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천읍성의 풍락루(豊樂樓)는 면천관아(면천동헌)의 정문으로 2층의 누각입니다.
면천읍성이 조선초기 세종 21년(1439년)에 만들어졌지만, 면천읍치는 고려시대 또는 신라시대 이전부터 있었으므로, 언제부터 관아의 정문이 누각이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때부터 관아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삼문형태의 문을 2층으로 된 누각형태의 문으로 짓기 시작하였으므로, 조선시대 초기라고 봅니다
면천관아의 정문은 처음에는 반월루(伴月樓)라고 하였으며, 반월루의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는지, 여러 관리들이 시를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반월루(풍락루)가 개축,보수되었던 기록을 연도별로 알아보겠습니다.
- 광해군 4년(1612년) : 김응성 면천군수가 반월루를 개축
- 철종 2년(1851년), 면천군수 이관영이 무너져 내리는 누각(반월루)을 헐고, 다시 지으면서 현판을 풍락루(豊樂樓)로 개명.
- 1943년(일제강점기) : 붕괴 우려로 면천읍장과 주민들에 의해 철거됨
- 1972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
- 2007년에 보수.
▼ [자료:당진신문] 조선시대 면천읍성의 그림지도를 보면 면천관아의 정문, 외문루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면천군에서 만든 면천읍성의 복원계획도에서 보면 관아터가 보이고, 풍락루가 보입니다
▼ 흰색점선이 풍락루입니다.
▼ 면천읍성의 관아정문인 풍락루가 좀 빈약해 보이는데, 다른 곳의 관아정문을 하나 보겠습니다
▼ 참고로 온양의 온주아문을 보겠습니다. 면천읍성의 풍락루와 비교해 보면 많은 차이가 납니다.
▼ [자료:면천초등학교카페] 알제강점기때로 추정되는데, 면천초등학교 학생들이 풍락루앞에서 청소를 하는 모습입니다.
▼ [자료:충청투데이] 해방이후의 1970년대로 추정되던 때의 풍락루입니다. 지금과 아주 비슷합니다
▼ 풍락루 주위는 주차장으로 사용중이라서, 누각을 촬영할때 차량들의 간섭이 많습니다.
▼ 풍락루 뒤에는 관아터의 발굴조사 준비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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