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시 영탑사(靈塔寺)의 동쪽 유리광전(琉璃光殿)에 모신 영탑사 약사여래상(靈塔寺藥師如來像)을 보고 왔습니다.
영탑사는 당진의 면천군 소재지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상왕산(象王山) 기슭에 있으며, 통일 신라 말기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한조계종 수덕사의 말사입니다.
영탑사에는 영탑사 약사여래상(靈塔寺藥師如來像), 영탑사 금동 비로자나불 삼존 좌상(靈塔寺金銅毘盧遮那佛三尊坐像), 영탑사 범종(靈塔寺梵鐘)의 귀중한 불교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 사진자료는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등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영탑사로 들어가는 길을 바라보는데, 매우 오래되어 보이는 나무가 조용한 절집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 영탑사(靈塔寺)의 한문을 보면 탑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당진군사]에는 조선 정조 22년(1798)에 연암당 지윤스님이 유리광전을 보수하면서 그 뒤 바위에 5층탑을 세운 후 절 이름을 ‘영탑사’라 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에 절을 창건하였지만, 다른 이름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좁은 길의 계단을 올라가는 맛이 조용한 절집의 분위기를 더해 줍니다.
▼ 왼쪽은 적묵당((寂默堂), 오른쪽은 대웅전(大雄殿)입니다만, 영탑사 창건초기에는 대웅전과 적묵당은 없었으며, 대웅전이 1990년에 완공되었으므로 적묵당도 1990년에 준공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자료사진] 1985년의 사진에서 보면 영탑사은 법당은 지금의 대웅전 자리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영탑사는 창건 연대가 정확하지 않으나 통일 신라 말기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고려 후기 보조 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중수하였으며 그 후 1798년(정조 2)에 연암당(鍊岩堂) 지윤(智允)이 중건하였다. 1911년에 신도들이 중수하였으며, 1928년에 이민동이 노전(爐殿)을 중건하였다. 영탑사는 원래 대웅전이 없었는데 1985년 30평[99.17㎡] 규모의 대웅전 건립을 시작하여 1990년에 완공하였다. 1992년에는 화재로 노전이 소실되었으나 최근에 복원되었다. 2010년에 산신각을 승려 초운이 신축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노전(爐殿) : 사찰의 법당을 관리하는 승려들의 거처
▼ 적묵당 앞에서 영탑사의 전각(殿閣)들을 봅니다.
▼ 대웅전의 옆문을 보니 매우 화려하게 조각된 창호가 다른 절집과 많이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문이 잠겨 있어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 대웅전 안에 있다는 범종(동종)의 내력을 보니, 충남 예산시 가야산 기슭에 있었던 가야사의 동종이었습니다. 가야사는 흥선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쓰기 위해서 불을 질렀던 사찰로 알려졌으며, 가야사에 있던 동종은 영탑사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안내문에 동종(범종)이 유리광전 안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대웅전 안에 있습니다.
▼ [자료사진;뉴스25시] 영탑사의 범종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용뉴의 용은 한 마리이고, 음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주종의 유행을 따랐으나, 부드러운 곡선의 미와 정교함의 가치는 좀 부족해 보입니다.
종의 표면에 시주자의 이름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 인법당에는 보물 금동비로자나불 삼존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들어 가서 뵈고 싶었지만... 들어가도 되나..ㅎ.ㅎ 잠시 밖에서 흐릿하게나마 뵙고 왔습니다.
▼ [자료사진] 삼존불은 자료사진에서 뵙게되었습니다. 이 삼존불은 워낙 귀중한 보물이다 보니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어 일본 놈들한테 넘어갈 뻔하였습니다.
1928년 8월 12일~1928년 9월 11일에 전직 총독부 순사 이 모 씨에 의해 도난되었다가 회수하였는데 조선총독부위 지휘가 있었다고 봅니다.
사실 조선에서 대규모로 조선의 문화재들이 합법을 가장하여 일본으로 빼돌려진 문화재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1975년 6월 30일~1976년 12월 3일에는 도굴꾼이 일본으로 밀반출 시도 중 체포되어 회수되기도 하였습니다.
문화재를 도굴, 반출하는 행위는 민족의 혼을 팔아먹는 매국행위이므로 민족반역자와 동일하다고 하겠습니다. 간단하게 돈 몇 푼 벌겠다고, 문화재를 팔아먹는 행위가 별거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일본으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역사가 왜곡되어, 결국은 고조선부터 대한민국까지의 정체성이 짓밟히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 당진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唐津 靈塔寺 金銅毘盧遮那佛三尊坐像)은 8 각형의 연꽃무늬의 대좌 위에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이 있고 양 옆으로 협시보살이 있는 삼존불(三尊佛) 구도이며, 고려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특별하게 보이는 것은 삼존불을 따로 주조하여 조합하지 않고, 한 번에 주조하였다는 것이 매우 특별하게 보입니다
본존불의 손은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모양으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이며, 왼쪽 보살과 오른쪽 보살은 손의 방향이 바뀌었지만, 모두 같은 자세에 똑같은 수법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의 보살들의 머리를 보면 보관이 없는 나발(螺髮)의 모습이었으나, 요즈음에는 보살에도 보관을 씌우고 있는데, 영탑의 보살에도 머리에 쓴 보관(寶冠)은 따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당진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협시 보살(脇侍菩薩)은 1964년 보물로 지정이 되었으며, 높이는 51㎝의 금동 삼존 불상(金銅三尊佛像)입니다..
※ 자료사진은 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유리광전의 뒤를 보면 7층석탑에는 보수공사 때문에 안전망이 씌어져 있는데, 오늘 7층석탑을 자세히 보기는 틀렸습니다.
▼ 산신각이 암벽에 바짝 붙어 있고, 좁은 터에 축대를 잘 쌓았습니다.
▼ 산신각과 유리광전 사이에 있는 유리창호의 건물은 요사채라고 하는데, 스님들이 거주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유리광전 안에는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는데, 보통은 약사불이 있는 당우는 약사전이라고 하는데, 영탑사는 유리광전이라고 하였습니다. 원래는 약사불은 '약사유리광 여래'라고 하므로 약사전이라고 하지 않고 유리광전이나, 만월보전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 바위면에 약사불을 새겼는데, 마애약사불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약사불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약사불은 고려시대의 작품입니다
▼ 인간의 질병을 낫개 해달라는 무릇 수많은 민초들의 기도를 들었을 약사불입니다.
▼ [자료사진:방방콕콕] 7층석탑이 보수공사 중이어서 자료사진으로 탑의 내력을 알아보았습니다.
당진군사에는 조선 정조 22년(1798) 연암당 지윤스님이 유리광전을 보수하면서 그 뒤 바위에 5층탑을 세운 후 절 이름을 ‘영탑사’라 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후 1911년의 중수 때 2층을 더 올려 7층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훼손되어 5층만 남아있던 것을 1920년대에 이 절의 신도들에 의해 다시 7층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하는데, 6층, 7층의 옥개석을 자세히 보면, 1층에서 5층까지의 옥개석의 모양과는 다르게 받침조각도 얇고, 옥개석의 네 귀퉁이가 심 하게 들려 있는 차이를 보게 됩니다
보통은 큰 법당 앞에 석탑을 세우는데, 영탑사의 탑은 약사불을 모신 유리광전 뒤, 바윗돌 위에 세웠습니다
▼ [자료사진] 추가된 6층,7층의 옥개석은 다른 옥개석과 많이 다릅니다
▼ [자료사진] 충청남도 홍보 블로그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7층석탑이 보수공사 중이어서 아쉽게 내려옵니다.
▼ 유리광전 앞에서 내려다보는 영탑사입니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조용하고 새소리만 들리는 산속의 절집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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