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사 삼층석탑은 충청남도 아산시 장존동에 있는 고려 초기의 삼층 돌탑입니다.

- 접근성 : 양호합니다

- 주차장 : 있습니다

- 주소 : 아산시 설화산길 156[장존동 500]오봉사경내

- 이력 : 2015년 8월 5일 아산시 향토문화유산(지정번호는 없는듯 합니다)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은 2015년 8월 5일 아산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온양군읍지」의 기록, 『1872년 군현지도』「온양군」의 삼층석탑 그림과 표기 등을 보면 오봉사는 서라산 북쪽에 있던 조선시대 남산사(南山寺)였으며, 온양의 남산 격인 서라산은 설화산의 본래 우리말 이름이며 조선시대의 ‘西達山’은 ‘서달산’이 아닌 ‘서라산’의 한자 표기입니다.

 

이 서라산의 다섯 개 봉우리여서 오봉산이라 하고, 남산사였던 절을 오봉암[2015년 오봉사로 개칭]이라 한 것은 모두 일제강점기의 일이었습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주차장에서 계단을 오르다 보면 오봉사의 대웅전 앞마당에 삼층석탑이 보입니다. 보기에는 아담하게 보입니다

 

▼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은 아산시 설화산길 156[장존동 500] 오봉사 경내에 있으며,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은 대웅전의 석축 아래 절 마당에 세워져 있습니다. 현재 위치는 조성 당시의 위치가 아니며 정확한 원위치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은 문화재 지정을 위한 2010년의 조사 과정에서 건립 경위를 기록한 명문이 발견되어 987년(성종 6)에 탕정군 호족 정홍렴(鄭弘廉)의 가족이 조성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명문은 상층기단 갑석의 윗면에 8행 55자로 음각되어 있다. 987년(옹희 4) 2월에 탕정군 제2호장(戶長) 정홍렴의 큰누이가 공경하는 마음으로 보탑을 조성했으며, 탑을 깎은 장인인 대백사(大伯士)는 덕달(德達)이고, 석탑 조성 불사의 실무 책임자인 도량행자(道粮行者)는 귀달(貴達), 명문을 짓고 새긴 집필승(執筆僧)은 법숭(法崇)이라는 내용이다.

 

옹희 4년은 고려 성종 6년으로 서기 987년이니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이 고려 초기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석문]

옹희사년정해이월일(雍凞四秊丁亥二月日),

보살계제자탕정군(菩薩戒第子湯井郡),

제이호장정홍렴의(第二戶長鄭弘廉矣),

가구신명대낭구명지(家口信名大娘救命之),

쌍경조보탑(双敬造寶塔), 대백사덕달(大伯士德達), 도량행자귀달(道粮行者貴達), 집필승법숭(執筆僧法崇)

 

[옹희사년 정해 이월 일에 보살계 제자 탕정군 제2호장 정홍렴의 집안에서 청신자인 큰누이가 구명을 기원하며 공경하는 마음으로 보탑을 조성하옵니다. 대백사 덕달, 도량행자 귀달, 집필승 법숭] 5행의 첫 글자 ‘双(쌍)’은 ‘幷(병)’ 또는 다른 글자로 판독될 수도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현황]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의 기단부 지대석과 상륜부가 없다. 현재 위치가 조성 당시의 위치가 아니며, 현재 위치 아래[북쪽] 40여m 지점에 무너진 상태로 있었다고 하며, 절 아래 ‘자비원’이라는 건물 앞에 있었다고도 하는데 자비원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는다.

 

60여 년 전에 현재 위치로 옮겨 세웠다고 하니 대략 1960년 전후의 일이다. 2010년에 충청남도 문화재로 지정을 추진할 당시 문화재 지정에 반대하던 주민들은 아산 오봉사 삼층석탑이 여러 부재와 새로 만든 석재를 쌓아 만든 가치 없는 탑이라고 하였으나 상륜부의 자연석 외에는 모두 원래의 석탑 부재로 판단된다.

 

정확히 어느 시기였는지 알 수 없으나 무너지는 과정에서 파손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옥개석의 훼손이 심한 편이다. 지금의 기단부 상층 기단석은 윗부분 너비가 아래보다 약간 넓다. 전통 건축의 안쏠림을 생각하면 옮겨 세울 당시 뒤집어 놓은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오봉사는 인적이 거의 없는 조용한 절집이며, 종무소는 지은지 얼마 안된 깨끗한 건물입니다. 삼층석탑만 보고 조용히 내려 왔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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