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죽산리석불입상에 대한 자료입니다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봉업사지 북쪽 죽주산성 아래에 위치한 석불입상이다. 통일 신라 여래상의 전통적인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여 정제된 조각수법을 보이는 고려 전기 불상의 우수한 사례로 여겨진다. 절단되었던 머리와 신체를 접합하였으며 발은 최근에 복원하였다. 불상은 연꽃이 새겨진 둥근 대좌 위에 서 있으며, 광배는 남아 있지 않다.

민머리 위에는 육계(肉髻 ; 상투 모양의 머리 묶음)가 큼직하다. 신체에 비해 약간 큰 얼굴은 둥글고 귀가 어깨까지 길게 늘어졌다. 이목구비가 비교적 작은 편이나 눈은 거의 감은 상태로 가로로 길다.

 

양팔을 신체에 붙인 채 오른손은 허리 부근에서 손바닥을 밖으로, 손끝을 아래로 하여 펼쳐 보이고 있다. 왼팔 역시 신체에 밀착한 채 가지런히 내리고 있으며, 왼손도 밑으로 내리고 있다.

 

양쪽 어깨에 걸쳐져 내려오는 대의는 신체 전면을 감싸고 있는데 가슴에서 촘촘한 U자형 주름을 형성하다 대퇴부에서 Y자를 형성하며 양쪽 다리로 갈라져 각기 기다란 U자형 주름을 형성하며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이는 통일 신라 시대 8세기를 전후한 시기부터 유행했던 형식이다._ 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명   칭 : 안성 죽산리 석불입상 (安城竹山里石佛立像)

□ 소재지 : 경기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산6-2번지

□ 출토지 : 죽산리 삼층석탑 근처

□ 분   류 : 경기도 유형문화재(제97호)

□ 시   대 : 통일신라(9세기 후반 추정)


▼ 봉업사(구 용화사)는 예전보다 많이 바뀌었습니다. 마당에는 오층석탑과 대웅전 앞에는 석등이 있습니다만, 문화재적으로 평가할 만한 가치는 없어 보입니다. 석불입상은 대웅전 옆으로 돌계단으로 올라가는 길 위에 있습니다.

 

▼ 고려석탑을 따라서 만든 석탑과 석등이 봉업사(구 용화사) 대웅전 앞에 있습니다.

 

▼ 높다란 언덕에 있는 죽산리석불입상의 모습이며, 원래 광배가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 이 석불입상은 죽산리삼층석탑 서쪽 부근에서 옮겨 왔다고 합니다. 즉 죽산리 삼층석탑과 같은 사찰안에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 죽산리삼층석탑과 죽산리석불입상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이며, 석불입상이 삼층석탑 서쪽에 있었다가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는 자료에 따라서 붉은 선으로 표시하였습니다.

 

▼ 죽산리 삼층석탑 근처에 쓰러져 있을 때는 불두와 불신이 분리되어 있었지만, 현재 위치에 안치하면서 정교하게 접합이 되어 있습니다. 대체로 불신에 비해서 불두가 크게 보이고 손이 불신에 비해서 크게 보입니다. 마치 신라시대의 금동불상을 보는 듯합니다. 

 

▼ 죽산리석불입상이 신라금동불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자료가 있어서, 죽산리석불입상과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죽산리석불입상과 신라금동불상의 기법이 매우 흡사합니다

 

▼ 목 부분에 삼도가 있었는지 모르겠으나(당연히 있었겠지요), 불두와 불신을 접합하면서 삼도 부분이 뭉개져 버렸습니다

 

▼ 상체가 뒤로 졌혀진 모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옆에서 보면 그리 심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옷은 통견식으로 무릎 아래까지 덮고 있으며, U자형 옷 주름이 아랫배까지 표현되어 있습니다.

 

일부 자료에서 보면 이 석불은 통일신라 후기 양식을 보이고 있는데, 금동불상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라고 하며, 상체가 약간 졌혀 있는 것은 통일신라 시대의 방법이라고 합니다.

 

▼ 늘씬한 모습이며, 연화좌(蓮花座)까지 높이는 4m (불신은 3.36미터)입니다.

 

▼ 원래부터 광배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석불의 뒤쪽을 보면, 광배를 지지하는 홈이 안 보이는데, 광배는 없었는지도 모릅니다.(자료사진은 안성시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불신을 받치고 있는 연화대좌는 두 개가 전부 하대이며, 각각 다른 지역에서 옮겨온 것으로 보입니다. 불신을 받치고 있는 연화대좌의 하대도 원래의 받침대는 아닌 것 같습니다.

 

▼ 같은 모양의 대좌가 보이는데, 아마도 석가여래좌상의 복련 하대석으로 보입니다.  

 

▼ 석불입상의 옆에는 알 수 없는 석탑이 보입니다.

 

▼ 보기에는 5층의 석탑이었으며,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해 봅니다.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었는지는 불분명하고, 2층~5층의 몸돌은 없어졌고, 형태로 봐서는 5층의 옥개석 중에서 1층, 2층의 옥개석만 남았습니다.

 

▼ 일반적인 고려시대의 석탑과 비교해 보면 세련미는 떨어져 보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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