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시 대덕면 죽리 안성천이 보이는 외평마을 입구에 아주 오래된 당산나무(음나무) 옆에 서 있는 석조여래입상은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마을에 큰 장마와 전염병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고려 중기에 세웠다고 한다. 현재의 모습은 1999년 4월 안성문화원에서 1/3 가량 땅 속에 묻혀있던 것을 파내어 세워놓았다._경기문화재연구원
□ 명 칭 : 안성죽리석조여래입상 (安城竹里石造如來立像)
□ 소재지 : 경기 안성시 대덕면 죽리 17번지
□ 출토지 : 소재지와 동일
□ 분 류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08호
□ 시 대 : 고려 후기~조선 전기
※ 틀린 주소 :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죽촌길 173-8(죽리 32-4) -> 경기문화재연구원, 문화재청
▼ 석조여래입상이 그리 작은 불상이 아닌데도 나무가 너무 커서 상대적으로 아주 작게 보입니다. 나무는 음나무이며, 안성시에서 보호하는 나무로 수령은 700년입니다. 지금부터 700여년 전이면 고려 말기입니다.
아마도 아주 오래전에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마을의 안녕과 큰비가 내리면 안성천에 물이 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불상을 세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죽리는 대부분 지대가 낮고, 또한 안성천이 가까이 있어서 큰비로 안성천의 둑이 무너지면 큰 피해를 봤을 것입니다
▼ 문화재청에서 더 자세한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안성시 대덕면 죽리 외평마을 입구 당산나무 옆에 위치한 석불상이다. 현재 높이 2.35m의 크기로 무릎 이하는 땅에 묻혀 있다. 불상은 광배(光背 ; 붓다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형상화한 것)와 한 돌로 조성되었다. 방형의 얼굴에 높은 육계(肉髻 ; 상투 모양으로 솟은 붓다의 정수리, 지혜를 상징)와 보주형의 정상계주(頂上髻珠 : 붓다의 육계 위에 표현된 보배구슬)를 표현하였다.
둥글고 큰 눈에 비하여 코와 입은 매우 작다. 짧은 목에 삼도(三道 ; 불상의 목에 표현된 세 줄의 주름으로 지혜를 상징)를 나타냈으며 목이 짧으므로 귀가 어깨에 닿았다. 양어깨를 덮은 법의는 양팔에 걸쳐져 손목 부근까지 내려오며, 오른쪽 어깨에는 반원형의 단이 걸쳐져 있다. 배 앞에서 두 손을 선정인(禪定印 ; 붓다가 선정에 들 때의 손모습)처럼 포개어 연봉을 받쳐 들고 있다.
이 불상은 용인과 안성 등에서 고려 시대에 조성된 지방화된 양식의 석불들과는 계통을 달리 하는 것으로 둥글고 큰 어깨에 세부 조각수법이 매우 뛰어난 편이다. 육계 위의 정상계주, 대의를 걸쳐 입은 방식과 어깨 양쪽의 옷 주름 처리방식 및 가슴에 보이는 치마의 처리 방식 등은 15세기 후반에 조성된 고양 상운사 석불좌상과 유사하다. 이 작품 역시 상운사 석불 좌상과 비슷한 시기의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뒷면은 아무런 조각 흔적이 안 보입니다. 100여 미터 앞에 안성천 제방이 보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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