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사는 천덕산(天德山)에 위치한 사찰로서 삼국시대 창건되었다고 전해오는데, 당시 증거 할만한 사적기(事績記)나 유적(遺蹟)이 없어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 수 없으나, 1275년(충렬왕1)에 고려 충렬왕이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발원한 사경(寫經)과 ‘청원사일동’이라 쓴 비단 조각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고려말 국가 원찰로 경영되었으며, 1891년 (고종28)을 전후하여 대웅전이 중건되었고, 대한 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末寺)로 사찰 내의 대웅전과 산신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6호인 7층 석탑 등이 있다._안성시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아침 부터 찾아간 산사는 고요하기만 하고, 주지스님의 아침 예불 소리만 낮게 들리는 청원사는 천덕산 골짜기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 두기의 승탑이 보이는데, 작은 승탑은 오래되어 보이지만 아무런 표식도 없어 어느 스님의 것인지 알 수 없고, 오른쪽의 큰 승탑은 "설담당정명대화상"이라는 스님의 승탑인데, 설명도 없고, 자료를 찾아봐도 알 수 없었습니다.
▼ 고요한 청원사는 사찰일을 거들어 주시는 보살님만 보이길래 잠시 절집구경도 하고, 사진 좀 찍겠습니다라고 양해를 구하고 천천히 둘러봅니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부처님 오신 날 연등을 걸려고 설치한 비계(飛階,scaffold)가 절집의 경관을 보는 것을 방해하는데, 예전에는 요사채가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 자료사진으로 보는 청원사의 옛모습입니다. 탑은 칠층석탑이 중앙에 있고, 삼층석탑은 오른쪽 구석에 보입니다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청원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칠층석탑과 자그마 한 삼층석탑이 보이는데, 삼층석탑은 세 개의 옥개석과 부재들을 맞추어서 겨우 탑 모양을 갖추었습니다.
▼ 칠층석탑과 나란히 있는 삼층석탑은 원래 대웅전 오른쪽 옆에 있었으나, 어느 날 칠층석탑 옆에 나란히 세워졌습니다
▼ 청원사 칠층석탑은 다른 고려시대의 탑과 조금 다른 점은 상대갑석과 하대갑석에 연화문양이 있고, 사면으로 네개씩 안상문양이 있으며, 상대갑석은 앙련문양으로, 하대갑석은 복련문양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4층의 옥개석부터는 처마끝이 상당히 가파르게 치켜 올라가 있고, 풍탁을 걸었던 구멍들이 보입니다
다음은 안성시청에서 청원사 칠층석탑의 안내문입니다
기단은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대석은 땅에 거의 파묻혀 있고 그 위에 하층기단 면석으로 간주할 수 있는 4각형의 돌이 놓여있다. 이 위가 하대갑석으로 직사각형의 돌개로 구성되어 있다. 측면의 각 면에는 두 줄의 음각선으로 새긴 안상문(眼象紋)이 4개씩 새겨져 있으며, 갑석의 상면에는 2층기단 면석에 걸쳐 연화문을 5엽(葉)씩 새기고 있다. 약간 빗긴 연화문은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형식이므로 이 탑의 편년결정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여 준다.
2층기단 면석은 4개의 판석으로 구성되었는데, 전석은 길고 좌우 돌은 짧게 만들어졌다. 그 위의 갑석은 큰 판석인데 상·하면 두 곳에 5엽의 연화문을 새겼는데 하대갑석의 것과 거의 동일한 형식이다. 측면에도 4곳 모두 각 4개씩의 안상문을 새기고 있는 것 같은 경기도 지방의 묘적사탑이나 수경사탑에 새긴 장식들과 유사하다.
1층 탑신은 낮은 것으로 우주를 다로 새겨 각기 2선이 되게 하여 장식적인 멋을 더하였다. 옥개석은 받침 표현이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옥신과 옥개석은 7층까지 급격한 체감없이 거의 같은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탑의 형태는 전형적인 고려탑 양식이며 경기도 지방에서 이루어지는 특이한 양식이다._안성시청
□ 명 칭 : 안성 청원사칠층석탑(安城淸源寺七層石塔)
□ 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통심길 16-102(성은리 397)
□ 출토지 : 소재지와 동일
□ 분 류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6호
□ 시 대 : 고려시대
안성 청원사 대웅전은 전면이 석축(石築)으로 쌓고, 후면 벽에 토단(土壇)으로 쌓은 8.5m×8m 크기의 기단(基壇)위에 남서 20˚ 방향으로 세워진 건물로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로 방풍판을 갖춘 다포계의 맞배 지붕집으로 공포는 1개씩 배치되었고, 내부에는 후면 벽에 붙여서 불단을 설치하여 아미타 삼존불을 봉안하였다.
건물이 처음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지만, 2001년 수리 때 상량문이 발견되어, 1740년과 1854년에 각각 크게 수리했던 것을 알 수 있다._경기문화재단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명 칭 : 안성 청원사대웅전(安城淸源寺大雄殿)
□ 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통심길 16-102(성은리 397)
□ 출토지 : 소재지와 동일
□ 분 류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4호
□ 시 대 : 고려시대
▼ 아담하고 아름다운 청원사의 대웅전인데, 기와를 자세히 보면 중앙의 기와는 청기와로 되어 있으며, 용마루의 기와도 부분적으로 청기와인데 무슨 뜻이 있을 것입니다.
▼ 자료사진으로 보는 대웅전입니다. 지붕의 청기와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좌, 우의 석등은 지금은 없습니다.
▼ 자료사진으로 보는 대웅전의 모습입니다. 대웅전 앞에 알 수 없는 장명등이 보이는데, 무덤 앞에 있어여 할 장명등이 대웅전 앞에 있는것이 좀 이상합니다만, 현재는 없어졌습니다.
▼ 대웅전 옆에서 보면 대웅전과 탑 사이가 매우 여유가 있어 보이는데, 자료사진에서 보면 축대가 넓었는데, 지금은 축대가 좁은 것을 보면 축대의 폭을 줄이고 새롭게 축대를 쌓았습니다
▼ 청원사 대웅전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본존불은 석가모니불이 아닌 아미타여래좌상이며, 석조나, 목조가 아닌 건칠불상(※) 이라는 점이 특이합니다. 협시보살은 목조로 되어 있으며, 표면은 금장보살입니다.
1973년에 개금불사(※)를 위해서 뱃속을 열었을때 수많은 복장유물이 나왔는데, 유물중에는 청원사의 유래를 알 수 있는 고려 충렬왕 6년(1280년)에 발원한 감지은니보살선계경 8권과, 아진견불자(我鎭見佛見者) 청원사일동(淸願寺一同)이라고 비단에 쓰인 묵서등이 나왔습니다.
또한 2001년 대웅전 수리때 상량문이 나왔는데, 거기에는 1740년(영조16년)과 1854년(철종5년) 크게 중수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감지은니보살선계경 8권은 국가보물로 지정되어 동국대학교박물관에 있으며, 나머지 유물은 안성 청원사 건칠아미타여래불좌상복장전적 이라는 이름으로 용주사 성보박물과에 있습니다.
지금 안성 청원사에는 지방문화재로 칠층석탑과 대웅전만 있고 국보는 없습니다
※ 건칠불상(乾漆佛像) : 보통은 불상을 만들때 철, 돌, 흙, 나무등으로 만드는데, 건칠불상은 먼저 흙으로 불상을 만들고, 흙위에 베나 섬유등을 흙위에 겹겹이 입히고, 옻칠을 하면서 굳히는데, 옻칠이 굳으면, 내부의 흙은 꺼내서 버리고, 표면은 곱게 표면처리후에 금칠을 한 불상이며, 특징은 가볍다는데, 국내에도 몇 없는 귀중한 불상입니다.
※ 개금불사(改金佛事) :불상에 금을다시입히는 의식
※ 감지은니사경(紺紙銀泥寫經) : 불교경전을 보고 검은빛의 종이에 은물로 베껴쓴 불경입니다
▼ 문화재청에서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의 자세한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2, 40, 41(紺紙銀泥大方廣佛華嚴經周本卷12, 40, 41)』, 사경(寫經3권은 실차난타가 번역한 80권본인 『대방광불화엄경』주본 중에서 세 권에 해당된다. 개인 발원경으로는 특이하게 권41에 신장상이 권수화로 새겨져 있고, 권40의 권미(卷尾)에 “시태정원년(1324)갑자팔월 일우금생 근지(時泰定元秊(1324)甲子八月日寓金生謹誌)”라는 사성기가 있어 사경의 조성 경위를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사경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16(紺紙銀泥大方廣佛華嚴經貞元本卷16)』은 반야가 번역한 『대방광불화엄경』정원본 40권본 중의 권16이다. 권의 끝에는 사성기가 있는데, 함께 발견된 『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40의 끝에 있는 사성기와 내용이 유사하다.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40을 완성한 지 4개월 뒤인 충숙왕 11(1324)년 12월에 완성한 사경이다. 이 사경은 정원본 40권중의 한 권이지만 유려한 서체의 고려 사경으로 사성한 연유를 알 수 있다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
▼ 대웅전 왼쪽의 극락전이며, 한글로 극락세계라는 현판을 걸었습니다
▼ 대웅전과 극락전의 사이에 있는 칠층석탑을 바라보면 또 다른 석탑을 보는 듯한 맛이 납니다.
▼ 대웅전 뒷쪽에는 삼성각과 요사채인 불식선원 (不識禪院)이 있습니다.
▼ 청원사 뒷쪽길을 통해 내려갑니다
▼ 청원사에서 다시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이제 또 다시 속세로 들어 가는 길 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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