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아산시 온양동에 있는 온양관광호텔 안에는 영괴대와 신정비,온천동 석불,석탑등의 문화재가 있습니다. 현재의 온양관광호텔은 조선시대에는 온양행궁이었으며, 일제강점기때는 신정관, 해방후에는 온양관광호텔로 시대적 흐름에 따라서 명칭이 바뀌기는 했지만, 온천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 온양행궁터(온양관광호텔)로 가기전에 온양온천역에 잠시 가 봤습니다. 온양온천역은 장항선(용산~익산)새마을,무궁화호, 그리고, 서울~신창간을 운행하는 누리로호, 서울지하철 1호선이 운행되고 있으며, KTX는 정차하지 않습니다.
※ 온양온천역의 이름은 근처의 온양온천에서 가져 왔습니다. 온양온천역의 역사를 잠시 살펴 보면,
- 1922년 6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개시,
- 2008년 12월 15일 수도권전철이 운행개시되었습니다.
▼ 자료사진으로 보는 온양온천역의 사진이며, 일제강점기때 역의 모습입니다. 기차통학 하던때(1970년대)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옛날에는 탑승 할 때만 건물안에서 승차권을 구입하고, 개찰구에서 검표를 받은후에 기차를 탔으며, 기차에서 내리고 난 후에는 역의 건물 옆으로 그냥 빠져 나왔습니다_사진은 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온양온천역 출구에는 빠져 나오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택시등이 보입니다.
▼ 온양온천역 앞 거리의 모습입니다. 물론 일제강점기때의 모습입니다. 일본식 가옥이 즐비한 거리에 벚꽃이 한창입니다
▼ 현재의 역 이전(2008년이전)의 온양온천역의 모습입니다._NAMU 위키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옛날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최신식 건물로 탈바꿈 한 온양온천역입니다
▼ 온양온천역 광장 끝에는 이충무공기념비(비각)이 있습니다. 비각 내부에는 기념비가 있는데, 내용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 영괴대와 신청비가 있는 온양관광호텔에 왔습니다. 영괴대가 있는 곳은 호텔 북쪽담장에 출입문이 있으며, 호텔 내부와는 차단되어 있습니다. 온양행궁의 일부가 남아 있는 것 같은 모습입니다. 이문은 아마도 행궁의 북문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위치에 있습니다
▼ 영괴대가 있는 곳은 호텔과는 별개의 공간으로 되어 있으며, 영괴대, 온천리 불상, 석탑등이 있습니다
▼ 온천리 석불과 알 수 없는 석물2개가 보입니다. 온천리석불만 정자각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나머지 두개의 석물은 정자각 밖에 있습니다
▼ 온천리 석불을 자세히 보면, 얼굴과 몸체는 완전히 달라 보여서 원래 부터 하나의 석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 두개의 석물중에서 왼쪽은 승복을 입은 모습으로 얼굴은 완전히 마모되었으며, 오른쪽은 십이지신상중 하나로 보이는 석물입니다.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어 보이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습니다.
영괴대는 장헌세자[사도세자]가 영조35년(1760년)의 온행 중에 활쏘기를 했던 자리에 세워진 사대(射臺)이다. 영조는 장헌세자가 활을 쏘던 사대 주위에 3그루의 느티나무를 심게 하였는데, 정조가 즉위하고 부친의 신원(伸冤)을 도모하면서 온행 중에 백성들에게 보여준 장헌세자의 성덕이 칭송되었다.
정조에게 부친 장헌세자가 온양온천 행행 시 백성에게 보여준 덕화(德化)와 활터에 심은 느티나무는 부친의 성덕을 추억할 좋은 소재였으므로, 정조는 1795년(정조 19) 4월에 본격적으로 느티나무 보전을 위해 영괴대를 쌓고 영괴대비와 비각을 축조하여 장헌세자를 기념하게 하였다. 또한, 그 시말을 기록한 『온궁사실』을 발간하였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사대(射臺) 주위에 심은 세그루의 괴목(槐木;느티나무)은 수령이 다하여 없어지고, 영괴대비만 남아 있습니다.
▼ 일제강점기때의 영괴대의 모습입니다. 송석하소장이라는 문구가 눈에 띕니다
▼ 영괴대비의 글씨는 정조의 어필입니다.
▼ 영괴대비의 뒷 글씨는 정조가 짓고, 당대 명필이던, 윤행임이 썼는데, 윤행임은 영조35년(1760년)에 왕이 장헌세자를 동행하여 왔을때 온양군수였던 윤임의 아들입니다.
영괴대의 비문의 내용을 찾아보니,
어필 영괴대로 시작하여 부친(사도세자)를 생각하는 마음과 정조 즉위 20년에 영괴대의 이름을 쓰고, 영조 36년에 온양군수 윤임에게 명하여 느티나무 세그루를 심게 하였는데, 지금은 나무가 무성하게 자랐고, 영괴대의 비문을 윤행임에게 명하였으며, 끝머리에는 윤행임이 왕의 명을 받들어 쓴다는 내용입니다.
▼ 일제강점기때의 온양행궁을 개조하여 만든 온양관의 영괴대로 추정되는 비각의 모습입니다
▼ 구석에는 소나무 밑에 5층 석탑이 세워져 있는데 특별한 설명이 없었습니다. 고려시대 석탑으로 1984년 5월 17일 충남문화재자료에 지정되었다가, 1987년12월 28일 충남문화재자료에서 해제되었습니다. 지대석은 땅속에 묻혀 있고, 상륜부는 소나무에 의해 변형되었습니다
▼ 탑신 몸돌면에는 희미한 그림이 새겨져 있습니다
▼ 신정비는 온양관광호텔 내부로 들어가서 봐야 합니다. 정문에서 왼쪽에 있습니다.
▼ 일제강점기때의 신정비의 모습입니다. 신정비의 보호각이 지금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 세조가 온천옆에서 냉수가 나오는 샘을 발견하여 발견하여 이를 신정(新井)이라고 했는 그 손자 성종(7년)이 신정비를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 신정비 옆에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그 신정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물은 없었습니다
▼ 온양관광호텔은 온양행궁터에 세워진 현대식 호텔입니다. 온양행궁은 일본인들에 의해 상업적으로 이용이 되면서 남은 흔적은 거의 없어져서 이곳이 행궁터라는 느낌은 하나도 안느껴집니다.
온양온천은 문헌상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300여 년 전 백제때에는 탕정군(湯井郡), 신라때에는 탕정주, 고려때에는 온수군(溫水郡)으로 지칭되었다. 1442년 세종이 온양온천 행차시 온양군으로 개칭된 후 줄곧 온양으로 불리워 왔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설때 일본인들이 온천의 상업성에 주목하여, 행궁을 강제적으로 인수하여 1905년 온양온천주식회사에서 온양관 신축을 하였다. 이후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 미군정청 철도국, 교통부 철도국 등의 인수 과정을 거치며 신정관, 신정관호텔, 온양철도호텔 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1991년 5월에 현재의 온양관광호텔이 설립되었다_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여기에서 일제강점기때는 온양관에서 줄곧 신정관(新井館)으로 온천명칭을 사용해왔으며, 현재는 온양관광호텔이 공식 명칭입니다. 현재 호텔옆에는 신정관이라는 온천겸여관이 있기는 하지만, 원래 온양관광호텔의 일제강점기때의 신정관과는 별개 명칭입니다
자료사진으로 온양의 일제강점기때의 모습을 보겠습니다_사진은 문화청(또는 박물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1906년~1907년 헤르만산더는 일본독일대사관 무관으로 일본인 사진사를 대동하여 한국, 만주등을 돌아 보면서 여러 사진들을 찍었는데, 이 사진은 온양행궁의 사진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행궁이 훼손되기전의 사진으로 보입니다.
▼ 온양관광호텔 홈피에는 온양행궁의 복원도를 올려놓았는데, 담장 내외로 초가집이 윗사진과 유사합니다
▼ 온양행궁에서 영괴대의 위치를 표시한 그림인데, 영괴대는 북문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영괴대의 세그루 느티나무가 유난히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신령스러운 느티나무라는 영괴(靈영묘할영,槐느티나무괴)의 뜻인듯 합니다
그림에 써 있는 글씨는 현재 영괴대비의 후면 내용과 동일합니다. 정조가 어필로 작성하고, 윤형임이 비문을 작성하였습니다
▼ 행궁건물을 온양관으로 개조하여 영업을 하는 일본인 소유의 온양행궁입니다. 일본인들은 행궁을 거의 강제로 빼앗다시피 하여 온양관으로 간판을 달고, 일본인들을 상대로 온천영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온양관(신정관 전신이며, 구 온양행궁)의 앞에는 비각이 하나 보이는데, 무슨 비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 일제강점기때의 사진으로 온양읍 일대의 모습으로, 사진의 중앙이 온양행궁터인듯 하고, 오른쪽에는 기차역이 보입니다
▼ 1912년 온양군의 중심부 사진이며 중앙에는 온양행궁(온양관)인지, 관아건물인지 모를 기와건물이 보이며, 주변에는 몇채의 일본식 건물이 보입니다.
▼ 일본인들이 남긴 온양온천의 신정관 설계도 입니다
▼ 온양온천의 신정관 개관기념 사진인듯 합니다
▼ 신정관의 정문 모습입니다
▼ 신정관 내부의 탕 모습인데, 조선여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일반 조선인들이 드나들기 어려웠던 신정관의 욕탕안에 조선여인들은 좀 특별히 일본인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사람들의 부인이었던것으로 보입니다. 그 당시의 욕탕사진이라지만 너무 잘 보여서 모자이크 처리 좀 했습니다
▼ 신정관 주위의 모습입니다.
▼ 온양의 신정관과는 다른 탕정관의 사진입니다. 일제강점기때는 온양에는 무수히 많은 온천여관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일본인들은 온양에 일반 온천영업을 하기도 했지만, 일본군,경찰들을 위한 휴양소, 또는 요양소를 만들었습니다.
사진은 용산위수병원온양분원전경입니다.
▼ 사진의 제목을 보면, 경찰요양소라고 인쇄되어 있습니다
▼ 일제강점기때의 온양을 광고하는 관광지도인데, 장항선의 역명을 기록하고 있으며, 중앙의 온양온천역 중심을 크게 그렸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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