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팔색길 8코스(화성성곽길) 1부(팔달문->화서문)에 이어서 2부는 화서문에서 연무대까지의 사진으로 꾸며보았습니다. 수원화성에서 어느것 하나, 대중 보고 지나칠 수 있는 곳은 하나도 없는것 같습니다. 몇년만에 화성성곽길을 돌다보니, 전에 안보이던 곳도 보이고, 예전과 현재의 다른점도 꼼꼼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 화성성곽길 2부는 화서문에서 부터 동장대(연무대)까지의 사진입니다.
▼ 화서문의 모습입니다. 팔달문이나, 장안문과는 다른 옹성의 구조를 갖고 있으며, 동쪽의 창룡문과 구조가 같습니다.
▼ 화서문의 정면의 모습이며, 한국전쟁(6.25전쟁)중에 거의 파괴된 장안문이나, 창룡문과 달리 온전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 앞에서 보는 화서문의 모습입니다.
▼ 화서문의 길에서 보는 모습인데, 지금의 모습을 보고 과거의 수원시 로고가 만들어졌습니다
- 화서문의 서북공심돈과 성곽을 이미지로 바꿔서 수원시의 로고가 만들어졌는데, 시장이 바뀌면서 로고를 바꾸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예전의 화서문 서북공심돈의 이미지가 좀 촌스럽기는 해도 더 친근감이 있고, 수원시가 화성(華城)의 도시라는 것을 한번에 알려주는 로고라고 생각이 됩니다.
▼ 화서문 하나였으면 이렇게 멋진 그림을 볼 수 없었겠지만, 서북 공심돈이라는 멋진 조연건물이 있어서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의 조합이 이렇게 멋지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 화서문의 옹성위에서 바라보는 서북공심돈입니다. 만약에 전돌(흙을 구워서 만드는 벽돌)이라는 자재가 없었다면 서북공심돈이라는 건물자체를 만들 수 가 없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화성에 전돌을 이용한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 화서문 옹성위에서 바라보는 서북각루와 성곽의 모습입니다.
▼ 화서문을 지나서 뒤로 바라보는 모습인데, 저편에 초가집으로 보이는 집은 주막이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의 사진을 보면 그때도 저 초가집은 있었습니다.
▼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을 지나서 북포루 방향으로 가면서 돌아보면서 한장 담습니다.
▼ 북포루방향으로 가는 모습인데, 수원시민들도 많지만, 다른 도시에서 오신분들도 많이 보입니다.
▼ 북포루(北舖樓)를 서북공심돈의 성곽밖에서 보는 모습입니다. 포루(舖樓)는 성곽을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입니다. 화성에는 포루가 5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 포루는 목조건물로 만들어졌고, 목판으로 사방을 가리고, 망을 볼 수 있는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 북포루에서 바라보는 화서문방향입니다
▼ 북포루앞에 보면 표석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장안위전부두국(長安衛前部頭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장안문수비대의 경계시작지점이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 뒷면에는 화서문수비대의 경계지점의 끝이라는 뜻의 명문이 있습니다.(화서위후부미국)
▼ 성각에 딸린 북포루의 단단한 모습입니다.치성에 전돌로 만든 여장을 얹고, 목조건물에 구멍뚫린 나무판자로 사방을 가렸습니다
▼ 옛날사진을 보면 성곽주변에는 소나무가 엄청 많이 보였는데, 지금은 가끔 느티나무만 보입니다
▼ 다음은 북서포루(北西砲樓)입니다. 북서포루는 화서문(북포루)과 장안문(북서적대) 사이에 있습니다.
▼ 성곽밖에서 보는 북서포루의 모습입니다.
▼ 북서포루는 화성에 있는 5개의 포루와 같은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한 포루는 내부에 3층 구조로 되어 있으며 바교적 중화기 인 화포가 배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지붕의 한쪽에 처마가 없는 포루입니다. 처마가 없는 포루는 북서포루와 북동포루 2곳입니다만, 특별하게 처마가 없는 지붕구조로만든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지형적인 이유가 있지않았나 싶습니다.
▼ 장안문 좌,우로 적대가 하나씩 배치 되어 있는데, 당연히 치성 역활도 하면서 장안문을 보호하는 방어시설물입니다.
▼ 홍이포라는 화포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네덜란드인들이 쓰던 포를 청나라에서 모방하여 만든 제품을 조선 인조때 부터 수입하여 배치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포탄은 장약폭발에 의해 날아가지만 포탄 자체는 폭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 장안문 가까이에 적대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 북서적대에서 바라보는 화서문방향의 성곽과 북서포루입니다.
▼ 북서적대에서 바라보는 장안문입니다. 적대는 치성처럼 만들어졌지만, 일반 치성 보다는 규모가 커서 옹성에 적이 포진하면 적대에서 공격하기 쉽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 서울의 숭례문 보다는 크게 보이는 화성의 장안문입니다. 숭례문은 올라가 보거나 내부를 볼 수 는 없지만 장안문은 내부를 지나가면서 볼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습니다.
▼ 한양의 정문이 숭례문이라면 화성의 정문은 장안문입니다. 정조는 화산의 현릉원(지금의 융릉)에 참배를 하러 갈때 장안문으로 들어와서 행궁에서 하루 묶고 다음날 팔달문으로 나가서 화산에 있는 현릉원에 다다랐습니다.
▼ 수원화성(水原華城)이 정문인 장안문입니다. 사람들이 드나들고, 가까이서 보고, 만져보고 그래야 문화재에 대한 자부심도 생긴다고 생각이 듭니다. 한국전쟁중에 처참히 부서져서 석축만 남았는데, 1970년대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 참고로 1952년 4월의 장안문 사진입니다. 북한군의 공격에 의해서 파괴된것이 아니고, UN군으로 참전한 호주 공군기가 장안문 근처에 있던 북한군의 T34 탱크를 잡으려고 폭탄을 투하하여 장안문 일부가 무너졌지만, 전쟁후에 통행의 안전을 위하여 문루를 완전히 허물었다고 합니다.
▼ 장안문의 홍예를 지나가면서 천장의 그림을 봅니다. 청룡이 그려져 있습니다
▼ 장안문의 옹성인데, 옹성위에 옹성루(樓)가 보입니다. 원래는 없었는데, 순조가 아버지(정조)가 묻혀있는 화산의 건릉에 왔다가 옹성위에 루(樓)를 만들라고 하였답니다.
▼ 장안문을 지나려면 두개의 문을 지나야 합니다.
▼ 장안문 옹성위에서 바라보는 북서적대의 모습입니다.
▼ 장안문의 옹성위에서 바라보는 북동적대의 모습입니다.
▼ 북동적대에서 바라보는 장안문입니다
▼ 북동적대 앞에서 바라보는 장안문의 안쪽의 모습입니다.
▼ 북동적대의 앞모습이며, 북서적대와 구조는 같습니다
▼ 북동적대와 같이 붙어 있는 북동치에서 보는 방화수류정 방향의 모습입니다. 북동치는 북동적대와 같이 붙어 있어서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 북동포루의 모습입니다. 화성에는이러한 포루가 5개가 있으며, 처마가 한쪽이 없는 포루는 북서포루와 같이 2곳입니다. 중화기 화포를 배치하는 곳으로 요새와 같은 역활을 합니다.
▼ 수원시민이나 관광객들로 부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평가되는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입니다.성곽의 기능으로 원래의 건물이 이름이 있는데, 화홍문(華虹門)은 북수문(北水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은 동북각루(東北角樓)라고 하는 원래의 이름이 있습니다만, 수원시민들도 방화수류정이라고 하면 알겠지만, 동북각루라고 하면 거의 모를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외국인들이 사진을 가장 많이 찍는 장소입니다.
▼ 비가 많이 오지 않는 요즈음에는 수원천에 토사가 쌓이면서 잡풀이 크게 자라고 있습니다.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에는 많은 시민들이 더위를 피해서 쉬고 있습니다
▼ 용연에서 흘러내리는 배수구에 있는 용두구입니다. 귀퉁이가 깨졌지만 옛날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 방화수류정과 화홍문이 보이는 용연에서 모습입니다. 방화수류정은 언뜻보면 평범한 언덕위에 세워진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용두(龍頭)라고 하는 암반위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현재 사진에서 소나무 뒤에 화홍문 쪽으로 나무가 많은곳이 용두 입니다
▼ 용연를 지나서 다시 성안으로 들어가려면 암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 암문같지 않은 암문인 북암문입니다. 한가지 특이하게 보이는 것은 암문의 여장인데 일반 성곽의 여장과는 다른게 반원형 여장으로 되어 있고. 높이도 다릅니다. 이러한 암문의 형식은 2곳인데, 또 하는 동암문입니다. 반원형 여장에 뚫린 5개의 구멍은 적이 성문에 화공(火攻)으로 불이 붙으면 물을 쏟아 붇는 구멍이라고 합니다.
▼ 북암문을 성안에서 보는 모습입니다.
▼ 북암문에서 보는 방화수류정 보는 모습인데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마치 그림을 보는듯 합니다.
▼ 마치 날아갈듯한 정자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방화수류정입니다
▼ 동쪽으로 보이는 모습인데, 북암문을 지나 공사중인 건물이 보이는데, 동북포루라는 망루입니다. 각건대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 방화수류정 아래에 보면 잘 안보이는 곳에 전돌이 십자(十)모양으로 일정하게 쌓여 있는데, 누군가 일부러 꾸민것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알아보니, 아마도 정약용이 천주교 신자라는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만, 그당시 내놓고 십자를 그린다는것은 거의 불가는 할 것이고, 아마도 방화수류정을 설계한 건축가의 다른 깊은 뜻이 있었을것이라 생각됩니다.
▼ 좀 높은곳에서 바라보는 방하수류정, 화홍문, 동북포루, 장안문입니다.
▼ 북암문과 동북포루사이에 표석이 보이는데, "장안문좌부"라는 글만 있는데 위치를 표시하는 표석인듯 합니다. 아니면 땅속에 나머지 글자 묻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보수중인 동북포루(각건대)인데 2019년 8월 이후에나 볼 수 있겠습니다.
▼ 동북포루(각건대)에서 내려다 보는 연무대 주변의 모습입니다. 동암문은 나무에 가려서 일부만 보입니다.
▼ 동암문은 암문답게 땅속으로 들어가서 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성곽밖과 안쪽의 높이 차이를 이용하여 암문을 만들었습니다.
▼ 성곽밖에서 보는 동암문입니다. 북암문과 구조는 동일한데, 성곽이 재료가 북암문은 전돌이고, 동암문은 화강암입니다.
▼ 동암문에서 보는 동북포루(東北舖樓)입니다. 화성에는 동북포루가 같은 구조의 포루가 5개가 있습니다.
▼ 연무대앞에서 보는 모습입니다. 화성성곽길-2부는 여기까지 이고 3부에서 이어 나가겠습니다
- 화성성곽길-2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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