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의 솔뫼성지는 소나무가 뫼를 이루고 있다고 해서 순우리말로 ‘솔뫼’라 이름 붙여진 곳으로,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탄생하신 장소를 성역화 한 곳입니다.
성 김대건 신부님은 지금의 충남 당진의 솔뫼에서 태어났으나 출생 몇 년 만에 가족이 천주교 박해를 피해 경기도 용인(지금의 미리내 성지 인근 은이공소)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성 김대건 신부님은 성 피에르 모방 신부의 천거로 마카오에서 유학하며 신학을 공부해 조선인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하였으나, 13개월 밖에 사목생활을 하지 못하고 1846년, 병오박해 때 25세로 나이에 붙잡혀 순교하였습니다.
성 김대건 신부님이 묻혀 있는 곳은 안성의 미리내 성지입니다
지금의 솔뫼성지가 만들어진것은 1906년, 당시 합덕 성당의 크램프 신부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순교 60주년을 맞이하여 김 신부님의 생가터를 고증하였고, 1946년 순교 100주년을 맞아 순교 기념비를 세우면서 성지는 조성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솔뫼성지는 넓은 소나무 군락지와 함께 김대건 신부님의 생가가 복원되었고, 기념관과 성당, 솔뫼 아레나(야외공연장 겸 야외성당), 순례자 식당, 그리고 넓은 주차장을 갖추고 있으며, 현재 국가 지정 문화재인 사적 제529호(‘당진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 생가 일원은 현재 성지로 조성되어 있으며,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성지를 순례하고 '젊은이와의 대화'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 넓은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솔뫼성지의 입구입니다. 넓은 주차장에 입장료(?) 없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려도 좋은 곳입니다.
▼ 2021년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에 "기억과 희망"이라는 대성전을 지었습니다
▼ 기억과 희망의 성전으로 들어 가는 문은 자연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2014년 8월 15일 제 6회 아시아 청년대회, 제3회 한국청년대회가 개최된 이 자리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청년들과 만남을 위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였습니다.
▼ 솔뫼성지로 들어 가는 입구입니다. 종교에 관계없이 한번 들려보면 참 좋습니다
▼ 솔뫼성지는 성 김대건신부의 증조, 작은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김대건신부까지 4대가 순교자가 살았던 곳입니다. 성 김대건 신부의 순교는 한국 천주교의 밑거름이 되었고, 가톨릭 교회의 성인에 오르셨습니다.
※ 성 김대건 신부님의 4대 가문이 순교자인 내역을 알아보겠습니다
- 증조할아버지 복자 김진후(비오 1814년 해미에서 순교),
- 작은할아버지 복자 김종한(안드레아 1816년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
- 아버지 성 김제준(이냐시오 1839년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
- 당고모 성녀 김 데레사(1840년 서울 포청에서 순교)
- 성 김대건 신부님(1846년 서울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 등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이 지금의 솔뫼성이며, ‘한국의 베들레헴’이라 불리기도 한답니다.
▼ 솔뫼성지의 안내도를 보겠습니다.
▼ 솔뫼 아레나인데 마치 야외 예배당처럼 보이는데, 야외공연도 한답니다. 12 사도상이 빙 둘러져 있습니다
▼ 아레나 기둥사이에...
▼ 아레나 주위에 세워져 있는 12 사도상
▼성 김대선 신부님의 생가로 가는 길에 보이는 멋진 나무인데, 메타쉐콰이어 아무처럼 보입니다.
▼ 성 김대건 신부님의 생가 주변
▼ 김진후(비오)..., 11인, 이 자리에서 태어나거나 緣(인연)하여, 푸른 하늘을 보고, 드높은 삶을 너른 들을 바라보고 큰 삶을 대를 바라보고 굳은 삶을 배웠노라...
▼ 생가는 기와집으로 꾸며져 있고, 마당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도하는 모습이 동상(?)으로 안치되어 있습니다.
▼ 성 김대건 신부님의 얼굴은 보관되어 오던 두개골을 정밀측정하여 복원한 얼굴 모습이며, 갸름한 모습입니다.
▼ 2014년 솔뫼성지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 김대건 신부의 초상화에 기도하는 모습을 형상화 한 작품입니다.
▼ 성 김대건 신부님 생가터 뒤쪽에 보이는 소나무 군락지
▼ 솔뫼(소나무 군락지)는 매우 깔끔하게 조경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 산책하기 좋은 곳이며, 오랫동안 머물고 싶어서 시간을 끌기도 하였습니다
▼ 1977년 12월 31일에 세워진 성 김대건 신부 동상
※ 성 김대건 신부님의 연도별 자취
-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솔뫼(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114)의 김해김 씨 집안에서 성 김제준 이냐시오와 장흥 고씨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 1827~1830년경(7~10살) 양친을 따라 서울 청파와 용인 한덕동을 거쳐 골배마실로 이주하였다.
- 1836년 7월(15살) 용인 은이 공소에서 프랑스 선교사 모방 신부에게 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 1836년 12월 2일 모방 신부 앞에서 3명(김대건, 최양업, 최방제)이 신학생이 되기 전에 서약을 하고 다음날 서울을 떠나 마카오로 향하였다.
- 1837년 6월 7일 3명의 신학생(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은 중국 남쪽 지방인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 1837년 11월 마카오에서 동료 최방제(프란치스코)의 죽음
- 1839년 4월 포르투갈의 압력을 피해서 프랑스 신부들과 함께 필리핀으로 피신
- 1839년 11월 김대건과 최양업은 다시 마카오로 돌아와 계속 신학교 공부를 하였다.
- 1842년 2월 프랑스 함대 에리곤호에 승선하여 조선으로 향하였다.
- 1842.12.31일에 1차 조선을 입국하지만 객줏집에서 김대건을 수상쩍게 여기자, 만주로 돌아가야만 했다.
- 1843년 1월 눈 쌓인 만주 북동쪽 벌판과 산악 지대를 가로질러, 함경북도 경원에서 조선 교회 밀사와 접촉을 하였다.
- 1845년 1월 압록강을 건너 보름 뒤에는 서울에 도착하였다.
- 1839년 9월 26일,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는 사위 곽가의 밀고로 체포되어, 서울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었다.
- 1845년 4월, 현석문외 11명의 교우와 외교인을 데리고, 인천 제물포를 출발하여 황해를 통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 1845년 8월 김대건 부제님은 중국 상해 인근 금가항(金家港)에서, 조선인으로서는 최초로 사제로 서품 되었다.
- 1845년 8월 31일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그리고 조선인들과 함께 상해를 출발하여 9월 28일 제주도 해안에 표착하였다가 10월 12일에 상해를 떠난 지 40여 일 만에 강경 황산포에 도착하였다.
- 1845년 말부터, 서울과 인근에서 교리를 가르치고 미사와 성사를 집전하기 시작하였고, 10년 동안 헤어져 만나지 못한 어머니 우르술라를 골배마실에서 만났다.
- 1846년 4월 13일에 마지막으로, 은이 공소에서 미사 집전
- 1846년, 6월 5일 타고 온 배를 징발하려는 관헌과 순위도에서 언쟁을 하다 체포되었다.
- 1846년 6월 21일 서울 포도청으로 압송, 감금되었다.
- 1846년 9월 15일 헌종은 어전 회의에서 김대건 님의 목을 잘라 매달아 백성들을 경계심을 품게 하라는 ‘효수경중’(梟首警衆)을 윤허하였다.
- 1846년 9월 16일 오전에 서울 한강 모래밭 형장인 새남터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 1858년 비오 9세 교황에 의하여 가경자(可敬者, Venerabilis; 시복 후보의 임시 호칭)로 선포되었다
- 1925년에 비오 11세 교황에 의하여 복자품(福者品, Beatus;성인으로 인정하는 행위)에 올랐다
- 1984년에는 성인품(聖人品, Sanctus;정식으로 성인으로 확정)에 올려졌다.
▼ 산책길에는 여러 조각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 서해안의 내포지방은 예로부터 불교가 매우 발전한 지방이며, 아직도 고려시대의 불교 유적이나, 미륵불이 마을마다, 골짜기마다 흔한 곳이기도 하지만, 가톨릭 신자들도 많은 곳입니다.
살기 힘들고, 관리들의 심한 세금 착취에 매우 어려운 시대에 백성들은, 가톨릭에 깊이 기대었을 것입니다.
또한 조상 대대로 기다렸던 미륵불은 오지 않고, 하세월 56억 7천만 년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먼 세월이기에 새로운 문물과 함께 들어온 가톨릭은 힘든 삶에 찌든 인생에 구원자였을 것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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