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의 칠장사대웅전(七長寺大雄殿)은 경기도유형문화재(제114호)에서 2019년 국가지정문화재로서 보물(제2036호)로 승격하였습니다만, 참고로 국가지정문화재는 2021년부터 지정번호가 없어져서 보물 안성 칠장사대웅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국가지정 문화재에 대한 문화재청의 고민이 많이 반영되었던 조치였으며, 이미 모든 국가지정 문화재는 앞에 지역 이름을 붙여 부르게 되었습니다(예 ; 칠장사 대웅전은 안성 칠장사대웅전)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재 지정번호는 그대로 인 것으로 보입니다.
※ 칠장사대웅전의 자세한 내용을 "경기문화재단"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칠장사의 주불전(主佛殿)으로 석가모니불을 봉안한 전각(殿閣)이다. 사적기(寺跡記)에 의하면, 조선 숙종(肅宗) 20년(1694)에 세도가들이 사찰을 불태운 후 숙종 30년(1704)에 석규대사가 대웅전을 이건 하였으며 영조(英祖) 12년(1736)에는 설영대사가 중수하였고 순조(純祖) 28년(1828)에는 완진대화상이 중건하였다. 이후 철종(哲宗) 8년(1857)에는 지붕이 수리되었고, 1982년에는 해체 수리되었다.
대웅전은 안마당 서북쪽의 높은 석축 위에 동향으로 위치하고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多包系) 맞배집이다. 기단 석축은 장대석(長臺石)을 5단가량 쌓은 것인데 갑석(甲石)과 계단 소맷돌을 갖추었고 초석(礎石)은 방형으로 윗면에 둥근 주좌(柱座)를 돋을새김한 것으로 고려 초기까지도 올려볼 수 있다.
전후면 기둥은 민흘림 형식이나 양측면에는 자연 형상에 따라 휜 것도 사용되었다. 지붕 용마루 양 끝에는 용두(龍頭)가 올려져 있어 특이하다. 내부 중앙에는 불단이 있고 그 위에 석가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내부 천장은 중앙칸에만 우물반자가 설치되어 있고 앞뒤쪽에는 연등천장으로 서까래가 노출되어 있다.
이 불전은 연봉과 봉황 머리가 장식된 공포의 형태와 자연 형상의 기둥과 보(樑) 등의 치목(治木) 수법 등에서 19세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 명 칭 : 안성 칠장사대웅전 (安城 七長寺大雄殿)
□ 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399-18(칠장사)
□ 분 류 : 국가지정 보물(경기도 유형문화재에서 2019년 보물로 승격)
□ 시 대 : 조선 말기(현재 대웅전은 순조 때 중건)
▼ 안성 칠장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을 한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 대웅전의 단청은 다 날아가고 희미하기만 하지만, 나름대로 품격이 느껴지는 글씨로서 보는 맛은 있습니다.
▼ 대웅전 앞의 괘불지주입니다 돌기둥 사이에 당간을 끼워서 고정하는 지지대이며,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오불회괘불탱을 괘불지주에 걸어서 돌기둥 고정시킵니다. 오른쪽 사진의 지주 표면에 1725년(조선영조원년)에 지주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래 자료사진(안성자치신문)은 칠장사 대웅전앞에 오불회괘불탱을 걸고 큰 행사를 하는 모습입니다)
▼ 대웅전 앞의 계단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는데, 일반 석축 계단이 아닌 소맷돌이 놓여 있고 문양도 궁중에서나 쓰는 구름문양이 있습니다. 구름문양의 계단이라고 해서 운계(雲階)라고도 하는데, 왕릉의 정자각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석축의 맨 위 갑석을 보면 일반적으로 다듬은 덮개돌이 아닌 고급스러운 문양을 넣었습니다.
▼ 자료사진으로 보는 칠장사의 대웅전입니다. 2000년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석등은 기교를 너무 부려서 가볍게 보이는데,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대웅전 앞의 괘불지주와 직각으로 있는 작은 괘불지주는 지금 대웅전 앞에 나란히 서 있습니다
▼ 자료사진으로 보는 대웅전 좌측 벽면의 모습인데, 나무기둥의 모습이 참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_이하 문화재청 자료사진입니다)
▼ 자료사진으로 보는 대웅전 뒤쪽의 모습인데, 작은 문짝의 모양이 너무 고급스러운 꽃살무늬입니다. 받침대에 놓여 있는 기다란 기둥은 괘불지주 입니다.
▼ 다음은 칠장사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의 문화재청 설명과 자료사진을 전재하였습니다.
제작 연대가 분명하고 만든 스님의 이름까지 알 수 있는, 조선 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중형 나무 불상 가운데 하나이다.
이 삼존불의 본존 부처는 앉은 자세에서 오른손을 곧게 펴서 무릎 아래로 내린 이른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라는 석가모니불 특유의 손갖춤(수인)을 하고 있어 석가삼존불로 불려 왔다.
그러던 중 2007년에 삼존불의 표면 금칠을 새로 하면서 왼쪽 협시보살에서 ‘왼쪽 보좌 미륵보살(左補處彌勒菩薩)’이라고 쓴 발원문(發願文; 바라고 원하는 것을 적은 글)이 발견되어 이 삼존불이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그 왼쪽에 미륵보살이, 오른쪽에 제화갈라보살이 보좌하는 수기 삼존불(授記三尊佛; 장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은 삼존불) 형식의 삼존불임을 알게 되었다.
불상을 조각한 때는 1685년(숙종 11)이며, 만든 이는 조각승 마일(摩日)과 천기(天機) 스님을 비롯한 모두 8명의 조각승이다. 특히 조각승 마일과 천기 스님은 17세기 중반에 전국을 무대로 조각 활동을 했던 혜희(慧熙) 스님의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이다.
본존 부처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었지만 전체적으로 무표정한 사각형의 얼굴과 블록적인 신체 구성, 굴곡이 무시된 평면적인 신체 등에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삼존불 뒤의 탱화가 경기도 유형문화재 칠장사영산회상도입니다
▼ 대웅전 천장의 모습이며, 크게 다듬지 않은 대들보가 인상적입니다
▼ 안성 칠장사 대웅전 안의 칠장사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의 자료 사진입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관서 인용하였습니다)
하단 중앙의 화기에 의하면, 이 불화는 1886년(고종 23년)에 금곡영환(金谷永環)·한봉창엽(漢峰昌燁)·완오(翫悟)·봉순(奉順)·성전(性典)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 다음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38호인 칠장사범종(칠장사동종)이며 대웅전 안에 있습니다.
총 높이 120cm, 구경 75cm의 크기로 조선 후기 범종 중에서는 비교적 대형에 속한다. 명문(銘文)에 의하면 1782년(정조 6)에 만들어졌다.
이 아래로 중간 띠와 하부 쪽에 둘러진 띠 사이의 여백 면에는 크고 작은 긴 장방형 틀 안에 양각 명문을 새겼다. 여기에 종을 제작한 장인(匠人)으로 신몽태(申夢泰), 이영태(李永泰), 이영희(李永希), 이수성(李守成), 이영준(李永俊) 등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중에서 이영희는 18세기 중엽 이후 후반까지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이만돌의 계보를 이은 장인이다.
약간 길어진 듯한 외형과 종 몸체에 간략화 되면서도 도식화된 세부 문양과 균형을 잃은 보살입상 등 이제 조선 후기 전성기에서 점차 쇠퇴하는 범종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명문을 통해 18세기 후반 직업 장인들의 활동상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 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표면을 자세히 보면 시주하신 세분의 이름이 보이는데 비구(남자스님)도 두 분의 법명이 보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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