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칠장사의 극작전 앞에 문화재 안내문에는 인목왕후(선조의 두번째 왕비, 연안김씨)가 칠장사에서 한때 머물렀을때 칠언시를 남겼다고 합니다만, 확실한 것은 아닌듯 싶습니다.

 

인목대비는 광해군5년에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의 석어당에 갇혀 있었을 때인데, 그때 칠장사에 머물렀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인목왕후(仁穆王后, 1584~1632,연안김씨)는 광해군의 계모로도 유명한데, 1613년(광해군 5) 친정아버지 연흥부원군 김제남(金悌男)이 사사되고 이듬해 아들 영창대군(永昌大君)이 강화도에서 살해(9세)되며 1618년 자신도 후궁으로 폐위되어 서궁(西宮: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의 석어당에 딸 정명공주(당시 16세)와 함께 갇히는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5년 만에 인조반정으로 복위되었고, 이후 인목왕후는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칠장사를 원찰로 삼고 중창을 하였습니다.

 

▼ 인목왕후 칠언시는 보물이며, 이 칠언시를 쓴 시기는 1623년경, 크기는 세로 105㎝, 가로 67.3㎝ 입니다.

인목왕후는 인조반정후에 복원이 되면서 왕궁의 대비로써, 칠장사를 원찰로 삼고, 아버지 김제남과, 영창대군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여러가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인조6년(1628)에 오불회괘불탱五佛會掛佛幀),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필사본, 칠언시등을 칠장사에 하사 하였다고 합니다.

 

금광명최승완경은 당나라 의정이 번역한 12권의 불경인데,  광해군14년(1622년)에 인목왕후가 백지에 먹으로 필사한 사경(寫經)으로 복위 후 칠장사에 하사하셨는데, 현재는 동국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 문화재청에서 인용한 인목왕후칠언시의 자세한 설명를 인용하였습니다.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仁穆王后御筆 七言詩)」는 선조(宣祖)계비(繼妃)인 인목왕후(仁穆王后, 1584~1632)가 큰 글자로 쓴 칠언절구의 시이다.

 

종이바탕에 4행으로(각행 7자) 썼으며 근대에 족자로 장황되었다. 어필 아래에는 서예가 배길기(裵吉基)의 1966년 발문이 있다. 바탕은 보존이 양호한 편이며 다만 줄[行] 사이가 좀 더 밝다.

 

한편 어필 칠언시 28자의 점획 안에는 제월당(濟月堂)이란 스님의 발원문 29자가 작은 글자로 진하게 쓰여 있다. 칠장사는 인조가 반정으로 등극한 1623년에 인목왕후가 친정아버지와 아들(영창대군)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원당(願堂)으로 삼아 중창한 사찰로 이곳에는 인목대비가 썼다는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 사경>이 전래되었는데(현 동국대박물관 소장), ‘인목왕후 칠언시’와 서풍이 같다. 인목왕후의 글씨는 선조어필과 비슷하며 그의 딸 정명공주(貞明公主)가 따라 썼다.

이 어필을 나무판에 모각한 것(보물 명안공주관련유물(明安公主關聯遺物))과 검은비단에 금니로 모사한 것이 전하는데(국립중앙박물관, 德 2053) 모두 이 어필과 자형이 같다.

다만 모본에서는 칠언절구 28자를 3행으로 배열하고(각행 10자) 글자 사이를 조절하였다. 조선시대 열성(列聖)의 어필이 많이 모각되었는데, 이처럼 모각된 어필의 원적(原蹟)이 남아 있는 예는 매우 드물다. 특히 왕후의 글씨는 간찰체제로 자필 또는 서사상궁의 필치로는 전하고 있지만 한자 대자(大字)는 명성왕후의 예필을 빼면 현재로서는 ‘인목왕후 칠언시’외에 사례가 발견 되지 않고 있다.

 

 

▼ 인목왕후칠언시는 두가지 형태로 검색이 되는데, 첫번째 것이 원본인듯 합니다. 한행에 7글자로 4행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의 내용은 “늙은 소 힘을 쓴 지 이미 여러 해, 목이 헐고 가죽이 헤어져 잠자기만 좋아하네. 쟁기질 써레질 이미 끝나고 봄비도 만족스러운데, 주인은 어찌 고생스럽게 또 채찍을 더하는가? 하며 늙은 소를 가엽게 여기는 내용인데, 주인은 광해군을, 소는 자신을 비유하여 쓴 시로 보입니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면 이 시는 원래 인목왕후가 직접 지은 시가 아니고 명나라 장면(蔣冕)의 칠언절구(七言絶句)를 인목왕후께서 수사(手寫)하신 것이라고 하며, 여러 기록에는 민우시(憫牛詩)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영조46년(1770년) 1월 25일 기록에는 장면의 칠언절구를 “노우시(老牛詩)”라 하면서 영조(英祖)가 이 시를 읊은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老牛用力已多年(노우용력이다년) ; 늙은 소 힘쓴 지 이미 여러해

領破皮穿只受眼(영파피천지수안) ; 목이 헐고 가죽 헐었어도 잠자기만 좋아하네

犁杷己休春雨足(이파기휴춘우족) ; 써레질 이미 끝나고 봄비도 만족한데

主人何若又加鞭(주인하야우가편) ; 주인은 어찌하여 괴롭게도 또 채찍을 더하네

 

칠언시 아래에는 1966년 초여름에 서예가 배길기(裵吉基)가 예서로 쓴 발문이 있는데 내용은,

“이것은 인목왕후가 직접 쓴 고시인데 예전에 금광명최승왕경과 함께 칠장사에 간직했으니 참으로 묵보이다. 이제 두 가지를 서로 비교해 보니 그가 직접 쓴 것임에 의심할 바 없다

 

▼ 이 칠언시는 모사본이라고 하는데, 글씨체는 똑 같습니다. 연안김씨대종회(延安金氏大宗會)에서 모본의 내용을 인용하였다고 합니다.

 

□ 숙종(肅宗)의 어명으로 제작된 인목왕후어필칠언시(仁穆王后御筆七言詩) 모본(摹本)


인목왕후어필칠언시(仁穆王后御筆七言詩)는 칠장사 소장본 외에 3점의 모본(摹本)이 있다. 검은 비단에 금니(金泥)로 어필을 모사(模寫)한 쌍구전금니본(雙鉤塡金泥本)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덕수2503)하고 있다.

 

또한 어필을 모사(模寫)하여 목판(木版)으로 종이에 찍은 후 그 위에 가묵(加墨)한 목판전묵본(木版塡墨本)을 국립중앙박물관(덕4491)과 명안공주관련유물(明安公主關聯遺物, 보물 제1220호)로 강릉시립박물관에서 각각 소장하고 있다. 아래 그림은 강릉시립박물관 소장본이다.

 

이 모본(摹本)은 모두 칠장사 소장본 어필과 자형은 같으나 칠언시 28자를 3행으로 배열하고 글자 사이를 조절하였으며 첫머리에 “仁穆王后御筆“이라고 쓰여 있고, 3행 말미에 아래와 같은 숙종(肅宗)의 발문(跋文)이 실려 있다

 

▼ 인목왕후는 인목대비라고도 하는데, 구리 동구릉의 목릉에 잠들어 있습니다. 선조가 51세에 계비로 들였으며, 이때 인목왕후는 19세였습니다. 49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화병이 너무 심했을것 입니다.

 

▼ 인목왕후를 알려면 계보도를 봐야 하는데, 인목왕후는 정비 의인왕후가 왕자가 없이 46세에 새상을 뜨자 계비로 19세에 왕후에 올랐습니다.선조가 후궁들에게서 왕자들이 많았으나, 정식 왕비에게서는 인목왕후의 영창대군과, 정명공주뿐이었고, 당연히 영창대군이 세자가 되어야 했지만, 이미 광해군이 세자에 책봉되어 있었으므로 쉽게 세자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여기서 인빈김씨의 자손중에 정원군이 있었는데, 정원군은 훗날 인조의 아버지가 되며, 원종으로 추존이 됩니다만, 기록(졸기)에 보면 정원군은 천하에 망나니로서, 악행이 극심해서, 왕실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던 인물이었는데, 죽고 나서 왕으로 추존되었습니다.

 

하지만, 죽어서도 편히 지내지 못하는데, 그것은 정원군이 잠들어 있는 곳이 김포장릉인데, 요즘 장릉앞에 아파트를 너무 높이 짓는 바람에 문화재청에서 아파트를 철거 하라는 멸령이 발동이 돼서 함참 시끄러운 곳이 됬습니다

 

▼ 안성시 일죽면 고은리에는 영창대군의 묘가 있습니다. 광해군6년(1614년) 광주시 남한산성 아래에 만들었으니, 성남시의 도시개발로 1971년 이곳으로 이전 하였습니다.

 

▼ 묘비에는 ‘영창대군증시소민공지묘(永昌大君贈諡昭愍公之墓)’라는 명문이 있습니다. 정치라는게, 참 피도 눈물도 없는것 같습니다. 아직 세상 물정도 모르는 나이 9세의 여린 소년을 죽여야 했으니 말입니다. 조선은 당파싸움으로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나라였을 정도로 정치파벌이 너무 심했으니, 임금인 광해군을 흔들어서 정권을 잡고자 영창대군을 죽음으로 몰아 갔습니다.

 

▼ 영창대군의 묘가 안성으로 이전 되고 나서 성남의 원래 영창대군묘 에서 찾은 묘지석이랍니다. 묘지석은 죽은 사람의 일대기를 돌에 새긴것 입니다. 많이 깨졌지만, 다행이 수습이 돼서 다행입니다. 묘지석은 묘의 앞 상석밑 땅속에 묻는데, 아마도 묘를 이전할 때 묘지석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1971년 주택가 도시가스 배관 굴토 작업중 발견 되었답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습니다.

- 끝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