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성시 중심부의 아양동 아양주공 1단지 뒤로 통상적인 이름으로 불리는 미륵불 2기가 모셔져 있습니다. 아양동은 원래 아롱개마을로 불리었는데, 안성천의 물안개 때문에 동네가 항상 안개에 싸여 있어 동네 모습이 아른거리게 보인다 하여 마을 이름을 ‘아롱개’ 또는 ‘아룽개’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미륵불이 있는 곳 앞에는 용화정사(대한불교법상종)에서 미륵불 위에 만국기를 걸어 놓아서 보기에 심란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두 불상은 크기가 심한 차이를 보이는데, 두 불상 모두 하반신이 땅속에 묻혀있는데, 왼쪽(보살입상)은 배꼽 부분부터 묻혀있고, 왼쪽(석불입상)은 무릎부분 부터 묻혀 있습니다.
왼쪽 보살입상은 매우 여성적인 모습이고, 오른쪽은 매우 고집스러운 노인 모습을 하고 있어서 대조적으로 보입니다.
원래부터 두 불상이 같이 있었던것 같지는 않고,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을 사람들에 의해서 두 불상이 한 곳에 모이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 보통은 두 미륵이 나란히 있으면 남미륵, 여미륵으로 부르고는 하는데, 이 마을 사람들도 두기의 불상을 두고 왼쪽 불상은 여미륵(할머니 미륵), 오른쪽 불상을 남미륵(할아버지 미륵)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딱 봐도 그렇게 구분하여 부를 만도 합니다.
▼ 먼저 왼쪽의 아양동 보살입상을 보겠습니다
□ 명 칭 : 안성 아양동 보살입상(安城峨洋洞菩薩佛立像)
□ 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아양동 364-16
□ 출토지 : 소재지와 동일
□ 분 류 : 안성시 향토유적 제10호
□ 시 대 : 고려시대
왼쪽불상(보살입상)은 불신이 반만 땅속에 묻혀 있는데도, 높이가 상당해 보이는데, 현재의 높이만, 3.37m이므로 땅속 깊이까지 생각해 본다면 5m 정도의 높이로 보이는데, 주민들은 원래 11자 반(3.8m)이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 죽주(안성) 지역의 유행이었던 대형 미륵불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불신과 얼굴은 대체로 길쭉하고 가냘프게 보이고 머리에는 꽃무늬가 화려한 보관을 썻으며, 상호는 윤곽이 매우 뚜렷해서 현재의 최고 미인과 비교해도 전혀 뒤질게 없이 화려 합니다. 법의는 마치 관복처럼 문양이 있으며, 눈동자는 어떻게 처리한 것인지 마치 하얀 돌을 심은 것처럼 특이하게 보입니다.
옆의 석불입상이 남자처럼 과묵하게 보이는 반면에 보살입상은 매우 여성스러워서 여미륵(할머니미륵)이라고도 합니다. 다만 목이 부러져서 접합한 부분이 보기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여러 미륵불을 보면 대체로 대형 미륵불은 많이 넘어졌는지 목이 부러진 미륵불이 많이 보입니다만, 그래도 머리 부분이 없어지지 않아서 보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다행입니다
▼ 다음은 오른쪽의 아양동 석불입상을 보겠습니다
□ 명 칭 : 안성 아양동 석불입상(安城峨洋洞石佛立像)
□ 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아양동 364-16
□ 출토지 : 소재지와 동일
□ 분 류 : 안성시 향토유적 제15호
□ 시 대 : 고려시대
아양동 석불입상은 왼쪽에 있는 아양동 보살입상(菩薩佛立像)과 같은 공간에 있는 석불로 남미륵(할아버지미륵)으로 불리는 석불입니다. 무릎 부분 아래로는 묻혀 있고, 전체적인 규모는 보살입상보다 작은 느낌을 주는데, 얼굴 인상은 엄숙한 위엄이 깃들어 있습니다. 다만 보통의 불상의 목에 있는 삼도는 안 보입니다
머리에 쓴 관모처럼 보이는 모자는 부분적으로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보고,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서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추정이 됩니다. 불상 전체높이는 2.6m입니다
대체로 평범하게 보이며 인상은 위엄이 깃들어 있으나 무뚝뚝하고 고십스러운 시골 할아버지 형상입니다.
석불입상의 제단석에 ‘을사년정월십사일 아양동일동(乙巳年 正月十四日 峨洋洞一同)이라고 기록된 것을 보아 1965년 1월(음력)에 보수가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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