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부터 중앙집권적 통치 형태에서는 중앙정부에서 관리들이 각 고을에 출장을 가서 일을 보러 다닐 때, 묶을 장소가 필요했는데, 관리들이 일을 보는 동안 묶는 곳이 객사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객사가 350여개나 되었습니다

 

보통은 현, 군 정도의 큰 지방행정 조직이 있는 곳은 하나씩은 있었다고 하며, 대개가 규모나 구조는 거의 비슷한 건축 양식을 가집니다.

 

객사는 일반적인 숙식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을의 수령들이 객사의 중앙에 있는 정청에 왕의 위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며, 지방 고을의 수령들이 객사의 정청에 들려서 임금에 대한 예를 게을리하면, 큰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 명   칭 : 안성객사 (安城客舍)

□ 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종합운동장로 203(양복리 238-1)

□ 출토지 : 안성관아지
□ 분   류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4호

□ 시   대 : 고려시대(고려 공민왕 12년)

 

▼ 객사는 원래 관아지 부근에 있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외딴곳에 옮겨져 있습니다. 그래도 객사의 형태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객사의 문은 보통 삼문형태로 지어져 있으며,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 원래의 안성객사의 위치를 자료에서 찾아보면, 지금의 안성초등학교 옆이라고 나옵니다. 조선시대 안성관아는 비봉산 아래 비교적 높은 곳에 있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그나마 객사가 헐려서 명륜여중 교내로 이전됩니다. 그 후 1995년 현재로 위치로 이건 되었습니다_사진자료는 안성시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일제강점기의 일반적인 지방의 객사들과 마찬가지로 안성객사도 1908년 객사를 수리하여 교사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이때 부속건물은 모두 사라지고 객사 본 건물만 남아 있다가. 1931년에는 군 도서관과 교사로 사용하다가 1995년에 철거되어 현재의 위치로 이건 하게 되었습니다.(안성명륜여중때 학교 부속건물로 쓰이던 객사 모습)

 

▼ 담장밖에서 한번 둘러 보았습니다

 

▼ 객사는 조선시대 지방 관아 건물로 고을 수령이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정청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머물렀던 좌익실과 우익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좌익실은 3칸이고 객실도 하나인데, 우익실은 4칸에 객실도 두 개입니다. 다른 지방의 객사도 보면 좌익실과, 우익실의 크기는 차이가 있는 구조입니다.

 

▼ 안성객사에 대한 설명을 문화재청에서 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

 

안성 객사는 공민왕 12년(1363) 이전에 건립된 이후 조선 후기에 지붕 기와를 바꾸었고, 근대기인 1931년, 1995년 2차에 걸쳐 이건 했음에도 항아리형 보와 포작의 구성법, 첨차의 형태 등이 고려말의 건축적 수법을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고려시대 건립된 객사로 현존하는 객사 건축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정청의 공포 형태는 국보인 수덕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 조사당, 임영관 삼문, 거조사 영산전의 공포와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다. 공포의 구성은 수덕사 대웅전과 유사하다. 하지만 살미와 살미 사이에 장식재와 같은 동그란 부재를 깎아 놓은 특징이 있다.

 

공포에 이런 모습이 남겨진 건물은 「안성 객사 정청」이 유일하다. 또 대들보와 종보는 항아리형 보를 사용하고 있다. 항아리형 보는 고려 후기 건축물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여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_문화재청

 

▼ 객사의 중앙에 있는 정청의 모습인데, 아무것도 없으니까, 보기에 아무런 기능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 자료사진으로 보는 객사의 정청에 전,패를 모셔놓은 사진입니다.

조선시대 객사의 정청(객사의 중앙)에는 반드시 전패,궐패를 모셔놓고, 지방관들이 정월 초하루, 동지, 국왕의 탄일에 임지의 객사 정청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두고 인사드리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이런 의식을 망궐례(望闕禮)라고 하는데, 만약 지방관들이 망궐례를 소홀히 하거나, 전,궐패의 관리를 소홀히 하면 엄한 벌을 내렸다고 하며, 보통 파직에 귀향까지 갔는데, 전패와 궐패가 곧 왕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 정청 안에서 밖을 보는 모습입니다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객사의 좌익실은 3칸 구조에 방은 하나입니다. 지방에 따라서 객사의 크기도 다르고 방의 갯수도 차이는 있지만, 좌익실이 우익실보다 크기도 적도, 객실도 갯수도 한 개 정도 적습니다.

 

▼ 객사의 중앙에 있는 정청, 또는 정당이라 하는데, 전패와 궐패를 모셔놓는 장소입니다. 현판이 백성관이라고 되어 있는데, 안성지역이 신라시대에는 백성현이었다고 합니다

 

▼ 우익실은 좌익실보다 큰 4칸 규모에 객실도 두 개입니다. 보통 객사를 보면, 좌익실과, 우익실의 차이를 보이는데, 무슨 차이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끝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