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객사가 있는 안산읍성의 축조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조사 결과 고려 후기 이후에 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안산관아는 처음에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에 있었으나 1441년(세종 23)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으로 옮겼고, 이후 1669년(현종 10) 당시 자리에서 동남쪽 약 50m 지점인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정문인 평근루(平近樓)와 객사(2010년 복원)·동헌 등의 행정 시설과 옥사(獄舍)·창고가 있었으나 모두 파괴되었다. _디지탈안산문화대전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안산읍성 및 관아지는 경기도 기념물 제127호(1991.10.19)

□ 경기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 256-1

□ 주차장은 수암봉 등산로 끝에 있는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됩니다(안산객사 주변은 주차공간 없음)


▼ 안산읍성의 관아지(官衙址)는 현재 발굴조사 및 복원공사중으로 가람막으로 가려져 있으며, 조선시대의 객사인 취암지관이 읍성앞에 멋지게 세워져 있읍니다. 전형적인 객사의 모습으로 중앙의 정청과 좌익사와 우익사가 세칸식씩 동일한 구조입니다.

 

▼ 안산객사의 설명이 잘 되어 있습니다. 취암지관은 2010년에 건립되었습니다

 

▼ 전패와 궐패의 자료사진입니다_콘텐츠진흥원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조선시대 객사의 정청(객사의 중앙)에는 반드시 전패,궐패를 모셔놓고, 지방관들이 정월 초하루, 동지, 국왕의 탄일에 임지의 객사 정청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두고 인사드리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이런 의식을 망궐례(望闕禮)라고 하는데, 만약 지방관들이 망궐례를 소홀히 하거나, 전,궐패의 관리를 소홀히 하면 엄한 벌을 내렸다고 하며, 보통 파직에 귀향까지 갔는데, 전패와 궐패가 곧 왕을 상징하기 때문 입니다

 

▼ 안산읍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디지탈안산대전에서 인용하여 알아 보았습니다.

 

[개설] 안산읍성 및 관아지는 1989년 안산동장 장혁순과 시흥시청의 이승언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1990년 6월부터 8월까지 한양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규모와 성격이 확인되었다. 이후 1999년 7월 26일부터 11월 22일까지 수원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였고, 2007년 8월 22일부터 2008년 4월 13일까지 한양대학교 박물관에서 연장 발굴·조사하였다.

 

[건립경위] 안산읍성은 당시 해안으로 침입하던 왜구에 대비하기 위하여 축조하였으며, 안산읍성 바로 뒤편의 수리산(修理山)이 험한 산세여서 따로 산성을 축조하지 않아도 피란이 가능하였으리라 짐작된다. 

 

[형태] 안산읍성(安山邑城)은 옛 안산군의 진산인 수암봉(秀巖峰)에서 서쪽으로 길게 뻗은 소금절골과 작은골 사이의 능선을 이용하여 평지를 감싸도록 쌓은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이다. 이렇게 자연 지세를 이용한 읍성의 형태는 한국 성곽의 특징으로, 산성과 평지성의 절충식이다. 안산읍성은 장방형으로 쌓아 각 모서리가 약간 둥글게 처리된 말각사각형(抹角四角形) 형태로 되어 있다. 전체 둘레는 772.2m로 북벽은 219.4m, 동벽은 180.6m, 남벽은 197.5m, 서벽은 174.7m이다.

 

[축조방법] 성벽의 내면과 외면을 쌓아 올리는 공법을 사용하였고, 성벽 일부는 외면만을 석축하고 안쪽은 흙과 잡석으로 쌓아 올렸다. 주요 방어 지역인 서쪽은 2중으로 성벽을 쌓았다. 성벽의 높이는 2~3m, 폭은 상부가 3m, 하단부가 7m 정도이며, 보존 상태는 다른 유적지에 비하여 양호한 편이다. 안산읍성 내부의 면적은 36,000㎡로 곳곳에 건물 터로 보이는 넓고 평탄한 곳이 있고, 성의 서북쪽과 동북쪽 상단에는 장대지(將臺地)가 있어 넓은 평야를 한눈에 관망할 수 있다. 특히 배후에 해발 395m인 수암봉을 의지하고 있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새이다. 안산읍성의 남쪽에는 조선시대 안산관아로 사용되다가 일제강점기 수암면사무소로 이용되었던 건물 터가 남아 있다.

 

[현황] 안산읍성 및 관아지는 1991년 10월 19일 경기도 기념물 제127호로 지정되었다. 2009년 현재 소유자는 국유이고, 관리자는 안산시이다. 곳곳에서 주춧돌과 기와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안산시에서는 안산읍성 종합 정비 계획을 세워 안산읍성에 대한 체계적인 정비 사업과 유적의 보존 및 관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하기로 하고 한양대학교 박물관에 조사를 의뢰하여 발굴 중에 있다. [의의와 평가] 안산읍성 및 관아지는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읍성 구조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현재의 안산객사(취암지관)은 2010년에 지어진 건물이며, 조선시대때의 객사터에 새로 복원 한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안산관아는 처음에는 단원구 목내동 일대에 있다가, 마지막으로 1669년(현종10년)에 상록구 수암동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게 되었으며. 그 후 일제강점기부터 1965년까지 이곳에는 수암면사무소가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자료에는 객사가 안산읍성 동쪽에 있었다고 하며, 지금의 안산객사가 있는 자리인지는 불분명 합니다 

 

▼ 안내문에 보면 현재 안산객사앞 공터는 일제강점기때 부터 수암면사소(1922~1965)가 있었다고 합니다. 수암면사무소가 있던 자리를 발조사한 결과 다수의 석재를 모아서 한곳에 모아 놓은 모습입니다. 안산읍성이 복원되면 다시 와 봐야 겠습니다

 

▼ 500년은 되어 보이는 나무와 멀리 수암봉이 보입니다.  안산객사의 현판의 취암지관도 수암봉(秀巖峯)에서 인용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수암봉은 원래 독수리봉이라는 취암(鷲岩)이었다가, 산세가 수려하다 하여 조선 말기에 수암봉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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