扁額)이 걸려 있습니다

 

▼ 구룡루에서 바라보는 다층전탑 방향입니다. 나중에 소개 하겠습니다.

 

▼ 옛날(1962년11월)에는 동대의 전탑으로 가는길이 이랬습니다_여주시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구룡루 내부에서 바라보는 극락보전이며, 다층석탑도 보입니다.

 

▼ 크기가 아담한 다층석탑이 보이는데, 석탑앞의 여러가지 용품들이 석탑의 가치를 가리는 훼방꾼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찰의 문화재 석탑을 보면 이렇게 까지 어지럽지는 않습니다.

 

▼ 참고사진으로 일제강점기때의 신륵사 다층석탑의 모습입니다. 탑 앞에 아무것도 없으니 탑을 보는맛이 납니다_이_뮤지엄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다층석탑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면 8층으로 되어 있는데,  아마도 처음에는 9층 이었는데 언제 무슨일이 있어서 탑의 상륜부가 무너졌는데, 이때 탑의 일부가 없어져서 부득이 8층 까지만 복구 한 것으로 보이며, 지붕돌의 추녀가 부분적으로 깨진것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준수한 모습입니다.

 

▼ 자료사진으로 일제강점기때 입니다_이_뮤지엄에서 인용 하였습니다.

 

▼ 보는 석탑 마다 화강암 석탑이었는데, 이날은 질 좋은 대리적 석탑을 보고 있으니, 눈이 호강 합니다

 

▼ 극락보전 앞의 다층석탑의 상대갑석과 하대갑석의 사이에 있는 면석을 보면 구름속을 날으는 용이 보입니다.  조선시대의 용은 곧 왕을 뜻 하므로 이 탑은 조선왕실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종3년(1472년)에 대규모로 새단장을 할 때 이 탑도 세운것으로 추정 합니다

또한 이 탑을 다듬은 석공은 탑의 아름다움과 불심(佛心)의 정성을 다하여 상대갑석, 하대갑석, 지대석에 연꽃잎을 새겼습니다.

 

▼ 면석을 자세히 보면 우주 부분에 알 수 없는 문양을 새겼습니다. 구름의 용과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석공의 세밀한 솜씨는 기가 막힐 정도 입니다.

 

▼ 극락보전 앞에는 세가지의 문화재 안내판이 있습니다.

 

- 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극락보전 우측의 심검당(尋劍堂)인데, 뜻을 보면 지헤의 칼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하며 보통은 스님들의 선실(禪室) 또는 강원(講院)으로 많이 쓰이는데, 여기에서는 종무소로 쓰이고 있습니다.

 

▼ 극락보전 뒷쪽으로는 조사당(祖師堂)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아주 오래된 향나무가 있습니다.

 

▼ 600년 정도된 아주 오래된 향나무이며, 여주시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향나무는 무학대사가 그의 스승 나옹화상을 추모하기 위해 심었다고 전합니다 .보통 향을 피우는 재료를 얻기 위해서 향나무를 심는데, 사찰은 물론 제사를 지내는 왕실과 일반 사당(祠堂)의 마당에도 향나무를 심었습니다.

 

▼ 신륵사에서 덕이 높은 승려의 초상을 모셔 놓은 조사당이며, 일반적으로 보면 아주 오래되고 큰 사찰의 경우 대개 조사당이 있습니다. 조사당은 보물 제180호이며, 당우가 기품이 있어 보입니다

 

▼ 참고 사진으로 일제강점기때의 조사당입니다_이_뮤지엄에서 인용 하였습니다

 

▼ 조사당 내부에는 세분의 초상화(삼화상진영)가 있으며, 왼쪽 구석에는 경기문화재 제277호인 동종이 있습니다.

 

▼ 신륵사 조사당의 삼화상진영의 자세한 사진은 찾을 수 가 없었지만 여주시청의 문화관광 홈폐이지에서 흐릿한 자료사진을 구했습니다. 무학(왼쪽), 지공(중앙), 화옹(오른쪽)입니다._여주시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오른쪽의 나옹선사는 많은 글을 남겼는데, 그중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래중에서 청산은 나를 보고~~~라는 시를 직접 쓰신 분이라고 합니다.

 

靑山兮要我以無語(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료무노이무석혜)

성냄도 벗어 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 문화재청에서 인용한 무학, 지공, 나옹의 삼화상진영이며, 양산통도사에 있습니다. 여주 신륵사의 삼화상진영과 비교 해 보면 많이 달라 보입니다.

 

▼ 자료사진으로 일제강점기때 촬영한 신륵사 조사당 지공선사의 진영입니다. 지공선사는 원래 인도사람이며, 원나라(청국)에 왔다가 나옹을 만났으며, 잠시 고려에 왔을때는 나옹이 머물던 양주의 작은절집에 들렸다가, 현재의 절집을 크게 중건하도록 하였는데 그 절집이 회암사입니다 _e뮤지엄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자료사진으로 보는 건륭삼십팔년명동종은 높이가 1m가 좀 안되는 아담한 동종입니다 자료사진 설명에서는 중국풍으로 만들어진 동종이라고 합니다_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삼성각으로 오르면서 내려다 보는 조사당입니다

 

▼ 여주 신륵사의 삼성각은 일반적인 건물로서 특별하게 문화재자료등의 등재기록은 없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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