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기념물 제73호(1979.9.3)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656번지

 

별망성지(別望城址)는 남양만을 연하여 해안으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을 수 있는 요새지를 형성 코자 독립봉의 배면 정상에서 해안선를 따라 양쪽골짜기 사이를 돌로 쌓아 만든 해안산성이다.

 

평지에는 군영지(軍營地)로 보이는 터가 남아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는 1656년(효종 7년) 에 이곳의 초지진을 강화도로 옮겨 이곳을 1초지, 강화도의 것을 2초지라 하였다.

 

성 가운데에서는 청자 및 도자기 조각들이 출토되었으며 능선 끝에는 선사 시대의 패총(조개무덤)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은 당나라 사신의 왕래가 있었던 곳으로 우리나라의 영접사(손님을 마중하고 배웅하는 사람)가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임진왜란과 6.25동란을 거치는 동안 거의 파괴되어 현재는 인근의 목내산성 군자산성과 같이 이 지역이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결쳐 남양만을 방어하는 서해안의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복원하여 높이 1.45m, 길이 225m규모가 되었다_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이 성곽은 발굴조사후 1988년 복원한 성곽입니다. 일단 여기에 성곽이 있었단 하는 정도로만 쌓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축성법으로 본다면 아쉬움이 드는 성곽의 모습입니다.

 

▼ 지도에서 별망성의 위치를 보면 왜 여기가 수군이 주둔 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지금은 시화호로 막혀 있지만 옛날에는 배들이 충분히 드나들었던 수로가 형성되어 있어서 뱃길로 나가면 영흥도와 용유도 사이의 뱃길을 감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조선 수군 만호가 지휘하는 수군이 주둔하던 지금의 별망성 자리는 초지진(草芝鎭)이라고 하였는데, 1656년(효종7년)에 강화도 길상면으로 옮겼지만 지명은 지금까지 남아서 안산시 초지동이 되었습니다.

 

안산의 초지진이 강화도 길상면으로 군영을 옯겼지만, 수군일부가 남아 있어서 안산의 초지진을 일초지, 강화도의 초지진을 이초지라고 하다가 어느때 부터인가 안산의 수군군영의 임무가 없어지면서 강화도의 2초지진을 그냥 초지진으로 하였던것 같습니다.

 

수군만호(水軍萬戶)의 직책을 지금의 해군과 비교해 보면 전대장(대령) 정도 되며, 육군으로 보면 연대장급의 지휘권이 있는 직책이었으며, 군의 지휘 직책으로 보면, 수군절도사, 수군첨절제사, 수군만호 순으로 보면 될 듯 합니다. 

 

만호(萬戶)라는 직급은 고려시대에 몽고군으로 들어 왔다고 하며, 십진법으로 나누어서, 만호(萬戶), 천호(千戶), 백호(百戶)등으로 지휘권이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만호계급만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 자료사진으로 보는 안산의 옛날 초지리(초지동)의 1970년대말의 모습니다. 안산반월공단 기반시설공사중 찍은 모습으로, 지금의 초지동과 비교하면, 상상이 안 됩니다. 멀리 보이는 산은 수리산으로 보입니다_안산시사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공업단지 공장들에게 둘러 싸인 별망성지는 특별한 관심이 없으면, 찾아보기 어려운 유적 입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별망성지의 성곽 모양은 삼태기 모양을 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보는 산성이나, 읍성의 모양은 아닌듯 합니다.

주차장에 차가 많아서 뒷편 도로가에서 올라 왔습니다.

 

▼ 자료사진으로 보는 별망산(별망성지)의 모습입니다. 1977년 안산반월공단의 개발사업이 시작되는때에 기반시설공사중 찍은 모습으로 보입니다. 서쪽에서 찍은 모습이며, 별망산이 거의 해안과 맞닿아 있는듯이 보이는데, 지금은 이 지역이 전부 공장들로 채워졌습니다_안사시사에서 인용하였습니다 


별망성은 조선 초기 남양만을 거쳐 해안으로 침입하는 외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바닷가에 있는 두 곳의 얕은 산봉우리를 서로 연결하여 돌로 쌓은 성이다. 왜구의 침입이 잦은 해안 지역에 만호부(萬戶府)가 설치되었다는 기록과 연관하여 이 별망성지의 기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처음에는 수군만호영(水軍萬戶營)이 있었으나 갯벌이 밀려 나가 배가 다닐 수 없게 되어 인천의 영종포영으로 옮겼다가, 선박의 출입이 가능해지자 다시 이곳으로 왔다는 기록이 있어 지역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성의 크기는 둘레가 1,040m이고 높이가 1.2~2.1m라는 옛 기록이 있지만, 한국전쟁 때 대부분 파괴되었던 것을 1988년 복원하였다. 현재 우리가 보는 것은 복원된 것으로 길이 225m, 높이 1.45m이며, 성벽의 바깥은 산(山)돌을 수직에 가깝도록 쌓았고 안쪽은 완만하게 흙을 다져 놓은 상태이다.

 

이처럼 바닷가에서 내륙을 향하여 방어하도록 쌓은 성 안에는 곳곳에 군대가 머물렀던 60㎠ 안팎의 편평한 터가 있는데 그 언저리에는 자기와 기와 조각이 많이 흩어져 있다. 이 성의 이웃에는 목내리산성, 군자산성 등이 남양만을 끼고 함께 있어 이곳이 육지와 연결되는 서해안의 요새였음을 알 수 있다. (자료출처 : 『경기문화재총람-도지정편』, 경기도, 2005)


▼ 별망성 내부는 문화재라서 그런지 잡풀들이 제거 되어 있습니다. 별망성의 유래는 기록이 없어서 알 수 는 없지만, 초지진이 강화도로 군영을 옯겨지면서 한동안 수군의 보루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으로 짐작하여 봅니다.

 

▼ 현재 별망성지에는 두곳의 치성(雉聖)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 치성 좌,우로 보이는 성 밖의 모습입니다. 

 

▼ 다시 성 안으로 들어와서 보면 두번째 치성을 봅니다

 

▼ 두번째 치성에서 시화호 끝 부분을 보게 됩니다. 

 

▼ 두번째 치성에서 가파른 성벽을 따라서 내려가 봅니다. 멀리 보이는 수로 좌, 우로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는데, 수로 주변을 공원으로 가꾸면서 주민들에게는 편안한 쉼터를 제공 하고 있습니다

 

▼ 성곽 끝까지 왔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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