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온양시의 중심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온양의 치소였던 관아가 있었는데, 신라시대때는 온주(溫州)라는 지명이었으며, 그 치소가 조선시대에는 온주동헌이었으며, 관아의 정문이 온주아문이었습니다.
온양은 충남 아산시의 중심 시가지(온양 1~6동)를 일컫는 지명으로, 원래는 온양시였으나, 1995년 아산군과의 시군 통폐합으로 아산시로 변경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아산시보다는 옛날의 온양시가 더 거부감이 덜 한 느낌입니다.
▼ 조선 온양군의 관아 정문인 온주아문입니다. 조선시대 관아의 정문은 대부분 이런 누각(樓閣)형태의 건물이 대부분인데, 이러한 형태의 건물은 조선후기때 흥선대원군이 관아의 위엄성을 높히는 정책으로 인해서 2층 누각형태로 지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조선관아를 복원하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 온주아문 옆에는 비석들을 모아놓은 비석군이 있습니다. 대부분 지방수령들의 치세공적비들입니다
▼ 현판이 청색바탕에 하얀글씨로서 좀 특이하게 보입니다. 온주라는 지명은 신라때 온양군을 온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 온주아문 양옆으로 특이한 것이 보이는데, 전부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고, 펌푸가 얹혀져 있으며, 수레 형식으로 바퀴가 달려 있는데, 조선후기때 들여온 불끄는 기계입니다. 고종때 들여왔는데, 궁궐에 불이 났을때 화재진압용으로 배치하였습니다
▼ 화재진압 도구를 싣고 다니던 수레인듯이 보입니다.
▼ 온주아문 안으로 보이는 건물이 동헌입니다
▼ 온주아문을 안쪽에서 보는 모습입니다.
▼ 동헌 건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쓸쓸한 모습입니다. 관아에는 여러기능을 담당하던 청(廳)들이 있었는데, 아마도 일제강점기때 대부분 헐린것으로 보입니다.
대부분의 관아는 일제강점기때는 물론 이전부터 일본군대, 헌병대 또는 경찰서, 경찰지서, 주재소등의 여러 용도로 관아의 건물등이 사용되면서, 파괴 되거나, 일부만 남기고 해방후에도, 파출소, 관공서등의 용도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 온주동헌의 내력을 적어 놓았는데, 최종적으로 1993년 4월 부터, 1994년 5월까지 1년1개월간의 공사를 거쳐서 원형대로 복원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온주아문에서 서쪽으로 100미터 정도의 거리에는 당간지주가 있습니다. 아마도 조선시때 까지는 절터가 있었던 곳인듯 합니다마는, 일제강점기때 부터 급격하게 변화해온 온양이었으므로 당간지주옆으로 도로가 만들어지고, 건물이 들어서면서 고립된 모습으로 남아있게 된 듯 합니다. 안내문을 보면 고려시대의 당간지주라고 합니다.
▼ 읍내동의 당간지주의 옛날사진을 몇장 보는데, 지주는 오랜세월 토사가 쌓이면서 밑둥이 흙에 묻혀 있는 모습입니다만, 점차 문화재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당간지주의 주변의 정리와 개선작업으로 현재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_출처는 문화재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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