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 현기탑비는 고려전기에 건립된 승려 대경대사 여엄의 탑비이며, 보물로 지정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대경대사의 사리를 보관 하는 승탑은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에 있습니다.
대경대사는 9세에 출가하여 교종을 배웠으나, 뒤에는 선(禪)을 연구하였습니다.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 통일신라 경순왕의 스승이 되었으며, 고려 태조는 그를 존중하여 보리사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69세로 보리사에서 입적하자 태조는 시호와 탑명을 내리고 최언위(崔彦撝)와 이환추(李桓樞)에게 명하여 비문을 짓고 쓰게 하였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楊平菩提寺址大鏡大師塔碑))]
□ 소재지 :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 출토지 : 경기 양평 보리사지
□ 크 기 : 전체 높이 350㎝. 비신 높이 176㎝, 너비 80㎝, 두께 24.5㎝
□ 분 류 : 보물
□ 시 대 : 고려 태조 22년(939년)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의 미지산(彌智山) 보리사지에서 발견된 대경대사 여엄(麗嚴)의 탑비로 939년(태조 22)에 제작되었다. 납작해진 귀부에 거대한 이수가 전체적인 균형을 깨뜨리고는 있으나, 이수의 운룡문은 박력 있는 조각으로, 이수 중앙에는 전액(篆額)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楊平菩提寺址大鏡大師塔碑))]
▼ 탁본으로 보는 대경대사탑비의 비문이며, 탑비는 939년 대경대사의 제자 최문윤(崔文尹)의 각(刻)으로 비가 세워졌고, 3년 뒤 그의 문도들의 이름이 비신 뒷면에 새겨졌다.
글씨는 2.5㎝ 정도의 구양순체(歐陽詢體)의 해서로 획의 모서리를 날카롭게 살려 강인함을 보이는 고려 초기의 특징적인 글씨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楊平菩提寺址大鏡大師塔碑))]
▼ 일제강점기때의 자료사진 입니다. 비신은 안 보이고, 귀부도 깨져 있는 상태입니다.
▼ 경복궁에 있을때의 모습입니다.
▼ 전체적으로 보면 귀부보다 이수가 너무 커서 균형감이 떨어집니다. 다만, 비신이 깨지지 않고 무탈한 것에 대해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 구름 속에서 여러 마리의 용이 용트림을 하는 듯 한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 귀부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빈약한 솜씨입니다.
▼ 이수에 비해서 귀부가 좀 작아 보여서 균형감이 떨어져 보입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전)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傳)楊平菩提寺址大鏡大師塔))]
▼ 자료사진으로 이화여대 박물관에 소장된 대경대사의 승탑을 보겠습니다. 언뜻 보아도 훼손 상태가 심각한 모습이니, 양평 보리사가 폐사된 후 얼마나 험난한 세월을 보냈는지 알겠습니다.-자료사진은 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옥개석에 비천상이 보이고, 탑신에는 사천왕상이 보입니다만, 전체적으로 불에 그을린 듯한 상태로 보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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